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야국(狗邪國)의 성립기에는 옛 김해만 서부와 동부에 2곳의 읍락(국읍) 단위의 유력세력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동희 인제대 교수(가야문화연구소장)은 1일 '제31회 가야사학술회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어느 쪽이 국읍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2세기대까지는 양동리세력이 대성동세력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양동리고분군에서 현재까지 73기의 목관묘가 확인되었다"며 "이 목관묘들의 피장자는 옛 김해만 서부의 읍락 혹은 국읍에 소속된 주요 구성원이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 "양동리 목관묘군과 2-3km거리를 두고 신문동과 내덕리에 각기 1기씩의 수장층 무덤이 확인됐다"면서 "검(劍)·경(鏡)·옥(鏡)이 확인돼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존에 원삼국시대에 검(劍)·경(鏡)·옥(鏡)이 출토된 무덤에 대해 단순히 지배자·수장묘·군장묘 등의 호칭으로 개괄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당시 양동리고분군 출토 유물상이 국제교류와 밀접히 관련 된다는 점에서 천군과 소도의 공간은 천신 뿐만 아니라 해양 안전에 대한 신앙적 기원도 염두에 둔 위치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신문리1호 목관묘와 내덕리19호 목관묘 출토유물에서의 검(劍)·경(鏡)·옥(鏡) 조합상은 초기 철기시대 마한권역 제사장의 유물상과 동일하다"며 "읍락(국읍) 내 별읍의 소도에서 제사를 주관했던 천군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이날 "2세기 전반대까지 양동리 일대에서는 군장묘와 천군묘의 질적 구분이 쉽지 않고 오히려 2세기 전엽의 내덕리 19호 유물을 보면 천군묘가 더 탁월한 유물상을 보인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또한 "2세기 이후에는 천군묘로 추정되는 내덕리 19호묘에서는 청동기류는 목관내에서 확인되지만, 철검은 확인되지 않고 철기류는 충전토에서만 보인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기원 전후시기의 김해 신문리 토광묘에서의 철검 부장이나 2세기전반대 내덕리의 동검의 부장은 마한권역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면서 "철기문화가 마한권보다 좀 더 늦게 유입·확산된 김해지역은 제정일치 사회의 분위기가 한동안 더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이동희 교수는 "경주의 군장과 달리 김해 양동리에서는 162호 목곽묘 단계(2세기후반)에도 동경이 부장되는 것은 제정일치 사회의 유습이 오랫동안 남은 흔적일 수 있다"고 하면서 "사회발전단계의 차이이자 문화적 보수성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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