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내에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완공하겠습니다. 건우야 어때?"
위 약속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중증 장애아동 건우(당시 10살) 앞에서 전국의 장애아동 가족에게 한 것이다. 이후 권역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42번이 되었다. 장애아동 가족들은 대한민국이 드디어 우리 아이들을 국민으로 인정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첫 국정감사에서 건우 아빠가 참고인으로 참석한 가운데 구체적 계획이 없는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문제가 되었고, 정부가 예산안도 올리지 않아 개별 국회의원안으로 국회에 상정되었다. 건우 아빠는 국회 앞에서 예산안 통과를 바라며 1004배와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우여곡절 끝에 설계비가 통과됐지만,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었고 내놓은 계획은 원래 약속과 달리 권역별 병원의 축소, 왜곡된 수요조사 결과와 비정상적 병상 규모, 비현실적 건립 예산, 불확실한 운영비 지원 등으로 생색내기에 그치는 게 아닌지 논란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우 아빠는 2018년 폭염경보가 내려진 청와대 앞에서 일주일간 매일 1004배를 하며 건우에게 약속한 병원을 제대로 지어달라고 국민청원을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정부는 '불가능'이란 말로 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대한민국 첫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추진하는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민간에서 제공되기 어려운 장애아동에 대한 공공 재활의료서비스를 통해 장애아동 가족의 의료 수요에 부응할 필요가 있고 장애아동의 특성상 지속적 재활치료가 필요함에도 이동하여 치료받는 경우가 많아 거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급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민간에서 제공되기 어려운 공공재활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건립하는 시작부터 비현실적인 건립예산 책정에다 운영비 지원을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서로 미루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어린이전문재활병원이 수익성 때문에 민간에 단 하나밖에 없는데도 정부는 장애어린이들은 안중에도 없고 제대로 공공병원을 짓고 운영하겠다는 의지 자체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또한 거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급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권역별 병원은 충남권, 경남권, 전남권 등 세 곳에 한정하고 경북권, 충북권, 전북권, 강원권 등은 외래중심의 센터를 짓겠다고 한다. 경북권 같은 경우 입원 병상이 없는 센터건립을 하겠다는데, 만약 경주에 병원에 들어선다면 과연 봉화 같은 곳에서는 입원 병상도 없는데 외래치료를 받으러 올 수 있을까? 여전히 재활 난민으로 수도권을 떠도는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세 곳의 병원도 최소 설립기준인 입원 30병상 수준의 동네 병원급에 맞추어 놓고 권역별 중심병원으로서 기능을 하라고 추진하는 것도 비정상적이다.
정부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추진한 목적은 집중 재활치료 및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영유아기 장애아동 및 중증장애아동을 위한 기관을 통해 장애아동 가족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보면 현재 장애 발견 초기, 즉 골든타임에 있는 아동들이 갈 병원이 없다는 것이고, 중증 장애아동이 재활치료 받을 곳이 없어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정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예산 부족 때문에 전남권과 충북권 지자체들은 건립이 어렵다고 밝히고, 경남권 지자체는 여전히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북권은 입원 병상이 없는 센터 건립은 의미가 없다고 봐서 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게다가 정부는 장애아동들의 심각한 치료실태 문제를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모른 척하고 있다. 2016년 보건복지부 정책용역자료를 보면 재활치료가 필요한 뇌성마비와 발달지연 환자 4만6468명 중 1만6231명(34.9%)만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후 보건복지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말을 바꾼다. 측정되지 못한 수요를 근거로 병상 수 공급을 늘릴 경우, 지속적인 병원 재정 악화와 국고 낭비의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아동인권 정책모니터링 결과 보고(2019년)를 통해 보건복지부의 의료수요가 과소 추정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장애아동 가족과 시민단체들은 재활치료 수요와 치료 실태를 제대로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사자들이 저곳에 시급히 구해야 할 생명이 있다고 가슴을 치며 말하고 있는데, 생명을 구해야 할 정부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제대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이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언제까지 장애아동들은 제 때 제대로 치료조차 받을 수 없고, 자신의 지역을 떠나야 하고, 치료 때문에 의무교육에서도 소외되고, 오직 가족만이 아이를 지키려고 발버둥 쳐야 하는가?
