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위원회는 이렇게 비참한 조건에서 일본의 민간기업을 위해 대규모 노동력 징집이 벌어진 것은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 여긴다. 희생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재판 계류 중이기는 하나, 이들에 대한 개별 보상 측면에서는 어떠한 것도 진행된 바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우리 위원회는 정부와 정부 사이에 지급된 금액이 희생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다."(The Committee considers that the massive conscription of labour to work for private industry in Japan under such deplorable conditions was a violation of the Convention. It notes that no steps have been taken with a view to personal compensation of the victims, though claims are now pending in the courts. The Committee does not consider that government-to-government payments would suffice as appropriate relief to the victims.)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1999년에 발간된,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적용 전문가위원회(이하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의 결말 부분이다. 그렇다. UN보다 오래된 국제기구에서 20년 전에 이미 일본의 강제징용 행위가 ILO 핵심협약인 ‘강제노동 금지협약’(제29호)을 위반한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그저 판단만 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강제징용 희생자 개인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권고도 포함되었다.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이나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얘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국제노동기구가 이 문제를 다뤄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의 교사노조가 ILO에 최초로 진정한 사건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담고 있다. 우선 ILO 전문가위원회가 저 사건을 다루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일본의 오사카 특수영어교사노조(이하 ‘오사카 교사노조’)가 1995년에 ILO에 진정을 제기하며 2쪽 짜리 편지를 팩스로 보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전범국가 일본의 노동조합이 문제제기 출발점이 되어준 것이다.
당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한·일 청구권협정은 물론이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도 일본의 식민지배 불법성은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식민지배 불법성 인정과 함께 일본의 사과와 원상회복, 피해자 및 (유)가족에 대한 충분한 배·보상 문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찾아낸 길이 국제노동기구 제소였다. ILO 제29호 협약은 전쟁 시기 동원된 ‘성노예’ 사건을 여성에 대한 강제노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ILO 제소는 노동조합 기구를 활용해야 해서 1995년 3월 정대협은 한국노총을 통해 ILO 이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당시는 민주노총 결성 이전이라 한국노총을 통했으며, 이후에는 양 노총이 함께 대응에 나서게 된다.)
그러나 ILO 이사회는 이 문제 논의를 질질 끌며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문가위원회에서 이 사안을 다룬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오사카 교사노조는 ILO 이사회가 아니라 전문가위원회를 통해 문제제기 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그게 효과를 본 것이다. (1996년에 정대협과 한국노총은 ILO 제소를 철회하고 전문가위원회 논의로 집중하게 된다.)
1932년에 29호 협약 비준한 일본
오사카 교사노조는 왜 이 문제를 최초로 ILO에 제소하게 되었을까. 조합원들 중에 위안부 또는 강제징용 피해자나 가족이 있었던 걸까? 놀랍게도 그들이 ILO에 전달한 편지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자기 나라인 일본 정부가 성 노예와 강제노동을 강요해놓고 제대로 된 배·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진솔하게 고발하고 있다.
ILO 전문가위원회는 감시감독 메커니즘의 일환으로, 특정 협약을 비준한 나라가 이 협약을 위반하고 있다면 노동자단체 또는 사용자단체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문제제기가 이뤄지면 전문가위원회 논의가 가능하다. 일본은 1932년에 이미 ILO 29호 협약을 비준한 상태였으므로 강제노동 금지협약을 어길 경우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특히 29호 협약의 경우 한번 가입하면 그로부터 10년간은 탈퇴할 수 없도록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1932년에 비준했다면 1년간 유예기간이 적용되어 1933년부터 효력을 갖게 되므로, 1943년까지는 29호 협약 준수의무가 강하게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 기간이 바로 위안부·강제징용 문제가 집중된 시기이므로 오사카 노조는 이런 점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정대협과 한국노총의 ILO 제소가 상대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면, 오사카 교사노조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도 다루고 있다. 따라서 ILO 전문가위원회가 일제하 강제징용 문제를 다루게 된 점에 대해서만큼은, 오사카 교사노조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내 수많은 민주노조들이 힘을 보태다
맨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1999년에 전문가위원회는 처음으로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가 ILO 협약 29호 위반임을 확인하는 공식 보고서를 발간하게 된다. 그 뒤로도 전문가위원회는 거의 매년이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ILO의 감시감독 메커니즘은 해당 문제가 해결 또는 종결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문제를 다루게 된다.
