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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못 갚는 사람들이 다 '금융피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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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을 못 갚는 사람들이 다 '금융피해자'인가

[기자의 눈] 신용불량자 단체 주최 토론회를 보고

지난해 4월 신용불량자 등록제도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신용불량자라는 명칭은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대체됐다.
그러나 '금융피해자 파산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의 감소 속도보다 예비 금융채무불이행자의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금에 복리로 연체이자까지 붙는 통에 채무자가 빚을 갚기는커녕 가족 등 주변 사람들까지 함께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같은 현상이 과연 '갚을 능력도 없이 빚을 진' 개인의 책임일 뿐일까"라고 반문한다.

***금융채무불이행자 주최 토론회 "우리는 채무자가 아니라 피해자"**

지난 4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성당 교육관에서 열린 〈빈곤의 또 다른 얼굴,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말한다〉라는 토론회는 '금융채무는 우리 사회가 책임질 빈곤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점을 조명하는 자리였다.

특히 이 토론회는 그동안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가 붙여져 채무상환 부담 외에 '사회적인 고통'을 겪어 온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이 주최자로 나선 최초의 토론회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 토론회는 빈곤사회연대, 금융피해자 파산지원연대,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신용불량자클럽 등 신용불량자들의 모임들이 공동 주최한 행사다.

토론회에서 이들이 내놓은 주장들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소액연체자의 경우 채무를 탕감해줘야 한다는 요구였다. 빈곤 때문에 빚을 진 사람들은 빚을 갚을 능력이 별로 없는데도 금융기관들이 돈을 빌려줬을 뿐 아니라 복리로 붙는 이자 때문에 결국 도저히 갚지 못할 만큼 빚이 불어났으니 이를 면제해 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는 금융채무불이행자가 아니라 금융피해자"라고 항변했다. IMF 사태 이후 갑자기 어려워진 생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됐는데, 금융기관들이 채권추심업체까지 동원해 인권침해를 자행하며 고통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주최측 관계자는 "현재 금융채무불이행자 대부분은 IMF 사태 이후 금융기관들이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줘 빚을 지게 된 사람들"이라면서 "이같은 사유로 1000만 원 등 일정 기준 이하의 소액 연체자가 된 사람의 채무는 탕감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소액연체자의 채무 탕감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해법'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해도 사후적으로 채무를 탕감해주기 위해서는 소액연체자 중 '상환능력이 없는 빈곤형 채무불이행자'를 어떻게 가려내느냐의 기술적 문제가 놓여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7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30~40대 가장들 중 의료비나 교육비 등으로 불가피하게 빚을 진 생계형 연체자들에 대해서는 정부나 금융기관들도 최대한 지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의 모임 중에는 이들을 앞세워 다른 소액연체자들에게도 채무 탕감을 해달라는 의도를 가진 곳이 적지 않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 자리에는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과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까지 참여해 "금융기관이 무분별하게 빌려주고 스스로 이미 받을 수 없는 돈으로 상각 처리된 금융채무에 대해서 개인신용회복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면서 "정부와 금융기관이 책임지고 탕감해줘야 한다"고 토론회 분위기를 띄웠다.

***민노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무조건 탕감은 어렵다"**

이에 대해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은 "서민들의 금융채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민노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면서 "민노당 내부에서 이 문제의 주무부서인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입장은 '금융피해자'라는 개념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특히 "빚을 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금융기관이 신용카드를 남발해 생긴 금융채무자는 '금융피해자'이니 금융채무를 탕감해달라"는 주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정부의 금융정책 잘못으로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이 양산됐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금융피해자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개인의 선택에 따른 책임도 있는 만큼 금융채무불이행에 대한 해결은 법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명백히 신용카드 발급 대상이 아닌 미성년자나 지체장애인 등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줘 생긴 빚이라면 금융기관이 책임지고 탕감해줘야 한다"면서 "이들이 '채무 부존재 소송'을 내면 승소할 수 있으나, 카드사들이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내면 지게 돼 있는 법 체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외의 금융채무로 빚을 갚을 길이 없는 경우에는 법원의 판단을 통해 '개인파산'으로 채무를 탕감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이 본부장은 "특히 우려되는 것은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건 일부 시민단체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민주노동당에서 금융채무불이행자 문제를 담당하는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자들 중에는 "경마, 경륜 등 정부가 합법화한 도박을 하느라 진 빚은 전액 탕감해줘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헌법 위에 '떼법'이 있으니 우리 모두 힘을 합하면 채무 문제가 해결된다", "채권추심업체들에 시달리는 금융피해자들이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등의 '격한 주장'도 나왔다.

토론회의 순수성이나 설득력을 스스로 허물게 하는 이같은 주장들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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