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아이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아이들"

산골 아이들 <11> '개척 시대 아이들'

***개척 시대 아이들**

우리 식릿?이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한마디로 개척시대였다.

그 때 우리 집안 풍경. 가마솥이 두 개 걸리고 하수도가 없는 부엌이 낯설어, 낡은 싱크대를 마당 수돗가에 놓고 살았다. 수도가 하나니 거기서 밥해 먹고, 식구들 씻고, 요강도 닦아야 했다. 우리가 쓰던 안방은 네 식구가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그러나 그 방에서 우리 식구가 먹고 자고 손님까치 치르며 살 수 있었다.

한번도 안 해 보던 농사일. 생전 처음 보는 젊은이를 한 마을에 받아들여 주신 마을 어른들. 우리를 보는 눈길이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마을 어른들 하시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 잘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덤벼들어 일을 배웠다. 우리에게 주어진 논밭을 잘 가꾸어야 우리가 여기서 살아남는다 생각했다. 악착같이 일을 했다. 그 해 여름 내 모습. 머리에는 목 뒤를 가리게 천이 달린 모자를 쓰고, 긴팔 긴 바지 입고, 장화 신고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김을 맸다. 손은 곡식을 살린다고 김을 매고, 뒷발로는 곡식을 짓밟으며…….

집 사정이 그러니 아이들도 개척시대 아이들 꼴이다. 꾀죄죄한 옷차림, 눈만 똥그랗고 깡마른 몸매는 우리 식구 공통의 모습이었다. 밥상은 풀밭이 되었다. 우유, 고기, 생선 이런 건 사라지고 오이 호박 풋고추 이런 남새와 거친 현미잡곡밥뿐이다. 탱이 그때, "내가 토깽인 줄 알아. 온통 풀만 차려주고 먹으래." 그래서였는지 탱이 서울서는 키가 큰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키가 작은 편이 되었다. 상상이는 콧물을 달고 살았다.

탱이는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에 적응하면서, 학교 끝나면 집에서 새로운 집안 환경―농사 짓는 집안 아이로 살아야 했다. 탱이가 오면 나는 상상이를 맡기고 부리나케 논밭으로 달려갔다. 그때 탱이가 4학년, 상상이가 네 살. 탱이는 꼬마 엄마 노릇을 해야 했다. 그런 탱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비디오, 다른 하나는 과자. 아이고, 부끄러워라.

탱이와 상상이 둘을 데리고 논밭을 가기도 했다. 탱이 역시 조금씩 농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밭에 있는 게 고구마인지, 콩인지 알기 시작했고, 집에서 기르기 시작한 토끼 먹이를 해 주면서 들꽃 이름도 하나씩 배워나갔다.

상상이는 개척시대 막내답게 저 혼자 알아서 자라야 했다. 뻗친 머리를 하고, 흙 묻은 옷을 입고. 엄마 따라 들을 오가는. 탱이 그 나이 때는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어린이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가거나, 박물관을 데리고 다녔는데 상상이는 작대기 하나 들고 들판을 쏘다니며 저 스스로 보고 깨우쳐야 했다.

***아이들은 어느새 새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나!**

어느 개척시대나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도 그때를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좋았던 점이 있다. 가장 좋았던 점을 들라면 '단순함'이었다. 눈 뜨면 논밭에 가서 일하는 부모. 아이들은 아버지와 엄마와 늘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가까이 있었지만, 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아버지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걸 보고 자라는 건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삽으로 땅을 파면, "나도 해 볼래", 아버지 삽을 건네받아 삽질을 해보았다. 상상이는 자기 키보다 큰 삽으로 낑낑 땅을 팠다. 남편도 힘이 나나 보다. 도시에서는 돈을 벌어다 주어도 늘 적게 벌어온 것 같았다면, 여기서는 자기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식구를 위한 일이 되니까. 내가 봐도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되찾아준 그런 기분이었다.

