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공통의 관심은 '몸'**
'몸 만들기' 하면 보디빌더? 권투선수? 그런 모습이 떠오르곤 했는데 어느새 우리 식구가 함께 관심을 가지는 일이 되었다. 우리 식구는 호리호리한 약골이다. 우리 부부가 그러니 아이들도 그 부모에 그 자식이다. 나는 도시내기답게 도시 유행을 다 갖추었다. 아토피, 허리 병과 비염. 변비. 약하지만 젊은 기운에 버티고 살았겠지.
큰애 탱이는 딸이라 나를 빼다 박았다. 어려서 아토피가 있고 서울 살 때는 밥을 먹음직스럽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산골로 왔다고 단박에 좋아지지는 않았다. 맑은 공기와 물, 먹을거리. 그래도 아토피는 늘 숨어있었다. 사먹는 음식을 이어서 먹으면 아토피가 나타났고, 피곤하게 지내면 코피가 났다.
아파트에서 탱이는 집안에서 지냈다. 학교나 상가에 오가는 것 말고는 집안에서 뭔가를 했다. 그래서 유치원 대신 YMCA 아기스포츠단에 보냈더니 귀에 중이염이 생겨 중간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서울 살 때 탱이는 방콕을 하는 공주님이었고 공주님답게 자주 병원 신세를 졌다.
서울 살다 산골로 이사를 갈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병원은 어쩌지?' 갑자기 다치거나 밤에 아프면 어쩌나. '만일', '혹시라도' 그런 걱정이 있었다. 실제 살아보니 그런 일은 없었지만, 아이를 데리고 멀리 있는 도시 병원까지 간 적도 있다. 그리고 어쩌다 서울 올 일 있으면 병원에 들려 정기검진을 받기도 했다. 치과, 안과…….
병원 가기 불편하니 생각의 회로가 바뀐다. 병원 가기에 앞서 내가 왜 아픈가? 생각한다. 그걸 알 것 같은 순간 놀랍게도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도 보인다. 그러니 병원 가지 않고도 낫는다. 한번은 탱이 앞니가 아픈 적이 있다. 서울에서라면 치과에 달려갔겠지만 여기서는 그게 어디 쉬운가. 참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지 탱이는 백팔배를 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남편은 탱이 이빨이 왜 문제인지를 생각했나 보다. 씹는 습관을 살펴보다 음식 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그걸 계기로 우리 식구는 조금씩 야문 걸 씹어 먹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탱이는 일년에 한두 번 몸에 리듬이 흐트러지곤 했다. 그러면 자기 편한데 누워 며칠 쉰다. 하루 정도 아무것도 안 먹고, 그 다음에는 물만 먹고 몸이 회복이 되면 죽 먹고 그러다 보면 떨치고 일어난다. 그런 탱이를 보면 야생동물처럼 야성이 살아나 자기 몸의 리듬을 조절해 나가는구나!, 했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는 아이가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더니 탱이는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지난 가을부터 탱이는 몸을 단련하는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탱이 말이 "언제나 '말랑깽이' 소리를 듣는 것에서 벗어나 건강해지자는 생각을" 했단다. 자기 발로 찾아가 일해주고 수벽치기를 배워왔다. 그리고는 자기가 몸 약한 거를 탓하지 않고 몸이 약한 걸 덕으로 생각하겠단다. '몸이 약한 덕에 몸을 단련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탱이는 우리 식구에게 가르쳐 주었고 나도 난생 처음 무예를 해 보았다. 탱이에게 수벽치기를 가르쳐 준 분은 우리처럼 농사를 짓는 분이었다. 그 분은 수벽치기는 농사를 하면서 살아온 우리 선조들이 만든 무예란다. 그래서 누군가와 대결하는 무술이 아니라 스트레칭에 가깝게 자기 몸을 단련하는 무예를 가르쳤다.
그러나 내 사부는 탱이다. 탱이가 가르쳐 준대로 한 동작 한 동작을 따라했다. 안 하던 몸움직임을 하나하나 하려니 어색하고 쑥스럽다. 하지만 딸 앞이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지나니 손날돌리기라는 몸 동작이 나오는데 내 생각에는 무술영화에서 보던 동작 같다. 그런 몸 움직임을 따라 하니 내가 왠지 근사하게 느껴졌다. 산 속에서 무예를 단련하는! 와 멋지다.
"엄마, 뭐해요?" 탱이 얼굴에 아니라고 쓰여 있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하라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어차피 내가 무사가 될 것도 아니니 내 식으로 했다. 꾸준히 몸 움직이는 게 안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너 네 선생님이 수벽치기를 어느 정도 하면 자기만의 몸동작이 나온다고 했다며?", "그래도 엄마, 그건 자아도취야."
