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용돈 1천5백원**
아이를 키우며 돈 때문에 실랑이 해 본 적이 없다. 산골에서 키운 덕이리라. 아이들이 달라는 한달 용돈이 탱이 5 원, 상상이 1천5백원이니 이름이 용돈이지 실제는 한번 돈을 써 보는 정도일 뿐이다.
우리 집에 용돈을 역사는 이렇다. 탱이가 학교를 다닐 때는 탱이에게 용돈을 주었다. 그때는 상상이는 아직 어렸을 때니까 돈이 무언지 몰랐고. 그러다 탱이가 학교를 그만 두고 나서 용돈을 그만 달란다. 동네 가까이 가겟집 하나 없으니, 어쩌다 밖에 나가야 쓸 텐데 그때는 엄마가 다 마련해 주니 괜찮단다.
그러던 어느 날 상상이가 '알바'를 하고 싶어 했다. 부산 사는 어떤 형이 알바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부터다. 그때가 상상이 아홉 살. 둘레에 나무와 풀밖에 없는 곳에서 아이가 어찌 알바를 하겠는가.
"아버지, 메뚜기 사지 않으실래요?"
남편은 아이가 돈에 관심을 가지는 거라 판단하고, 아이의 관심을 받아들여 메뚜기를 사주기로 했다. 상상이는 벼 타작 내내 논에서 메뚜기를 잡았다. 그 덕에 그해 가을 우리 식구는 메뚜기볶음을 맛나게 먹었다. 상상이가 메뚜기를 팔아 모은 돈이 3천 원. 그 돈을 받아들자 상상이는 장에 나가 한번에 다 썼다. 식구들에게 한턱 쓰고, 자기 먹을 과자와 사탕도 사고, 오락실에 가서 오락도 2백 원어치 하고.
그러고 나서 자꾸 알바거리를 찾는다. 아이가 찾아내는 일은 결국은 집안일. 집안일 하고 돈을 받는다는 건 내가 싫다. '그러면 엄마가 밥해 주면 돈 줄 거야? 돈이 필요하다면 용돈을 줄게.' 그래서 상상이는 용돈을 받기로 했고, 받고 싶은 용돈 액수를 정하라니 이 만큼을 원했다. 상상이가 그러니 탱이도 덩달아 용돈을 다시 받기로 한 거다. 상상이 그 뒤 새달 1일이 되면 용돈을 챙겼고, 용돈을 받거나 뜻밖의 용돈이 생기면 장에 나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리곤 했다.
상상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돈이 왜 필요해?"
상상이는
"내 돈 쓰는 맛이 좋아서요."
***아이에게 설날 큰돈이 생겼으니**
한달에 1천5백 원으로 만족하며 사는 상상이에게 이번 설날 세뱃돈으로 큰 돈이 생겼다. 서울 사는 친척어른들이 세뱃돈을 1만원씩 선뜻 주셨고, 그걸 모으니 그런 큰돈이 된 거다. 우리는 누구에게 정을 나누고 싶으면 맨 먼저 농사지은 곡식이 떠오르고, 아이라면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만들어줄 생각부터 한다. 그러나 서울 어른들은 돈으로 정을 나눈 거다.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까지는 큰돈은 엄마 주고, 자투리 돈만 자기 용돈으로 썼는데, 올해는 그렇게 안 하고 다 쓰겠단다. 지금까지 저금한 돈도 많고, 한번 저금한 돈은 자기 마음대로 찾아 쓸 수 없더라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남편 얼굴 한번 쳐다보고, 탱이 얼굴 한번 쳐다본다. 남편은 아이 마음대로 하게 두라고 할 테고. 탱이는
"아, 나는 제 나이 때 어째서 못 그랬지! 그저 1만원짜리는 무조건 저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상상이에게 저 큰돈을 알아서 쓰라고 해? 그래도 될까? 망설이면서도 상상이를 막지는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상상이 씀씀이**
상상이에게 돈이 무얼까?
아기 때부터 산골에서 자란 상상이는 자기가 돈을 내고 무언가를 살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이 무언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돈을 알게 되면서 그맘때 탱이하고는 달랐다. 상상이는 돈이 생기면 겁 없이 잘 쓴다. 지지난해인가는 설날 생과일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다니까 세뱃돈을 날 주면서 사오라 했다. 직장인이 된 사촌형들도 줄줄이 있는데 가장 꼬마가 그러니 모두 웃었다.