집에 닭과 토끼 그리고 강아지를 기르기 시작했다. 한 울타리 안에 짐승들과 살아가니 아이들에게 산 공부가 되었다. 상상이가 똥을 누면 강아지가 먹고, 아이들이 먹다 남긴 부스러기는 아이들 손으로 닭장에 넣어준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기만 했던 아이들이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 상상이도 짐승들 앞에서는 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게 닭을 길러 알을 받아먹고, 짐승 똥을 논밭에 넣어 곡식을 길러먹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시골에 놀러가 하루 밤 자는 거라면 뒷간이 불편하기 이를 데 없겠지만, 우리 식구 똥오줌이 다시 식량이 되는 걸 겪으며 불평하지 않고 적응해 나갔다.

상상이를 데리고 밭에 가 일을 하려면 상상이 지루하지. 뙤약볕에 엄마는 일하지, 밭에는 곡식만 있다. 그 나이에도 곡식이 자라는 두둑은 피하고 고랑으로 다녀야 하는 걸 아니 엄마가 일하는 곁에서, "이제 그만 집에 가!", 하고 조른다. 그러다가 막상 집으로 가자하면, "토끼 줄 풀을 해 가자"고 했다. 길을 지나다 처음 보는 풀을 보면 한 잎 씹어 맛을 볼 줄도 알았다.

아이들은 자랐다. 삶이 단순하니 단순하게. 둘레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인심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다. 나무를 옮겨 심어 보면 어린 나무는 일년만 지나면 땅에 뿌리를 내린다. 우리 아이들 역시 어느새 새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나 보다.

그때 탱이가 쓴 일기 몇 편을 보자.

구렁이

학교에서 집에 왔다. 그런데 엄마께서,

"우리 집에 구렁이 살거든. 그러니까 아무데나 쑤시지 말고 구렁이 보더라도 기절하지 마."
"네"

깜짝 놀랐지만 기절하지 말라는 엄마의 농담 때문에 한결 나았다. 처음에는 구렁이가 우리 집에 들어 온 것이 싫었지만 아버지가 쥐도 잡아먹고 집도 지켜준다고 했고 또 물지 않고 피한다고 하셨다. 우리 집에 식구가 늘어서 큰일이다. 하여튼 구렁아, 우리 집 지켜 주고 쥐도 많이 잡아먹으렴. (1998년 4월27일)

모내기

5시 50분에 일어나 6시 10분쯤 논에 갔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한 논을 가지고 싶었지만 지저분하고 뭐가 많은 논을 오리가(오리가 모에 나쁜 것은 잡아먹고 똥을 누면 거름이 되 모가 잘 자람)가 좋아한다고 해서 그냥 그 논으로 했다. 팔을 걷고 신을 벗고 논에 들어가자 기분이 좋았지만 푹 빠질까봐 무서웠다. 모는 대여섯 포기씩 줄에 맞추어 심었다. 할머니께서 내가 한 것을 보시고, "아빠보다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참을 먹고 집에 가서 나 혼자 씻고 학교에 갔다. 비린내가 나서 친구들이 뭐라 그럴 것 같았지만 안 그랬다. 보람이 있었다.

'이제부터 일찍 일어나 집안 일 돕고 학교 가야지.' (1998년 5월25일)

토끼 산타

아침에 마루에서 놀고 있는데 엄마가,

"정현아, 토기 풀 좀 해줘."
"알았어. 그런데 어디에 담아오지?"
"저기 콤바인 포대에."

쌀을 넣는 것이지만 그냥 차곡차곡 접어서 옆에 끼고 뒷산으로 향했다. 양지 바른 곳에는 파란 풀들이 얼마 있었다. 하얗게 서리 덮인 풀들을 뜯다보니 웃옷 소매에는 물과 흙이 묻어 있었다. 또, 새 운동화는 진흙이 묻어 지저분해져 있었다.

'채울만한 풀이 없는데 어쩌지?...... 아! 올 때 보니까 배추밭에 수확하고 남은 것들이 있지 배추로 다 채우면 되겠다.'

아래로 내려가 포대를 다 채우고 어깨에 둘러메니, 영락없는 토기 산타 같았다.

'겨울이라 먹을 것 없는 토끼에게 맛난 풀을 선물해 줘서 토끼들이 좋아하겠지!' (1998년 12월)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