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결석생**
상상이에게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나왔다.
어쩌겠냐고 본인에게 물어보았다. 상상이는 학교에 가겠단다. '그래. 초등학교는 나와야지.'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책가방도 사고, 옷도 한 벌 마련해 입학식에 갔다. 우리나라 어느 초등학교처럼 3월2일 아침 9시. 학교에 가니 탱이 졸업하고 일년 사이, 학교는 많이 바뀌었다. 학교 건물을 완전히 새로 짓는 공사를 한단다. 또 아이들이 줄어 작년까지 두 반이었던 1학년은 그해 한 반 밖에 안 된단다. 교무실은 강당으로 옮겼고, 아이들 교실은 이리저리 임시 교실로 옮겼다. 상상이네 1학년 교실은 급식당 뒤에 있는 창고였던 교실이다.
그 교실에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오셔서 한 말씀 하시는 걸로 입학식을 마쳤다. 교장 선생님 말씀― 아이 두 명만 더 입학하면 두 반이 되니 학부모님이 도와 달라, 또 공사 중이니 집에서도 안전 교육을 잘 해달라신다. 이리 짧은 입학식을 마치고, 도시에서 이리로 처음 발령을 받아 아직 집도 못 구했다는 여선생님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상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산골 아침은 아직 춥다. 아침 깜깜할 때 일어나, 잠이 덜 깬 채 밥 먹고 똥도 못 누고, 7시30분쯤 집을 나섰다. 마침 그때 수해 복구를 위해 집 앞 길이 공사 중이라 학교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아이가 학교를 간 지 한 참 뒤 아이가 터덜터덜 돌아왔다. 아무리 기다려도 학교 버스가 오지 않더란다. 학교 버스를 놓친 거다. 부랴부랴 아이를 차에 태워 데려다 주었지만 지각이었다. 선생님께 앞뒤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렇게 며칠 다니다 보니 상상이는 감기에 걸렸다. 감기에 걸렸으니 며칠 쉬었다. 좀 낳은 뒤 다시 학교에 다니다 이번에는 늦어져 결석. 며칠 가고 며칠 안 가다 아예 장기 결석을 하게 되었다.
내심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둔 집을 보면 큰애가 학교를 그만 두면 그 밑으로 동생들도 그렇게 되는 걸 알고 있었다. 솔직히 나 역시 학교가 무척 멀게 느껴졌다. 탱이가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버스만 타면 한달음에 가는 곳이 학교였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이가 웬만해서 학교에 적응하겠는가! 상상이에게 학교는 절대적인 곳이 아니라 선택해서 가는 곳일 뿐이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이웃 한 분이 하는 말, "초졸 보다 무학이 더 근사하네."
그래, 초등학교는 나왔으면 했지만 이건 내 희망이고. 아이 인생은 아이 것. 개성 시대에 오히려 '무학'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는 아이에게 의무가 아니라 권리일 뿐**
그렇게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를 데리고 학부모가 학교로 오란다. 학교에 가니 교장실로 데려간다. 2학기에 새로 교장 선생님이 오셨단다. 그 교장 선생님이 근무 첫날 1학년부터 업무보고를 받는데 장기 결석생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당장 학부모를 호출한 거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 교육에 신념이 아주 강하신 분이었다. 멀쩡한 아이가 학교를 안 다닌다는 건 상상도 못하시고, 무슨 큰 문제가 있으려니 짐작하셨나 보다.
교장 선생님은 우리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없어도 초등학교는 다녀야 한단다. 교장 선생님은 상상이와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교감 선생님에게 아이를 아침마다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 말에 우리가 상상이에게 물으니 상상이 그렇게 해보잔다.
다음날부터 교감 선생님이 손수 차를 몰고 상상이를 데리러 오시기 시작했다. 상상이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오랜만이라고 반겼고, 선생님도 잘 해 주셨겠지. 그렇게 상상이 며칠 학교에 가는데 교감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곧 운동회인데 아침마다 교감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니 학교가 안 굴러 간다고 상상이 스스로 학교에 오란다. 그 말을 전하니 상상이는 그만 가겠단다.
학교에서는 출석 독촉장을 보냈다. "본교에 재학하고 있는 다음 아동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속 15일 이상 결석하고 있어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25(독촉, 경고 및 통보) 1항에 의거 출석독촉장을 발송합니다."
우리 부부가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의무취학유예원을 내겠다 했다. 교장 선생님은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어오란다. 사정을 이야기하면 병원에서 알아서 떼어줄 거라고. 아프지도 않은 아이를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소린데…….
그렇게는 못하지. 남편이 공부를 시작했다. 잡지 <민들레>를 보고, 헌법, 교육법에 시행령까지 펼쳐놓고 공부를 했다. 앞서 학교를 그만 둔 집에도 전화를 해 정보를 구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취학의무'라는 말에 들어간 '의무'는 어른 그러니까 학교(정부)와 학부모의 의무이지 아이의 의무는 아니라는 해석을 해낸 거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기 싫어도 억지로 다녀야 할 '의무'는 없고, 오직 '권리'를 가질 뿐이다. 남편은 그 내용을 대안 교육 잡지 <민들레>21호에 실었다. (김광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선택―아이들 처지에서 보는 취학의무')
다시 교장 선생님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그냥 간 게 아니라 서류―취학의무유예원을 들고. 서류를 접수하겠다니 교장 선생님 태도가 바뀌어 교감 선생님을 며칠 내로 보낼 테니 그러면 취학의무유예원을 내란다.
며칠 뒤 교감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오셨다. 교감 선생님은 두둑한 서류철에서 준비해 온 취학의무유예원을 꺼내셨다. 교감 선생님은 취학 사유를 '부적응'이라 쓰자고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는 못 하겠다 했다. 교감 선생님도 상상이가 교실에서 어찌 지내는지 보셨지만 부적응은 아니지 않느냐고. 우리는 취학의무 사유를 '아이가 집에서 공부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간단히 적고 싶었지만, 다음과 같이 적어 넣었다.
상상이가 2002년 9월에 처음 낸 취학의무유예원의 유예 사유
본 학생은 더 이상 학교에 가기를 원하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기를 원합니다. 그 동안 부모와 학교 쪽에서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부득이 학생이 학교 다니기를 원하지 않기에 강제를 할 수 없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달리 출석을 독촉할 경우 학생은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일정기간 취학의무를 유예하고자 합니다.
1년 뒤 학교 쪽에서 유예기간 만료를 알리는 서류를 보니 유예사유로 '가정교육 강화'라 적혀 있었다. 그래 이렇게 여섯 글자로 쓸 수 있구나. 취학유예의 기간은 1년. 1년 뒤 우리는 다시 유예원을 냈다.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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