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반도체 산업의 고소득 노동자에게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며 '메가특구법'이라는 특별법을 만들고, 여기에 근로기준법의 적용 예외를 두는 복잡한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근로기준법을 개악해 해당 노동자들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 그리고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이들을 보호하자. 정부와 민주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취지를 실현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정부와 민주당은 현재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등 고용관계가 불분명하고 소득이 불안정한 취업자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기존 노동관계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새로운 법률을 통해 실질적인 보호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제정되지 않은 법률이지만, 정부와 민주당은 노동시장 하층의 불안정 취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입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고용관계가 불분명하고 소득이 낮은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에게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보호할 수 있다면, 고용관계가 분명하고 소득이 높은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는 그 법으로 얼마나 더 잘 보호할 수 있겠는가. 사용자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는 법이, 사용자가 분명하고 근로계약까지 체결한 사람을 보호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마침 정부와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의 고소득 연구개발직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일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메가특구법안에는 특구 내 고소득 관리자와 전문직·연구개발직의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근로소득 상위 3%에 해당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서면합의를 통해 근로시간과 휴게·휴일 등에 관한 규정을 달리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늘리고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런데 민주당은 노동특례가 포함된 법안과 노동특례를 제외한 법안을 동시에 발의했다. 노동계가 반발하자 두 법안을 국회에 올려놓고 사회적 대화의 결과를 반영해 병합심사하겠다는 것이다. 노동특례라는 개악 조항을 넣을 수도 있고 뺄 수도 있다는 법안을 한꺼번에 발의하는 기회주의적 방식이다. 법기술자들의 정권으로 전락하고 있는 이재명 정권다운 수법이다.
이렇게 복잡하게 입법할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와 민주당이 반도체 고소득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보호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차라리 근로기준법 자체를 개정하면 된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조정해 일정한 소득 수준 이상의 연구개발직 노동자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면 된다. 근로시간만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전체의 적용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을 아무런 법적 보호 없이 방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부와 민주당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있지 않은가. 근로기준법의 적용에서 제외된 반도체 고소득 노동자에게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적용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두 가지 노동입법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메가특구법에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를 두지 않고도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규제 개악을 실현할 수 있다. 동시에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적용 대상을 확대해 그 법의 보호 효과를 더욱 풍부하게 확인할 수도 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은 줄어들고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적용 대상은 늘어나는 것으로,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의 입맛에 딱 맞지 않은가.
반도체 산업의 고소득 연구개발직 노동자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보호 효과를 확인하기에 좋은 집단이다. 이들은 정부와 민주당이 특례 대상으로 상정한 노동시장 상층에 속한다. 높은 임금을 받고, 사용자가 분명하며, 고용관계도 안정적이다. 고용관계가 불분명하고 소득이 불안정한 취업자보다 법적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상당수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기까지 하다.
정부와 민주당의 설명대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노동시장 하층의 불안정 취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노동시장 상층에서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안정적인 노동자에게는 그 효과가 얼마나 크겠는가.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에게 유용한 법이라면 상층 노동자에게는 더욱 유용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여기서 근로기준법과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차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한 법률이다. 임금, 근로시간, 휴게, 휴일, 연차유급휴가, 해고 제한 등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이를 위반한 사용자에 대한 제재도 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근로조건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전제로 국가가 개입해 최저기준을 강제하는 법률이다.
반면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는 방식을 포기하고, 별도의 법인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따로 만들어 근로기준법 적용 밖에 있는 취업자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법이 근로기준법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권리와 실효성 있는 보호수단을 제공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확인을 위해 노동시장 하층의 불안정 취업자부터 기다리게 할 이유가 없다. 이미 사용자가 분명하고 고용관계가 안정된 반도체 고소득 노동자을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적용해 보자. 그들에게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던 권리가 없어지더라도 일하는 사람 기본법만으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면 된다.
만약 고소득 연구개발직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의 보호가 여전히 필요하다면, 고용관계가 불안정하고 소득이 낮은 노동자에게는 어떤 보호가 필요하겠는가. 사용자가 분명한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을 대신하기 어려운 법률이라면, 사용자가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한 취업자에게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제공하려는 보호의 실체는 무엇인가.
정부와 민주당은 한쪽에서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새로운 기본법을 추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에게 적용 예외를 확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보호 밖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근로기준법의 보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보호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재명 정권과 민주당에 다시 제안한다. 골치아프게 메가특구법에 이런저런 노동특례 개악을 집어넣느라 애쓰지 말자. 반도체 고소득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에서 과감하게 빼내어 일하는 사람 기본법으로 보호하자. 노동시장 하층의 불안정 취업자도 보호할 수 있다는 법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아닌가. 그렇다면 고용관계가 안정된 노동시장 상층 노동자는 얼마나 더 잘 보호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민주당이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보호 효과를 믿는다면, 반도체 고소득 노동자부터 그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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