이런 질문에는 보통 '명문 대학', '번듯한 직장', '경제적 성공' 등의 답이 되돌아온다. '좋은 부모'란 이런 성공의 길을 아이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아이들의 '성공'을 지원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부모상이다.
이렇게 시대가 요구하는 부모상을 정면으로 거부한 부부가 있다. 그냥 거부하는 게 아니라 '다른 부모상'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바로 전라북도 무주 산골에서 8년째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는 장영란·김광화 부부다. <프레시안>에 2004년 12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연재된 '산골 아이들'로 잔잔함 감동을 줬던 이들은 이 연재 글을 토대로 <아이들은 자연이다>(박대성 사진, 돌베개 펴냄)를 펴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행복하세요?"
이들 역시 한때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이었다. 하지만 경쟁하고 소비하는 도시의 삶은 부모와 아이들 모두를 지치게 했다. 결단이 필요했다. 오랜 고민 끝에 무주 산골에 터를 잡았다. 아이들을 억지로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8년. 두 아이 탱이(18살)와 상상이(12살)는 그렇게 '자연의 아이들'이 됐다.
물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한 결정은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두 사람은 '참교육'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들이 생각한 참교육은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속적인 성공만을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전문가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은 결국 아이들의 인생에 남들보다 비싼 가격표를 달아주려는 욕심이라는 것.
"공부를 하는 이유도 다 잘 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잘 살자면 잘 배워야 하리라. 잘 배운다는 건 뭔가. 바로 생명 본성에 충실한 배움이 아닐까. 맑은 눈빛을 촉촉이 적시는 배움. 싱싱한 배움. 아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면서도 절실한 배움. 거기서 새로 시작하자. 어느새 학교는 저 멀리 사라지고, 우리 아이들이 성큼 내 앞에 다가온 듯 가까이 보였다."
학교에서만 공부하라는 법이 있나요?
탱이는 중학교 때, 상상이는 초등학교를 조금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기로 했다. 아이들은 으레 학교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지만, 오늘날 제도권 교육은 아이들에게 결코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초등학교까지 학교를 다니다 중학교 때 학교를 떠난 탱이는 이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학교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어차피 공부는 내가 책 보고 하는 걸.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친구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를 한다. 나는 평소처럼 공부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친구들에게서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내 세계는 이곳이 아니구나."(탱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다른 세상이 열렸다. 탱이는 학교에 매어있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그 시간에 혼자서 공부하거나, 자기 밭을 일군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친구를 사귀고, 전통 무예인 '수벽치기'를 배워 가족들에게 전수해 주기도 한다. 요즘은 몇몇 잡지사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와 직접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면서 돈이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한 일의 '결과'라는 사실을 배운다. 탱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차분하고 어른스럽다.
누나를 따라 자연스럽게 학교를 그만둔 상상이는 책을 벗으로 삼았다. <논어>, <맹자> 같은 어려운 책도 읽지만 지식의 절반은 만화책에서 얻는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삼국지>를 읽으면서 다양한 인간상에 대해 자기만의 언어로 말할 줄 안다. 스스로 몸이 허약하다고 생각해서 운동을 시작했고, 틈만 나면 아버지와 수다를 떨기도 한다. 아이들은 떼를 쓰지 않는다. 대학에 가기 위해 하루에 열 몇 시간씩 공부하는 것도 아니다.
"하루 시작이 바뀌었듯 우리 집, 우리 식구가 바뀌었다. 그걸 어찌 다 말로 설명하나. 결혼 전하고 결혼하고 나서 바뀌듯 커다란 변화. 어쩜 그보다 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거다. 우리 앞에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야 했다. 독립선언. 그 당당함이 어디 공짜인가."
'참교육'은 '참살이 찾기'를 가르치는 것
결국 장영란·김광화 부부에게 참교육이란 '참살이'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가르치는 일이다. 참살이는 돈 들여가면서 운동하고, 일부러 비싼 유기농 야채를 사먹어야 하는 도시 사람들의 '웰빙' 열풍과 거리가 멀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배우고 깨닫는 과정인 것이다.
아이들은 놀듯 공부하고, 공부하듯 놀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자기 주변의 모든 것들을 스승으로 삼는 법을 배웠다. 자연이 곧 스승인 것이다. 그 파릇파릇한 날것의 '스승들'이 사시사철 둘러싸고 있는 집에서 네 가족은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
<아이들은 자연이다>가 제안하는 삶의 방식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다. 생각을 조금 바꾸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런 삶을 실천하기 위한 작은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도시에서의 삶이, 또 틀에 박힌 제도권 교육만이 아이들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생이 한 가지만 하고 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에요. 제게는 가능성이 너무 많잖아요?"(탱이)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