이번 세뱃돈 자기가 쓰기로 한 뒤 상상이는 저녁에 거실 한 복판 바닥에 돈을 한 장씩 늘어놓는다. 한 장 한 장. 상상이에게 돈은 새로운 탐구의 대상일가? 이 사회와 접속해보는 창구일가?
돈이 손에 들어오자 상상이 하루에도 여러 번을 묻는다.
"엄마, 언제 장에 나가요?"
돈이 있으니 자꾸 나가서 무얼 사고 싶겠지. 우리끼리 이야기하다가도 나간다는 말이 나오면 귀신같이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나갈 일이 생겼다. 나가면 아이는 꼭 따라가 사댄다.
아이가 내 눈앞에서 무얼 사니, 나는 참견을 하게 된다. 무얼 샀는지? 얼마나 썼는지? 가겟집에 가보면 아이 눈높이로 진열된 것들이 많다. 어른 눈에는 잘 띄지도 않는 것인데 아이들 눈을 혹하게 만드는 것들 말이다. 상상이 그동안 사 들인 것을 적어보면 무선 조종차, 만화책, 군것질, 또 다른 놀이감…….
무선 조종차는 상상이가 꼭 사고 싶었던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면에 있는 가게에 그게 있으니 단박에 상상이 그걸 사왔다. 신나서 돌아온 아이가,
"안 돼요. 건전지를 넣어야 하나 봐요."
설명서를 보니 건전지를 따로 사서 넣어야 한단다. 건전지 넣는 곳을 보니 작은 십자드라이버가 따로 있어야 하겠다. 아이는 입맛만 다시고, 나는 화가 난다.
읍내 도서관에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건전지와 작은 드라이버를 샀다. 그러니 무선조종차가 움직인다. 아이는 얼른 해 보고 싶겠지만, 먼저 도서관에서 볼일을 보고 현관에서 무선조종차를 움직여 보았다. 신이 났겠지. 그런데 조금 뒤 안 된단다. 건전지가 다 닳았나? 그럴 리가. 오 분도 안 되어서? 건전지를 바꾸어도 먹통이다. 고장 났나 보다. 상상이 소원하던 무선 조종차는 이렇게 오 분 만에 쓰레기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은**
그런 일이 있은 뒤, 더 참견을 하게 된다.
"너 오늘 장에 가서 아무것도 안 샀어?"
"샀는데요. 무슨 구슬동잔가?"
플라스틱 조각으로 조립하게 되어있는 걸로 값이 6천 몇백원이나 한단다. 1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내 눈에는 잠깐 재미보다 쓰레기만 되는 것들이다. 가겟집의 상술이 돈 먹는 하마로 비치며 아이를 거기서 구해내는 게 부모 아닌가 싶다.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겠다. 보름 만에 빨간불을 켜고 말았다. 일단은 돈을 저금하자고. 나중에 필요하면 언제라도 찾아주겠다고. 귀 아프게 이야기했는지 상상이 돈다발을 내게 내민다.
"빨리 받으세요."
고개를 돌리고 가버린다. 잔돈만 쨍그랑거리는 돈 봉투를 흔들며. 2만원을 남겨주었다. 다음날 아침 상상이는 2만원을 마저 주었다. 엄마와 돈 때문에 더 이상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아이는 이것저것 사보는 재미 대신 평화를 선택한 거다. 그 뒤 상상이는 내가 면에 나가도 따라 나가지 않는다. 하루를 자기 리듬에 맞춰 잘 지낸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아이에게 돈이 무언지를 지켜보는 이야기를 쓰려 했다. 그러다 중도지폐를 하고나서는 실패담을 적어 내려갔다. 아이를 믿지 못하는 나와 아이를 유혹하는 상술이 답답했다. 그러나 글을 <프레시안>에 올리기에 앞서 다시 보니 내가 좀더 보인다. 결국은 내가 그 돈을 아까워한 게 아닌가? 돈에 흔들린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던가!
글을 다 적고 컴퓨터를 끄며 상상이에게 '엄마가 잘못한 줄 알겠다.' 했더니 상상이,
"어휴~ 이제 알았어요?"
"그럼 나하고 원카드 해 줘요."
***필자 소개**
무주 산골에서 자급 농사를 하며 자연에 눈 떠가고 있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맛을 나누고 생각이 서로 이어지는 이와 만나고 싶어 틈틈이 글을 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두루 할 수 있는 전인이 되고 싶다. <자연달력 제철밥상>(들녘 펴냄)을 썼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