엉터리로 했어도 겨우내 한 게 효과가 있는지, 일철이 돌아오자 일을 해낼 수 있었다. 그것도 한 철. 요즘에는 가끔, 생각나면, 하지만 올겨울에는 다시 하리라. 나중으로 미루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가려**
상상이는 내가 서른일곱에 임신해 낳은 늦둥이다. 태어나 한번도 젖살이 올라 본 적이 없다. 겨울이면 찬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감기에 걸린다. 감기에 걸린다고 어디가 많이 아픈 건 아니고 콧물이 나온다든가, 잠자리에서 기침을 몇 차례 한다. 감기에 걸리면 상상이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방 청소를 하면서 자기 정리를 하기도 하고, 자기 전에 발냉온욕을 하고 따뜻할 때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콧물이 더 많이 나오지도 그렇다고 뚝 그치지도 않았다. 봄이 오고 찬바람이 잦아들면 어느새 상상이 감기 기운은 사라진다. 나이가 한 살씩 먹어가면서 점점 단단해져, 올겨울에는 감기에 걸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가끔 배가 아플 때도 있다. 자기 리듬을 잃어버릴 만큼 흥분해 놀았다든가, 맛있다고 마구 먹었다든가 한 뒤다. 이럴 때는 저 스스로 알아서 속을 비운다. 배 아픈 게 낳을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 쉬거나, 배를 쓸어주면서 어째서 배가 아픈지 이야기하면 스르르 잠이 든다.
십대가 되면서 상상이는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게 싫단다. 실제로 자기 몸과 시간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고, 무얼 먹으면 곧장 이를 닦는다. 그리고는 아직도 잠자리에 있는 내 머리맡에 온다. 그 덕에 나는 하루아침에 잠꾸러기가 되었다.
이웃에 민간의학을 공부하는 약사가 있어 몸 관리에 대해 도움말을 듣곤 한다. 우리 부부가 그 이웃과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답답해 하니, "언니 네는 먹을거리가 되잖아요. 그러니 곧 좋아질 거예요." 남편이 "우리는 황제내경에서 가르치는 정도는 하고 있는데, 그래도 잘 안 되네." 그렇다 황제내경! 그걸 까먹고 있었다. 남편이 처음 시골 가서 살자고 할 때 하는 말이 "아침에 해 뜨면 일어나고 저녁에 해 지면 자고 싶다."
그때는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었다. 남편은 한동안 <황제내경>을 달고 살았다. 나중에 나도 들여다보니 황제내경은 한의학서적이기 앞서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라는 경전으로 다가왔다. 사람도 자연의 목숨이니 자연의 흐름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농사하고 살다 보니 어느 정도 자연의 흐름에 따라 몸을 움직일 수 있다. 해가 좋고 움직이기 좋은 날은 온 몸을 움직이며 일하지 않을 수 없고,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은 늦잠을 자고 느릿느릿 지내는 길밖에 없다. 해 뜨면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집안으로 들어온다.
그 가운데 어려운 일은 저녁에 어디 가지 않는 거였다. 해질녘이 되어 안방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면 온 식구 집안으로 기어들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 이웃집 마을을 가 수다도 떨고 술도 한 잔 하고 싶었다. 누가 오라면 기다렸다는 듯이 가고, 그 답례로 손님을 초대 했다. 마을을 가면 게다가 술자리가 벌어지면 쉽게 끝나지 않는다. 옆방에서 놀며 기다리던 상상이는 잠이 들고. 잠이 든 애를 깨워 집으로 돌아오면 상상이는 감기에 걸리곤 했다.
처음에는 그런 줄도 몰랐지. 그냥 아이는 감기에 걸리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아프면 왜 아플까를 스스로 생각하는 단계가 되어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뒤부터 나는 밤에 어디 가는 일을 벌이지 않으려 했고, 상상이 역시 식구 가운데 누구라도 있으면 따라가지 않으려 했다.
***먹기 위해 사는…**
친구가 하는 말이 "너희는 먹기 위해 사는 것 같다." 그건 그렇다.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란 게 밥상을 차리는 일이니까.
밥상. 주부로 사는 사람은 모두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게다가 시골 밥상은 보통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메주 끓이고 조청 달이고, 술 빚고, 식초 담그고 과일 병조림……. 작은 식품가공공장을 하는 셈이다. 오랜 시간 발효를 하고 저장을 하니 남 따라서 한다고 해도 어딘가 어설픈 구석이 있곤 하다.
