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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는 공장 안, '산'자는 공장 밖 떠돌던 2009년 6월, 그때와 지금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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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는 공장 안, '산'자는 공장 밖 떠돌던 2009년 6월, 그때와 지금은 다른가

[기자의 눈] 쌍용차 대량해고 다룬 영화 <가능한 사랑>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을 봤다.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를 다룬 이야기라고 들었다. 사실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불편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대량 해고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렇게 해고된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는데,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 옥쇄파업과 강제해산 뒤 밀려온 수많은 죽음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죽은' 자는 공장 안에서, '산'자는 공장 밖을 떠돌아다닌 2009년 6월

2009년 6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은 옥쇄파업이 한창이었다. 정리해고 명단에 들어간 '죽은' 자는 공장 안에서, 명단에 들어가지 않은 '산'자는 공장 밖을 떠돌아다녔다.

공장 안에서는 경찰특공대와 쌍용자동차 노동자 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싸움이 벌어졌다. 너트와 볼트가 새총에 의해 날아다녔고, 경찰 곤봉과 테이저 건이 노동자의 얼굴에 꽂혔다.

외부인의 공장 내 진입은 철저히 차단됐고, 식수 반입조차도 제지당했다. 하늘에 떠 있는 헬리콥터는 끊임없이 최루액이 쏟아냈다. 파업 참여자들의 잠을 방해하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전투경찰들이 공장 내에서 방패로 땅을 내리치며 연신 구호를 외쳤다.

공장 밖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연일 폭행 사태가 벌어졌다. '산' 자들은 쇠파이프 등을 들고 다니며 민주노총 차량은 물론, 연대 단위의 천막을 번번이 부셨다.

기자들도 안전하지 않았다. '산' 자들은 공장 정문 앞 흙바닥에 천막으로 만들어 놓은 기자실로 찾아와 각종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 모 방송사 기자는 왜곡 보도를 한다며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기도 했다. 쌍용차 대책위나 노동자 가족협의회가 기자회견이라도 하면 어김없이 쇠파이프가 날아왔다. 촬영 카메라가 수 차례 박살 났고, 기사를 쓰다가 돌 세례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산' 자들은 옥쇄파업이 끝나야 회사가 정상화되고 자신들이 일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산 '자들에게 '죽은' 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은 불편함을 넘어 사라져야 할 존재들이었다.

▲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경찰 강제진압 현장 모습. ⓒ이명익

▲ 당시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는 취재하던 기자들도 창졸간에 봉변을 당해야만 했다. 취재 중이던 문화방송(MBC) 촬영기자는 사 측 직원에게 멱살을 잡혔다. 사진 기자의 카메라가 파손되기도 했다. 심지어 직원들은 폭행 장면을 찍은 메모리 카드와 테이프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수많은 노동자에게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와 고통을 안겨준 대량 해고

<가능한 사랑>은 이러한 당시 상황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평택공장 위에서 진행된 경찰의 강제 진압 장면은 이를 직접 겪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는 PTSD가 올 정도로 똑같았다.

대규모 구조조정의 이유는 경영상 위기였다. 이는 노동자가 아닌 회사 간부들이 자초한 일이었으나 그 책임은 오롯이 노동자들이 져야 했다. 회의 몇 번과 전화 몇 통, 그리고 서류 통계 자료만으로 프로젝트를 성사하는 극중 인물 상우(조인성 역)의 모습에서 회사 간부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건 감독의 의도일 듯하다.

상우의 대사처럼 대량 해고라는 결정이 몇 백, 몇 천의 이익이 날지는 모르지만, 차원이 달라진 건 명확했다. 대량 해고는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와 고통을 안겼다.

그렇게 발가벗겨진 채로 길거리에 나앉게 된 이들에게 국가는 '가상'의 어떤 것이었다. 존재해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차라리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옥쇄파업 기간에 여러 차례 경찰의 강경 진압을 감내해야 했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됐고, 옥쇄파업 이후에는 법과 원칙이라는 명분에 의해 감옥에 가야 했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는 국가였다.

노동자를 시혜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한국 사회

<가능한 사랑>은 여기서 좀더 깊이 들어간다. 강제 진압된, 해고된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회사나 국가보다는 서로 믿고 의지했던 동료들의 배신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그 분노가 현재의 지신을 힘들게 한다.

감독은 등장인물 호석(설경구 역할)을 통해 같은 노동자들끼리, '산' 자와 '죽은' 자 끼리 증오하고 분노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어떤 지옥도가 열리는지를 세세하게 보여준다.

혹자는 2009년에, 노동계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2026년에 회자 되기엔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도 한다. AI, 메가특구, 분절노동, 플랫폼 등 이미 노동계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아닌 새로운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는 게 이유다. 정규직이 사라지는 마당에 그런 상황이 다시 오겠느냐는 냉소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극중인물 예지(조여정 역할)처럼 노동자를 시혜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사랑>이 주는 메시지가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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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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