1999년 이후로도 2001~2005년, 2007~2009년, 2011년, 2013년, 2016년에 이어 2019년까지 총 11회에 걸쳐 보고서를 작성해왔다. 그 보고서들을 훑어보다가 또다시 새로운 사실들을 접할 수 있었다. ILO 전문가위원회가 한국의 2개 노총이 제출한 자료보다 일본 노동조합들의 자료를 더 많이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사카 교사노조 말고도 특히 자주 인용되는 노동조합은 전일본조선기계노동조합 간토지역위원회, 일본노동조합 도쿄지역위원회이다. 이들 노동조합은 한국의 2개 노총과 별도로 매년 ILO 전문가위원회에 이 사안과 관련한 새로운 사실관계 또는 주장을 담은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
이토록 열성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는 곳이 또 하나 있는데 이 사건의 피고라 할 수 있는 일본 정부이다. ILO 전문가위원회의 판단 또는 의견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를 달아 변명하는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 흔히 ‘렌고’라고 불리는 일본 노총도 가끔 자료를 제출하는데, 안타깝게도 일본 노총은 2차 대전시기 일본 제국주의 범죄를 알리는데 소극적인 편이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노동조합들은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10여 개의 소송 진행상황 업데이트, 이 사안에 대한 일본 정부 주요 인사들의 발언내용 및 그에 대한 의견, 일본 정부의 변명에 대한 반박 자료와 논리를 매년 ILO에 제공하고 있다. 보통의 열성이 아니라면 자국 정부의 범죄를 국제사회에 저토록 성실하게 고발하는 일이 가능할까.
일본 정부의 '내로남불'을 폭로하다
일본 정부가 ILO에 제출한 변명은 우리에게 익숙한 얘기들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정부들 사이의 청구권만이 아니라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도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51년 전범국가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켜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때부터 일관되게 적용되어온 원칙이라는 것.
그런데 2002년에 발간된 ILO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매우 모순적이라는 지적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특히 보고서는 1992년에 참의원 예산위에 참석한 당시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야나이 순지가 “한-일 청구권협정이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처음 인정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ILO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가 자국민이 피해자가 된 사건에 대해서는 청구권이 살아 있다며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사례 2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 1945년에 나가사키·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피해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 △ 2차대전 후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사할린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에 처해진 일본군 피해자가 제기한 ‘시베리아 억류소송’.
"(1951년 일본과 승전국들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19조의 (a)항은 일본 국민들 개개인이 트루먼 또는 미합중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일본이 포기했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원고 측은 (1956년 체결된) 소-일 공동선언의 결과로 일본이 소련을 상대로 법적, 실질적 청구권을 모두 포기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이 소-일 공동선언 제6조 2항에서 포기한 권리는 일본이 보유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일본 국민 개개인들의 권리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은 소-일 공동선언을 통해 일본 국민 개개인에게 속한 권리들 그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각각의 소송 사건에서 일본 정부가 밝힌 입장들이다. 승전국 또는 소련과의 관계에서 일본 국민이 피해자가 된 사건에서는, 양국 간의 협정에도 불구하고 국민 개개인이 상대 국가를 상대로 한 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주장이다. 협정을 통해 포기한 것은 일본 정부의 청구권일 뿐이라는 것. 정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얘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데 ILO 전문가위원회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저런 사실관계들, 정부 관료의 발언이나 주요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밝힌 모순적인 입장들은 어떻게 수집했을까? 매년 ILO에 자료를 보내고 있는 일본의 노동조합들, 즉 오사카 특수영어교사노조, 전일본조선기계노동조합 간토지역위원회, 일본노동조합 도쿄지역위원회… 바로 그들이 수집해서 보낸 것들이다.