어설퍼도 한동안 이것저것 밥상에 올려보았다. 아이들이 안 먹으면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도 보았다. 내 딴에는 이리저리 노력했는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먹을 게 없다. 그걸 보고 남편이 한마디 한다. '배고프지 않아서 그렇지. 먹이려고 하지 말고 배고프게 해 봐요.'
아이들이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 다를 때. 왜 그럴까? 왜 골고루 먹지를 못할까? 건강하지 못할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결국은 아이들을 자연분만을 못하고 젖을 제대로 못 먹여 키운 데로 이어진다.
아기는 엄마 뱃속 일, 태어나던 과정을 인격 존재로 모두 기억한단다.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오는 첫걸음을 자기 힘으로 자연스레 나올 수 있게 도와주었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느닷없이 낯선 사람들 손에서 이 세상을 맞이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맞은 첫 며칠을 낯선 곳에서 지내야 했다.
우리 동네 아줌마들은 아기를 쑥쑥 낳는다. 그것도 자기 집 안방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병이 아니니 집에서 자연스레 하려면 할 수 있다고 믿어 가정 분만을 하는 거다. 첫애는 조산원에서 낳고 둘째를 집에서 낳은 이웃은 집에서 낳아보니 그게 진짜 자연분만이라 한다. 그걸 막았던 건 두려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공부를 하고 뱃속 아기와 이야기를 하고 몸만들기를 꾸준히 했겠지. 그렇게 하니 엄마와 아기 둘이 힘을 모아 거짓말처럼 편안하게 아이를 낳았다. 아기는 아주 편안한 보살 얼굴을 하고 있고 아기라 말은 못해도 엄마는 다 알아듣는다. 마음이 통하는 거리라. 십년만, 아니 오년만 젊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제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무얼까? 자연스레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주자. 그런 눈으로 농사를 보니 농사도 달라 보인다. 어미가 새끼를 자연스레 낳아 기르지 못하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 먹는 닭고기와 달걀은 부화장에서 까서 나온 병아리에서 나온다. 어미가 품어서 까는 자연의 대물림이 끊어진지 오래다. 우리가 사 먹는 고추는 종묘상에서 종자개량을 해서 파는 씨다. 그 고추에서 씨를 받아 심으면 이듬해 고추가 이상하게 자란다. 그러니 고추에서 씨를 받지 못하고 다시 종묘상에서 사다가 심어야 한다.
씨를 받아 다시 씨를 심으면 되는 그런 농사를 하자. 쌀, 콩, 수수, 기장과 같은 곡식은 종자가 안정된 편이라 씨를 받아 다시 심으면 된다. 이웃과 종자를 나누며 토종 종자를 하나하나 얻어 기르니, 씨를 받는 농사를 하는 기분이다. 남새는 좀 다르다. 배추, 고추, 토마토 모두 종자를 한껏 개량했다. 먹음직스런 남새는 씨를 종묘상에서 사다 심어야 한다. 거기 견주면 산나물 들나물은 야성이 살아있는 음식이다. 어떤 노할머니가 남새를 가꾸기도 어려워 마당에 나는 풀을 뜯어먹으며 사신다는 데 사람이 입맛만 바꾸면 야성이 살아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 과일도 생선도 모두 마찬가지다.
사다 먹기보다 심어 가꾸고, 더 좋은 건 산에서 줍고 따고. 그러다 보니 일거리가 끝도 없이 늘어난다. 이것도 저것도 조금만 노력하면 손수 길러 먹을 수 있겠네 싶어 기르는 것도 많다. 그래서 늘 올해는 농사를 줄여야지, 가짓수도 줄이고. 했다가도 막상 봄이 되면 지금까지 해 온 데다 새로운 것까지 벌이곤 한다. 고사리 철에는 고사리, 도토리 철에는 도토리 욕심이 난다. 눈에 띄는 대로 모조리 줍게 된다. 막상 가져와 먹으려면 만만치 않은데도 말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내 친구가 "너희는 먹고 살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고될 때가 있다. 그래서 밖에서 사 먹으면 대번 몸이 안다. 밖에서 사 먹으면 먹을 때는 좋아도 다음날 똥이 다르다. 상상이도 과자를 사서 먹고 나면 차분히 지내지 못하고 심심하고 짜증이 난다. 정신은 몸에서 나오고, 몸은 무얼 먹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게 곧바로 나타난다.
읍내 도서관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밥 때가 되면 슬며시 꾀가 난다. 이럴 때 한번 사 먹으면 좀 편한가. 사먹고 들어가자는 소리를 은근히 바란다. 기다려도 소용이 없어 내가 "얘들아, 뭐 사먹고 들어갈까?", 그러면 아이들은 "집에 가서 먹어요. 집 밥이 맛있어요."
또 뭐해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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