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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은 판타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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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은 판타지가 아니다"

산골 아이들 <1> '꿈만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며

오늘부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 '산골 아이들' 연재를 시작한다. 1996년 전라북도 무주로 무작정 귀농해 어엿한 시골내기가 된 장영란씨가 정규 교육을 따로 받지 않고, 자연과 벗 삼아 성장하는 열일곱살 딸과 열살 아들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을 담담히 털어놓을 예정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 시대의 많은 부모들이 이 경험을 공유하고, 생각이 오고가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이 연재는 돌베개 출판사와 프레시안 공동기획이다. 편집자.

산 좋고 공기 맑은 산 속. 양지바른 문전옥답 사이에 아담한 집. 뒷산에는 다래, 으름이 열리고, 여름밤이면 집 마당에 반딧불이가 춤을 춘다. 부엌 수도에서 산속 옹달샘 물이 쏟아져 나오고, 보름이면 방안까지 달빛이 환하다.

이 집 식구는 넷. 사십대 부부와 열일곱 살 딸, 열 살 아들. 닭장에 토종닭 몇 마리, 논에 오리가 몇 마리. 또 처마 밑에 딱새, 고양이가 빠질 수가 없겠다.

동쪽에서 해가 뜨자 식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름에는 새벽같이, 겨울에는 느지막이, 맑은 날은 바지런히, 궂은 날은 꾸물꾸물. 식구들 일터는 집 둘레 논밭이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낸다. 낮이면 자기대로 농사를 하고, 산에도 오르고, 이웃집 마실도 가지만 밥 때면 식구가 모여 함께 밥을 먹고, 해 지면 집안으로 모여든다.

식구가 함께 지내니 누구 하나가 책을 읽으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손님이 와도 함께 맞이하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함께 웃고 운다.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서로서로 친구요, 서로 배운다. 사십대 부부와 십대 아이가 부모 자식 같지 않고 친구, 같은 일을 하는 동료 사이다.

무얼 먹고 사나? 농사한 걸 먹는다. 농약 비료는 물론 기계를 쓰지 않고 농사를 해 식구 먹을거리는 자급한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으니, 입에 들어오는 쌀에, 뜨뜻한 아른 목에서 아버지 손길을 느끼고, 손수 농사해 만든 음식을 먹으니 엄마 밥상이 가장 맛있다.

그래도 생활비는 필요하지만, 학비가 들어가나, 휴대폰이 없고, 수도요금도 없다. 다달이 내야하는 돈, 이러저러한 생활비는 식구들이 힘을 모아 번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잘 먹고 잘 자고 그리고 잘 싸는 일을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식구 모두 아침에 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식구가 모두 일어나고 한참 뭔가를 하고 배가 고파지면 밥을 먹는다. 아침에 텃밭에서 뽑아온 싱싱한 푸성귀, 닭장에서 나온 달걀, 산에서 해 온 산나물과 열매 이런 걸 밥상 가득 얹어놓고 먹는다. 하루 어느 때 건 뒷간에 볼일을 보러가고, 그 뒷간에서 모인 똥오줌은 다시 호박과 배추가 되어 밥상에 올라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꿈만 같아요', 한다. 그렇다. 내가 생각해 봐도 꿈만 같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판타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판타지만은 아니다.

바로 2004년 현재 우리 식구가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가 뭐 별나서 이렇게 사는 걸까?

어찌 보면 별나다. 하지만 처음부터 별난 건 아니었다. 1996년 봄 그때까지 우리는 도시내기였다. 게다가 나는 서울 여자. 세상이 서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고, 남들처럼 초등학교 입학하면 대학까지 이어달리기를 하고, 뭐가 필요하면 돈 주고 사는 건 줄 알았다.

그런 사람이 산골에서 농사를 해 먹고 살 일이 벌어졌다.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나, 무작정 귀농을 한 거다. 그때만 해도 '귀농'이라는 말도 없었을 때니, 귀농 준비는 아예 백지. 살림은 그대로 아파트에 둔 채, 프라이드 DM에 네 식구가 타고 여행 가듯 짐을 싣고 떠났다. 그 뒤 십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우리가 산골로 온 뒤 오랜만에 전화를 하거나 누구를 만나면, 우리 아이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 그럴 때 나는 그 집 아이 이름이 까마득히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아, 그때 민망함이란. 적당히 얼버무려 그 위기를 넘기곤 했는데 그런 일이 한번 두 번 이어지면서 내 기억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분들에게 우리 아이들이 관심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시내기인 큰애가 시골서 잘 지내는지, 젖먹이 때 시골로 간 작은애는 어떻게 자라는지?

그것만 해도 별난데 몇 년 뒤 아이들이 줄줄이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 있기로 했다. 사람들 관심이 더욱 커졌다. 때로는 자기 아이보다 더욱. 많은 이들이 우리 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뭐를 어떻게 가르치나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요?' 이렇게 물어올 때가 있다. 어찌 한두 마디로 대답을 하겠나.

'삶이 곧 교육이고, 자연이 선생이다'라고 근사하게 말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는 순간순간은 그렇게 근사한 개념만 가지고 해결이 안 된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 두기까지, 그만 두고 나서 순간순간이 우리에게 역사였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이 집에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까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니 삶 전체가 새로 판을 짜고 있다고 해야 하리라.

사람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제2의 인생이 열린다고 한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새 인생이 열렸는데, 게다가 자연에서 살게 되니 아이들과 함께 생각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큰애가 내 키만큼 자란 날이 왔다. 그 즈음 우리 아이들이 자연에서 자라는 이야기를 글로 쓰라는 권유를 받기 시작했다.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쓰기가 어디 쉬운가.

***새로운 물결은 이런 데서**

올 가을 산골에서 작은 결혼식이 있었다. 거기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자연에서 자라는 아이 몇이 모였다. 남도 땅 보성에서, 휴전선 가까이 화천에서, 경남 산청과 충북 괴산. 그리고 무주 사는 우리 식구까지. 아이들은 활기차며 평화로웠다. 집에서 보던 때와 달리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에 울림이 왔다.

자연에서 자라며 공부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판타지 등장인물도 아닌, 이 시대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아직 많지 않지만, 하나하나가 얼마나 당당하냐. 새로운 물결은 이런 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결혼식에 다녀온 뒤, 아이들 이야기를 글로 쓸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어떻게 쓰나? 우리 아이들을 한번 살펴본다. 큰애는 이제 내 키보다 훌쩍 자랐다. 늦둥이 작은애도 이제 십대다. 그동안 내가 글을 쓴 뒤 함께 읽어보면 함께 겪은 일이라도 사람마다 다른 기억과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나와 아이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식구 대표로 쓰는 게 아니라, 식구의 한 사람으로 쓴다는 걸 밝히고자 한다.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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