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각영 검찰총장이 9일 밤 노무현 대통령에게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사퇴했다. 김 총장의 사퇴를 계기로 노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토론회에서 불신임을 받은 현 검찰 고위층들 상당수도 무더기 퇴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각영 총장의 불만 토로는 그러나 교묘하게 이번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물밑에서 보여온 기회주의적 더블 플레이를 합리화하려는 '정치검사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비판여론을 자초하고 있다.
***김각영,"검찰 성명사태는 불공정 인사 시스템 때문"**
김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간 대화가 끝난 뒤 세 시간 반 뒤인 이날 밤 8시25분께 기자들을 총장 접견실로 불러 발표한 퇴임사에서"인사권을 통해 검찰권을 통제하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확인됐다"며 "검찰권 행사의 최고 책임자로서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부적절한 사람으로 지목된 이상 검찰을 이끌고 부정부패 척결 임무를 수행해 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검찰총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근 검사들의 성명사태를 야기한 근본원인은 모든 검찰인의 열망인 공정한 시스템에 의한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법에 의한 신분보장이 이뤄지고 능력.자질.품성.공과에 관하여 객관적 검증작업을 거친 투명한 인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오늘 후배들이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해 기개있게 검찰개혁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고 선배로서 한없이 자랑스러웠다"며 "후배들은 법에 정한 검사의 신분보장 정신을 수호하고 정치권으로부터 진정으로 독립한 검찰상을 세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검찰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김 총장은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사의를 공식표명하고 이를 노 대통령에게 전달해주도록 요청했다. 그는 또 강금실 법무장관에게도 사의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이 사퇴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노 대통령은 김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빠르면 10일 후임총장을 내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김 총장의 사퇴를 계기로 노 대통령으로부터 공개석상에서 불신임을 받은 현 검찰 상층부 상당수도 동반사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각영의 끊임없는 더블 플레이**
김각영 검찰총장이 총장이 된 것은 지난해 11월11일 `피의자 사망'사건의 여파로 이명재 당시 총장이 전격사퇴하면서 직후로, 그는 4개월만에 총장직을 물러난 셈이다. 외형상으로는 검찰총장의 2년 임기가 보장되지 못한 형국이다.
그러나 김 총장은 애당초 '대선용 검찰총장'이었고, 개혁을 표방한 노무현 정부와는 여러 모로 맞지 않는 구시태 인사였다는 게 검찰내 중론이었다. 그는 지난해 `이용호 게이트' 사건 당시 서울지검장을 지내는등 게이트 연루 인사로 꼽혀 왔고 그 결과 지난해초 인사에서 대검 차장에서 부산고검장으로 전보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새 정부 출범때 노 대통령의 `임기 보장' 약속을 받자, 전국 평검사 회의를 상설화하는가 하면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국민의 소리' 코너를 신설하는 등 외형상 개혁 드라이브에 합류하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면은 그렇지 않았다. 서열파괴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 반발이 시작된 지난 6일 김각영 검찰총장이 일부 검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자신도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이용호 게이트'의 관련 수사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검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있는 김대웅 고검장과 신승남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취소를 강금실 법무부 장관에게 건의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그의 본질은 변함없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김대웅 고검장등은 아직 첫 공판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김각영의 더블 플레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음이 9일 평검사들과의 공개토론회 과정에 드러났다. 강금실 법무장관은 토론회 과정에 "검찰총장이 인사안을 서면으로 주며 검사의 이름을 거명하며 몇 분을 천거했으나 저로서는 정치적으로 검찰이 의혹을 받았던 분들이 있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고문사건과 관련된 분도 있었다"는 충격적 내용을 공개했다.
이는 두가지 면에서 김각영 총장의 이중성을 드러낸 증언으로 해석된다.
첫번째는, 검찰 수뇌부 인사는 강금실 법무장관 혼자의 작품이었다는 그동안의 김 총장 주장의 허구성이다. 이는 서면으로 후보 명단까지 제출했다는 강 장관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는 사실이다.
두번째는, 검찰내 정치검사들의 중용을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김 총장이 애당초 관심 있었던 것은 검찰의 독립성이 아니라 기득권 수호였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후배 검사들도 불신임**
김각영 총장은 평소에 부하 평검사들 사이에서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었음이 토론회 과정에 여실히 드러났다.
한 검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총장으로 인사권을 넘겨달라고 하는 것이 마치 현직총장 김모 아무개를 옹호하면서 젊은 여자 장관 싫다거나 지금 모신 총장을 옹립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다른 검사는 "서열파괴를 통해 선배 정치검사들을 찍어내는 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총장에 대한 우회적인 불신임 표시였다.
이처럼 전국민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위아래로 불신임을 받으면서 더이상 총장직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게 확실해지자, 김각영 검찰총장은 토론회가 끝난 뒤 고심끝에 이번 사태가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권 장악 음모에 의한 것인양 본질을 호도하며 '후배들의 기개있는 모습'을 예찬하는 식의 퇴임사를 발표하며 물러난 것이다. 어차피 밀려나는 마당에 검찰 후배들로부터나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자는 식의 계산이 읽히는 대목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김각영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준 더블 플레이는 왜 현재의 검찰 수뇌부에 대한 대대적이면서도 신속한 물갈이가 불가피한가를 보여주는 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김 총장 등 정치검사가 상당수 포진돼 있는 현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검찰로 인사권이 이양될 경우 이는 정치검사들의 기득권만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김각영 사태는 노무현 정부에게도 하나의 명백한 반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직후 김각영 검찰총장에 대해 '임기 보장'을 약속했었다. 이는 가능한한 임기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선의로도 해석가능하나, 새 총장 인선에 따른 국회 인사청문회를 과도하게 인식하거나 또는 인재 풀의 빈약으로 마땅한 적임자를 찾지 못한 데 따른 안이한 타협의 결과물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이는 대통령 취임후 임기 보장을 약속했다가 며칠 뒤 청와대 인사보좌관을 통해 사퇴를 요구한 공정거래위원장, 금감위원장 등의 경우에서도 목격되는 혼선이다.
노무현 새 정부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유구한 '인사의 경험칙'을 깊이 되새겨야 할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