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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전문가가 '전인'으로 거듭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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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전문가가 '전인'으로 거듭나기까지"

산골 아이들 <20> 자신을 찾아가는 길

그동안 농사일과 아래채 짓는 일로 바빠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덕분에 모내기와 상량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다시 글을 올릴까 합니다. 필자.

***자신을 찾아가는 길**

탱이와 상상이가 집에서 지낸 5년. 그 5년을 꿰뚫는 맥이 있다. 하루하루가 자신을 찾아가는 발걸음이다.

도시에서 단순한 산골로 오니 삶이 단순해지고 자기 자신이 더 잘 보인다. 텔레비전이 있나, 심심하다고 돌아다닐 곳이 있나 자연 속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있을 뿐이다.

탱이가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 있고 상상이 역시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 우리 삶은 더 단순해졌다. 전처럼 시간 맞춰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규칙에 맞춰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식구 모두 무얼 하더라도 자기가 필요해서, 자기 마음이 내켜서 한다. 아이들도 집에서 지내는 일이 자리가 잡히면서 자기가 하고픈 걸 하면서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산골 생활 10년.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낸지 5년. 그 사이 온갖 몸부림을 했고 오늘도 몸부림을 한다. 몸부림 속에 뭔가가 있다.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페르소나(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나 자신의 솔직한 모습.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 들어선 게 아닌가.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겠다.

***자신을 찾아가는 길 1 : 전문가가 아닌 전인**

이 다음에 뭐가 될래?

나는 도시에서 살면서 전문가가 되려 했다. 자라면서 누군가 내 귀에 대고 계속 전문가가 되어 근사하게 살아보라고 세뇌시킨 것 같다. 그래도 이십대에는 그런 거 안 해! 하고 내가 하고픈 대로 살았다. 하지만 탱이를 낳고 뒤늦게 남들처럼 살아보려니 전문가가 되어야했다.

전문가란 다른 말로 바꿔 '사람의 상품성'이 아닐까. 삼십대 아줌마가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자신의 상품성을 찾아야 했다.

이 사회는 아이한테 "이 다음에 뭐가 될래?", 하고 묻는다. 초등 아이한테 장래희망을 묻는다. 적성검사, 직업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일찍부터 전문분야를 찾아라! 권장한다. 어린이 그림책을 하나 보아도 '우리 아이 전문가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그런데 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식을 길러보니, 아이에게 이 다음에 되고 싶은 직업이 뚜렷이 있기 힘들고, 그게 있다 해도 여러 번 바뀌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지치지도 않고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전문가'가 되라고 한다. 언론은 일찌감치 한 분야에서 성과를 낸 아이를 찾아 추켜세운다. 신동이니 영재니 하면서.

탱이와 상상이가 자연에서 자라는 걸 보면서, 자라는 아이는 전문가가 아닌 전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게 좋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탱이가 올봄 목화 농사를 시작했다. 자기 밭에 몇 포기다. 자기 힘으로 씨를 구해 모종을 키워 하루 한번씩 들여다본다.

목화씨를 보니 탱이가 학교를 그만 둘 무렵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떠오른다. 그때 학교 안 다니는 대신 탱이를 '베 짜기 전문가'로 키울까 했다. 학교를 안 다니는 걸 거꾸로 활용해 일찌감치 전문가로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목화를 농사해 실을 잦고 무명을 짜 천연염색을 해 옷을 짓는 전 과정. 그 가운데 지금 사라져가는 목화에서 무명을 짜는 기술을 가르치면 이 다음에 '베 짜기 전문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꿈도 거창했지만 삶에서 벗어난 생각은 저절로 까맣게 잊혀졌다. 지금 탱이는 그런 거창한 꿈을 이루기 위해 목화를 기르는 게 아니라 '그냥 기르고 싶어서' 기르려 한다. 자기에게 끌리는 걸 길러보고 싶어서, 뭔가를 기르는 재미가 좋아서.

***전인이란 누구인가**

나는 전인(全人)이라는 말을 산골에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 들었다. 그때 그 놀라움이라니! 몇 십 년을 전문가가 되라는 주문에 걸려 살다 그 반대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때 전인은 '자기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두루 자급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뜻으로 다가왔다. 밥해먹고, 집짓고, 농사, 이렇게 글쓰기도 하고, 가끔이지만 그림도 그리고 옷도 짓고 여기에다 악기도 다루고 세계여행도 자연스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 내게 전인이란 뭔가를 제대로 알게 해 준 건 탱이다. 전인 그러니까 온전한 사람이란 오만 거를 다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탱이가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서 지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전인이 무언지를 알듯하다. 탱이가 배가 고프면 밥을 차려 먹기 시작하면서, 진달래꽃에서 꿀을 따먹는 걸 보면서 사람이 지금 여기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게 전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 거기서 주는 풍요로운 영감을 느끼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해내는 게 전인의 기본이리라.