당사자 가족들이 나서지 않아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당사자 부모들은 30대 초중반 정도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대부분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장애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역에 치료시설조차 없어 재활난민으로 떠돌며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현실에서 무슨 단체에 가입해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저 답답한 현실을 버텨나간 이들에게 뭐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2016년 국립재활원의 자료를 보면, 전체인구 대비 장애인의 조사망률은 4배 가량 높다. 이 중에서 10대 미만의 장애인의 조사망률이 37.9배로 가장 높고 10대 장애인의 조사망률이 16.4배로 두 번째로 높다. 이 정도면 당사자 가족보다 사회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인자를 가진 이른둥이(미숙아)와 저체중아의 출생이 늘고 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이들의 숫자는 5배 이상 증가했고, 이와 관련해 중증 장애아동의 비중은 2015년 기준 87.1%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사회에서 이렇게 노산·조산으로 인한 이른둥이·저체중아의 증가, 중증 장애아동 비중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재활치료가 필요한 장애아동 중 65% 이상이 치료시설이 부족해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중증 장애아동에 대한 치료, 교육, 돌봄은 오직 가족에게 맡겨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겪은 장애아동 부모는 또 아이를 출산할 수 있을까? 이를 옆에서 보는 친척과 이웃들은 출산이 얼마나 무서울까? 대한민국은 장애아동의 생존 자체가 어렵다 보니, 출산마저 두려운 사회환경이다. 중증 장애아동의 치료 문제는 개인(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병원 하나를 짓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없었던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권역별로 소아재활의료체계를 구축하는 시작이고 중증 장애아동들이 떠돌지 않고 한 곳에서 치료받으면서 교육과 돌봄을 함께 받을 수 있는 통합시스템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출산의 근원적 공포를 사회적 시스템으로 줄여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동안 무시됐던 생명과 공공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정부가 동의하고 약속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가 돈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어린이도서관 건립 정도의 예산을 가지고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고 고개를 젓고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꿀 예산은 있어도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운영할 돈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 보건소에서 적자 운운하지 않는데 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세워지기도 전부터 적자 운운하면서 규모를 축소하는가?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불가능해 보인다.
2014년 건우네 가족이 거리로 나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도 했다. 당시 일본에는 200개가 넘는 어린이재활병원이 있었지만, 대한민국에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지난 6년 동안 음식을 입으로 못 먹는 건우가 먹을거리는 위로 투입하고 석션을 수시로 하며 온몸으로 말했다. 햇볕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하고 말도 못 하는 건우가 시청으로, 국회로, 청와대로 나섰다. 건우 엄마는 수백 번 힘든 현실을 인터뷰로 증명해야 했고 건우 아빠는 거리에서 만 번이 넘게 무릎을 꿇었다. 가족의 힘만으로는 건우의 생명을 지킬 수 없기에 나선 길이었지만 수없이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건우네 가족 옆에 시민들이 붙기 시작했고 함께 뛰기 시작하더니 시민추진모임이 만들어지고 같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기적의 새싹이 트인 것이다. 이런 시민들의 움직임에 언론과 정치권이 움직이고 정부가 약속을 하며 불가능은 기적으로, 가능한 현실로 다가오는 듯싶었다. 그런데 다시 건우네 가족은 불가능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의 불가능은 사회적으로 돈이 없어서, 인력이 없어서, 여론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그저 약속한 대로 하면 되는 일이다. 공공병원이라는 이름에 맞게 국가가 설립과 운영을 책임지면 된다. 정부는 현실적으로 다시 건립예산을 책정하고 운영비 국비 지원과 소아재활 수가를 개선하면 된다. 법적 근거도 필요하다면 마련하면 된다.
지금이라도 장애아동들의 치료 현실을 제대로 조사하고 그 가족들의 의견을 수렴하라. 이젠 정부가 걱정하지 말라고,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해 달라. 예산으로 법으로 행정으로 보여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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