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경남 한 펜션에서 '먼저 간다'는 쪽지를 남긴 20대 청년 3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유족들에 의하면 이들은 이전부터 신변을 비관해왔다고 한다. 실제로 2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며, 연령대별 전체 사망 원인 중 20대의 경우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게다가 한국사회 불평등의 격차는 나날이 가속화 되고, 취업절벽 시대에서 청년들은 비정규직, 실업자의 삶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대학 졸업이 필수처럼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대다수의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 빚을 갚는 것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들이 만나게 되는 사회의 첫 장면은 불안한 노동 현장과 학비, 주거비 등으로 발생한 빚에 쫓기는 자신의 모습이다.
이런 청년들의 서사는 가난할수록 더욱더 눈물겹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청년의 빈곤 실태: 청년, 누가 가난한가' 보고서에 의하면, 25∼29세 빈곤율은 2013년 4.7%, 2014년 5.9%, 2015년 7.1%로 꾸준히 높아진다. 게다가 한 번 빈곤한 청년들은 계속 빈곤 상황에 처해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실제로 2006년 19∼34세 청년층의 상대소득 빈곤율은 6.7%였고, 이들이 28∼43세가 된 2015년에도 빈곤율은 6.3%로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한 번 빈곤한 청년들은 아무리 '노오력'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쉬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년수당·청년기본소득이 시행되었지만…
청년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과 경기도는 각각 '청년수당'과 '청년 기본소득'을 도입하였다. 두 제도 모두 현금복지라는 점은 공통적이나 연령, 소득기준과 금액에서 차이가 있다. 경기도의 경우 만 24세 모든 청년들에게 '무조건' 지급하고 있으며, 서울의 경우엔 만19세~ 만 34세까지 청년 중 미취업자, 졸업 후 2년이 넘은 사람 등 신청 자격 요건에 따라 수급 혜택이 달라진다.
일각에서 나오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두 지역 모두 클린카드, 지역화폐 등을 활용하여 사용처를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겉보기에도 말끔하고 '괜찮은 정책'이다.
실제로 경기연구원에 의하면 수급 당사자 청년들의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77.10점(만족 80.6%, 보통 14.5%, 불만족 4.9%)인 것으로 나타나 청년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서울의 청년수당과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에서 공통점 하나가 더 존재한다. 바로 '줬다 뺏기' 문제이다.
경기도 청년 중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경우 '이중 지급'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청년기본소득을 받으면, 그 금액만큼 '생계급여'가 삭감된다. 서울시에 사는 기초생활수급 청년들은 아예 청년수당을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이 문제를 파악하고 기초생활수급자도 청년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 했으나, 보건복지부는 '어렵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특히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같은 경우는 경기도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한다고 했음에도, 기초생활수급 청년은 사실상 혜택에서 제외된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복지정책이다. 즉 가난할수록 복지에서 소외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진다.
가난하면 받을 수 없는 청년복지
이 문제는 처음 일어난 것이 아니다. 2014년 노인들을 위한 기초연금이 시작되었을 때도, 기초생활수급노인 40만 명은 기초연금 전액이 생계급여에서 삭감되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후 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가 5년 동안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전히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2018년 정기국회에서는 기초수급노인에게 기초연금 '10만 원'을 보장하는 예산안이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여 올라갔으나 지역구 쪽지예산에 밀려 예산마저 '줬다 뺏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적용할 때 소득을 생계급여에서 제외하는 '보충성 원리'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답변한다. 즉 청년수당도, 청년기본소득도, 기초연금도 모두 '소득'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인정하나 하나씩 예외를 두면 기초보장 제도의 근간이 흔들린다고 우려한다. 보건복지부의 눈에는 가장 어려운 계층이 기초연금, 청년수당, 청년기본소득에서 배제되는 억울함이, 형평성 훼손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결국 국가가 가난을 '죄'로 규정하는 꼴이다. 국민들은 끊임없이 가난을 증명해야 하고, 설사 증명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권리마저 뺏기는 불행이 반복되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정부는 9월 29일 국무회의에서 2020년 예산안을 확정하였다. 내년 예산(총지출) 규모는 513조 5000억 원으로 확장적 기조의 예산안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복지지출 규모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GDP 대비 21%를 사회복지를 위해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제 겨우 11% 수준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리 소극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정책을 펼 때가 아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다른 어떤 정부보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임기를 보내고 있는 2년 4개월여 동안 무려 2053건의 시행령이 공포됐다. 이로 인해 '시행령 정치'라며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민생을 돌보고, 서민들의 삶을 개혁하는 일에는 지나치게 엄격하다. 이번 줬다 뺏는 청년수당과 기초연금도 시행령 개정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사안이다. 왜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막고 있는가.
이러한 국가의 인색함 때문에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대국 임에도, 노인빈곤율 46%라는 충격적인 빈곤문제를 안고 있다. 물론 국민들이 노년에만 가난한 것은 아니다. 몇 달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조국 사태'에서 청년들은 이른바 '사다리 걷어차기'를 목격하고, 양극화에 의한 일자리·교육·주거 등 모든 분야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한국의 국민들은 어떤 생애 과정에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그 원인엔 가난한 이들을 차별하는 복지정책이 존재한다. 아래 헌법 제10조가 구현되도록 우리 모두가 가난한 사람의 복지를 옹호하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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