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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수구화 비웃는 민주당은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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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수구화 비웃는 민주당은 안녕한가?

[최창렬 칼럼] 형해화되는 대의민주주의 현실

근대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와 달리 대의 민주주의 형태다. 서구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사상적 토대를 두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국민이 자신들을 통치할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선거제도가 핵심을 이룬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보편적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대의제에서 정기적이고, 공정하며 자유로운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중대한 결함을 노출하고 있다. 선거에 의해 구성되는 정치 엘리트들이 선거권자들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과 입지에만 골몰할 뿐만 아니라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야 할 정치가 기득권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민주주의의 수단이어야 할 선거가 목적으로 도치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소멸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전제인 시민의 정치참여가 실질적으로 의미 있게 구현되지 못한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참여민주주의나 심의민주주의 논의 자체가 실종된 현실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규범적 가치를 실현하고, 불평등·부정의한 오랜 구조적 모순을 타파함으로써 사회 정의와 격차 해소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의 제도화는 국회의 실력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균열이 반영되도록 하는 선거제도 개혁도 거대정당들의 손익 계산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

박근혜 파면 이후 2년이 지났다. 촛불항쟁에 의한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의 탄생이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견인할 동인이 되기를 기대했으나 기대는 좌절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집권세력은 사회 각 부문의 개혁 의제를 공론화하고 시민을 정치적으로 활성화시킬 동력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기존의 정치적 패러다임에 묻혀 선거 민주주의의 틀에 갇힌 일상적 정치세력으로 환원됐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좌파독재'를 저지하겠다며 여당과의 '전투'를 선언했다. '통합과 화합'을 외치면서 색깔론에 기댄 좌파 독재 운운은 어떠한 정치문법인지 알 수 없다. 한국당과 수구세력의 반동적이고 냉전적 행태는 도를 넘고 있다는 사실은 전당대회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됐고 당 대표와 지도부는 친박과 태극기 부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음이 확인됐다.

제1야당의 대표가 탄핵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고 태블릿 PC 조작설에 동의해도 지지율이 여야 대선 주자급 인사 중 1위를 차지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당과 집권세력은 이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50세 이상의 보수층보다 여권에 대한 지지가 더 낮은 현상을 가벼이 보아 넘겨선 안 된다. 20대 남성의 이탈은 내년 총선에서의 여당 전망을 어둡게 하기 때문이다.

집권당은 손혜원 청문회를 막기 위해 두 달 이상 국회를 방치했다. 20대에 대한 상식 이하의 발언, 김경수 구하기에 당이 판결문 분석까지 시도하는 무리수, 100년 집권론 등은 그들을 지지하고 기대했던 시민들의 허탈감을 증폭시킨다.

이 허무는 분로로, 분노는 표의 심판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한국당의 반역사적이며 수구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누렸던 상대적 우위는 개혁 드라이브의 부재와 정치일반에 대한 불신으로 사라졌다. 정치적 명분 또한 개혁세력과의 연대 부재로 실종되고 있다.

민주당은 지역위원장 조정과 진보 진영내의 해묵은 갈등들에 대해 담대하게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당내의 기존 정치공학의 틀을 깨지 못했고 이의 결과 개혁세력의 연대와 연합에 등을 돌렸다.

촛불이 상징했던 사회의 총체적 변혁의 의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낯설고, 국민은 박근혜 파면 2년이 지났으나 변화의 단초조차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의 본령인 가치의 실현이나 당위는 설 땅을 잃고 정치는 권력을 나누는 각축장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탄핵은 대의제의 선출권력이 헌법에 따라 치른 절차이지만 이는 선출권자들의 응집된 의지와 지성으로 가능했다. 형식은 대의민주주의에 의한 절차였으나 실질은 시민의 의지에 의한 주권의 행사였다. 다시 형해화된 대의제에 기대지 않는 실질적 시민주권에 의한 개혁을 추동해야 할 때다. 선거민주주의에 매몰되는 정치공학을 뛰어넘는 담대한 개혁의지를 선도하는 자,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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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다양한 방송 활동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해왔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두루 섭렵한 검증된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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