일본에 지지 않을 것? 그렇다면 ILO 협약 비준부터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렇게 나왔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 야구 경기나 학술 올림피아드도 아니고 국가가 국가를 상대로 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은 없지만,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강제징용 사건을 다뤄온 역사를 다시 살피며 최소한 이런 지점에서 일본에 뒤처져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점이냐고? ILO의 핵심 협약 비준 문제이다. 일본은 이미 1932년에 강제노동 금지협약인 제29호 협약을 비준했다. 결사의 자유 협약인 제87호는 1965년에, 제98호 협약은 1953년에 각각 비준한 상태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결사의 자유 협약은 물론이고, 강제징용을 협약 위반으로 제소한 제29호 협약도 비준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함에 있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조치는 강제노동 금지협약을 비롯해 ILO 핵심협약 모두를 즉각 비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 정부를 ILO 협약 위반으로 고발해 왔으면서, 정작 한국 정부는 그 협약들을 비준하지 않았다면 이거야말로 진정성이 결여된 주장 아닌가. 과연 어떤 나라가 한국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주겠는가.
한·일 청구권협정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도 일제의 식민지배를 불법이라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제사회에 우리의 정당성을 당당하게 알린 계기가 바로 ILO 강제노동 금지협약을 활용한 제소였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한국의 민주노총·한국노총, 그리고 일본의 수많은 민주노조들이었다. 그 어떤 협정이나 조약에서 찾을 수 없었던 정당성을 ILO 협약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ILO에서 일본의 강제징용을 국제협약 위반으로 선언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알리는 일이다. 아울러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정당성을 굳건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도 강제노동 금지협약을 비롯한 ILO 핵심협약을 즉각 비준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 다행히 이 분야는 조금만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 일본은 ILO 핵심협약 8개 중에서 105호 협약은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기존에 비준한 4개에 더해 한국 정부가 나머지 4개 협약을 모두 비준한다면 최소한 이 분야에서만큼은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게 되지 않겠나. 제발 이런 문제에서만큼은 일본에 뒤처지지 말자.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들
이번에 과거 역사, 특히 한·일 관계를 다룬 국제노동기구 논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여러 가지로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과연 일본의 민주노조들처럼 해낼 수 있을까?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 중 일부가 저지른 양민 학살이나 강간 사건들, 이것을 한국과 국제 사회에 적극적으로 쟁점화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에 나설 것을 촉구할 수 있을까?
사실 ILO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 일본 노동조합들이 제출한 문서들이 자주 인용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민주노총·한국노총도 정말 열성적으로 자료를 제출하고 각종 회의에서 수많은 어필을 해왔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일본 정부의 주장을 제압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다름 아닌 일본의 노동조합들이 자국 정부의 범죄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 자료들 아니겠는가.
바로 이 대목이다. 일본의 식민지배 불법성도,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배·보상도 부정하며 연일 한국에 대한 공격에 여념이 없는 아베 정권, 그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일본 내에서 아베 일당의 군국주의 야망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촘촘하게 일본의 노동자·시민단체와 연대의 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ILO의 이사국이자 매년 의무금 내는 순위로는 상위 클래스인 한국 정부, 그중에서도 고용노동부가 연일 특별연장근로 허용이니 화학물질 관리와 산업안전 규제완화를 떠들어대고 있다. 처음엔 반도체 소재·부품 연구개발에만 한정해서 허용할 것처럼 떠들더니, 예상대로 정부와 여당은 이제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혜택을 입는 기업들이 바로 일본이 1965년에 배·보상 대신 지급한 경제발전기금으로 엄청난 특혜를 받은 재벌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노동조합들의 고생 끝에 ILO로부터 일제의 강제징용이 강제노동 금지협약 위반임을 입증해 냈건만 일본 정부에 맞설 수단으로 특별연장근로라는 ‘강제노동’을 노동자에게 부과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 물어보자. 과연 이런 조치들이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일까? 위안부 문제를 여성에 대한 강제노동으로 규정해 노동조합들과 함께 ILO 제소에 나섰던 피해자들이 저런 규제완화에 동의할까? 강제노동에 처해져 임금체불과 권리박탈을 당해온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자신의 후손들에게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되기를 바랄까?
(에필로그) "올해 여름휴가는 대한민국에서" "일본, 가지 않습니다" 곳곳에 정치인들이 붙여놓은 현수막 때문이 아니라 여행비용이 부족해 8월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어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ILO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 자주 오르내리던 일본의 민주노조들을 찾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연대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일본어를 알지 못하는 탓에) 그 노동조합들의 영문 명칭을 남겨놓는다.
Osaka Fu Special English Teachers' Union(OFSET)
Kanto Regional Council, All-Japan Shipbuilding and Engineering Union
Tokyo Local Council of Trade Unions (Tokyo-Ch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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