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빨갱이 새끼 잡아라. 빨갱이 앞잡이 새끼 잡아라. 간첩 잡아라!"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유족들에게 트라우마로 박힌 '빨갱이'와 '간첩' 소리가 버젓이 울려퍼졌다. 장소는 다름 아닌 국회였다.
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이 공동 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가 열렸다. 이 공청회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지만원 씨가 참석했다.
논란 속에도 끝내 지 씨를 국회로 불러들인 이 자리를 1000여 명의 방청객이 발디딜 틈 없이 메웠다. 일부 방청객들은 성조기와 태극기를 가져왔고, 유튜브로 방송을 중계하는 60~70대도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모임인 5.18 유족회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공청회 도중 "역사를 왜곡해선 안된다",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그러자 대회의실에 가득했던 천 여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빨갱이 새끼가 여기 있다", "간첩을 잡아라", "죽여라" 등의 거친 언사를 하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고, 사회자는 "(5.18 유족 등을) 끌어내라"라고 소리쳤다.
20여 명 남짓한 5.18 유족회원들과 5월 어머니집 회원들은 약 100여 명의 방청객들에 의해 물리적으로 끌려나왔다. 이 과정에서 항의를 하는 5.18 유족들과 끌어내려는 방청객들 사이의 몸싸움이 일어났으나, 국회 방호직원들의 만류로 저지되기도 했다.
이들은 대회의실을 벗어나서도 계속해서 고성과 함께 몸 싸움 시도가 이어졌고, 이로 인해 경찰 5명이 출동하기도 했다. 방청객들은 광주 유족을 가리키며 "빨갱이를 잡아가라", "간첩을 잡아가라"고 소리쳤고, 광주 시민들은 "모욕하지말라"고 외쳤다.
5월 어머니집 회원인 이근례씨는 다른 유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는 방청객들을 향해 "왜 내 자식이 빨갱이냐"며 "거짓말 하지 말아라"고 눈물을 쏟았다. 그는 "어떤 남자가 나보고 아주 순식간에 '빨갱이 같은 년'이라고 욕을 했다"며 "5월 가족들은 '빨갱이'라는 단어에 트라우마가 있다. 광주 사람들은 대대손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민인데 아주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유가족인 추혜성 씨는 "국회가 어디냐.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민의의 정당이다"라며 "5.18 특별법이 구성이 되어서 한국당도 진상조사위원을 추천해서 정당하게 구성을 했으면,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지. 왜 5월을 폄훼하고 왜곡하냐"고 했다.
그는 "지만원은 5월 광주를 폄훼하고 왜곡해서 벌금형을 받았는데 신성한 국회에서 왜 저런것(공청회)를 여냐"며 "지만원 말대로 북한군이 내려왔다고 하면, 북한군이 600명 침투해서 그런 짓을 할때 국민을 보호하는 이나라 군인들은 무엇을 했냐"고 강조했다.
김창수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이 국회까지 와서 이런 공청회를 연다고 하는 것은 국회를 모독하는 것이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것이고 광주의 영령, 유가족 모두 모독하는 것"이라며 "국회는 민의의 전당인데 어느 국민이 국회에서 이런 공청회를 용납하겠나"라고 했다.
지만원 "전두환은 영웅"... 여야3당 "멍석깔아준 한국당 제 정신이냐"
지만원 씨는 "전두환은 영웅"이라며 "전두환은 47살 때 별이 두 개 였는데, 그 순발력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이 나라는 김재규가 일으키는 쿠데타 손에 넘어갔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다가 2013년 명예훼손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지 씨는 5.18 민주화운동에 600명의 북한군, 이른바 광수(북한 특수군인)가 개입했다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며 "시위대를 조직한 사람도, 지휘한 사람도 한국에는 없다"고 했다.
망언은 지 씨에서 그치지 않았다. 행사를 마련한 한국당 이종명 의원은 “80년 광주 폭동이 10년, 20년 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됐다. 이제 40년이 되었는데 다시 뒤집을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80년 5월 전남도청 앞에서 수십 수백명 사람들이 사진에 찍혔는데, '북괴군이 아니라 나다'라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상으로 축사를 한 김진태 의원은 "5.18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면서 "이번 전당대회에 나온 사람들은 이러니 저러니해도 5.18 문제만 나오면 다 꼬리를 내린다, 이래서는 정말 싸울 수가 없다"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지 씨는 "5·18 주역들은 북한인과 고정간첩, 적색 내국인으로 구성됐다"며 "작전의 목적은 전라도를 북한 부속지역으로 전환해 통일의 교두보로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 씨는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 얼굴이 보이는 사람이 장성택과 리선권"이라며 북한 고위간부를 지낸 이들이 5.18 당시 광주에서 주요직책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근거는 광주 5.18 사진 사료와 비슷한 구도로 찍은 북한 간부들의 사진 뿐이었다.
또한 5.18 당시 군부의 폭력 참상을 찍은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두고 "북괴가 찍은 사진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세계에 방송하게 한 간첩"이라며 "(곤봉으로 시민을 매질하는 사진을 가리키며) 힌츠페터가 광주에 가서 몇 시간 만에 돌아와 일본에서 송고한 사진"이라고 했다.
지 씨는 지난해 말 힌츠페터와 그의 광주행을 도운 택시기사 김사복씨를 '간첩', '빨갱이'로 지칭해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여여 3당은 이번 공청회를 강하게 규탄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허무맹랑하고 사기에 가까운 지 씨의 주장에 동조하는 건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의 원혼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지만원 씨가 주장하는 허무맹랑하고 사기에 가까운 북한특수부대 광주 잠입설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주제로 배정한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 최경환 의원은 논평을 내고 "황당하고 경악스럽다"며 "5·18 북한 개입설을 주장하다 사법적 심판이 끝난 지만원에게 멍석까지 깔아준 것도 모자라 악의적으로 국민 분열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분명해졌다"고 했다. 이어 "고작 지만원 같은 인사를 내세워 아무리 5·18을 왜곡하려 한다 해도 이를 믿어줄 국민은 없다"며 "자유한국당의 5.18 왜곡과 진상규명 방해 행위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도 "이미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해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은 지씨를 다시 불러 행사를 개최하는 몰상식한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한국당이 제 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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