무협지에 보면 훌륭한 노(老)사부는 수제자를 전인으로 기른다. 무술을 가르치기 전에 바느질 빨래와 같은 살림살이, 강과 산에서 먹을거리 해 오기, 연장 만들기처럼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본을 가르친다. 그리고 사물을 바로 보는 법도 가르친다. 자기가 바로 서고, 사물을 바로 볼 수 있을 때 책에 나온 지식은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만일 자기 눈앞에 놓인 것들을 바로 보고 거기서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한다면 책이 무슨 소용이리오.

아이가 태어나 전인이 되면 어디를 가도 그곳에서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자기 한 몸에 필요한 돈은 무얼 해도 벌 수 있다. 부모를 떠나 자기 나름대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 그때가 성인이 되는 때라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으려면**

초등학교 2학년까지 서울서 살았던 탱이. 그때 아는 것은 대부분 책을 보고 아는 것이었다. 그림책을 보며 소, 염소, 닭을 배웠다. 꽃은 그냥 꽃이라 가르쳤다. 엄마인 내가 양지꽃인지, 애기똥풀꽃인지, 미나리아재비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노랗게 그려진 꽃은 그냥 꽃 아니면 노란 꽃이었다. 나중에야 살아있는 소를 보고, 꽃을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자연으로 옮겨와 살면서도 한동안 '방콕'하고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이 세상을 책을 통해 알려 했다. 그런 아이가 자연에서 몇 년을 사니, 들도 산도 자기 방처럼 좋아한다. 이제는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본다. 지금 여기에 있는 풀, 꽃, 새소리 하나하나를 보기 시작한다.

태어나 돌도 되기 전 젖먹이 때부터 산골에서 자란 상상이는 아장아장 걸음마하면서부터 나무, 꽃, 벌레, 뱀을 보았다. 걸음마하면서부터 커다란 진도개를 뒤쫓아 다니고, 토끼를 키울 때는 풀이나 나뭇잎이 보이면 한 잎 뜯어 맛을 보고, "맛있다. 토끼 가져다주자," 하면서 자랐다.

자연에서 자란 아이라 사물을 보는 눈매가 좋다. 장날 나가니 생선가게에 신선한 보리새우가 나왔다. 새우를 사다 구워먹는데, 상상이가 새우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꼬리를 벌려보더니 꼬리 양쪽에 지느러미가 있다고, 새우 껍질은 투명한데 살갗이 익으며 분홍빛으로 바뀌어 껍질이 분홍빛으로 물든 것처럼 보인다고, 새우 머리에 있는 뿔을 보더니 이게 암컷이냐 수컷이냐 묻고는 그 뿔이 무어에 쓰이는지 자기대로 한참을 궁리한다.

거기 견주면 나는 귀농을 할 때까지 30여 년을 도시서 태어나 살았다. 지금까지 새우를 여러 차례 먹었지만 한번도 내 눈앞에 있는 새우를 탐구할 줄 몰랐다. 도시에서 가공된 것들에 둘러싸여 음식 하나도 그게 어떤 재료를 뒤섞어 만들었는지 모르는 채 먹었다. 늘 배워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게 배움이란 누구한테 배우거나, 하다못해 책을 보고 아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 새댁이 진달래꽃을 따서 효소를 만들려고 했단다. 꽃을 한 바구니 따고는 책을 찾아보니, 꽃잎에 점이 있는 건 철쭉이라고 쓰여 있더란다. 그래서 모두 버렸다며 미심쩍어하며 내게 진달래꽃을 물어보았다. 진달래꽃에도 희미한 점은 있다고 이야기하니 참 안타까워했다. 그 새댁에게서 내 모습을 본다. 그래 나도 똑같아. 내 오감으로 내 스스로 이게 먹을 수 있는 건지 아닌지를 알아낼 엄두를 못 내지.

아기들은 새로운 걸 보면 입에 가져다 대고 빨아 본다. 자기 오감을 살려 지금 여기 있는 것이 먹을 수 있는 건지 먹을 수 없는 건지, 내게 위험한 건지 아닌지를 알아내려 한다. 우리 동네 다섯 살 별이는 '이제 조금 뒤면 오디 따먹을 거야. 그러면 내 생일이 돌아올 거야', 한다. 별이는 '과일'이라는 개념 말은 몰라도 뽕나무에 오디가 열렸고 조금 뒤면 익어 따먹을 수 있다는 건 안다. 별이는 지난 가을에 도토리를 주워 먹었다. 나는 그걸 보고 '으, 그 떫은 도토리를 어찌 날로 먹어'했는데 그 맛을 제대로 본 적도 없다.

정보와 지식이 넘쳐 어린 아이도 학습해야 할 게 많다 보니, 지금 여기에 있는 걸 자기 오감을 살려 알아내는 힘이 잊혀지기 쉽다. 자기 오감으로 알아내고 자기 머리로 판단하기보다 머릿속에 들은 지식에 현실을 맞추어 보고는 알았다고 넘어가기 쉽다. 그래서 나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정보와 지식을 알려 주기 앞서 지금 여기 집중하는 자세부터 길러주고 싶다. 자기 오감으로 새우를 알아내려는 상상이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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