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일 작가, 폐광과 카지노 시대를 살아온 정선 사람들의 삶 무대에 담아
택백산맥 서편 강원도 남부 탄광의 불빛이 꺼진 뒤 정선 지역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정선 출신 서예일 작가가 장편희곡 '노포'를 출간했다.
작품은 탄광의 번영과 폐광, 카지노 산업으로 이어진 정선지역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산업의 변화 속에서도 삶을 이어온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희곡의 무대는 민둥산역 앞 오래된 국밥집 '노포'.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퇴직을 앞두거나 은퇴한 초·중학교 동창 일곱 명이 이곳에 모인다.
광부와 우체국장, 택시기사, 카지노 기업 간부, 자영업자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친구들은 오손도손 모여 막걸리와 노가리, 그리고 광부들의 추억이 서린 돼지두루치기를 즐기며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한다.
작품은 카지노를 찬반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탄광이 지역을 지탱했던 시대와 폐광 이후의 상실, 카지노가 가져온 변화와 그 속에서도 고향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마을을 지탱해 온 산업은 변했지만 순수한 정선 사람들은 남았고, 공동체는 어떤 모습으로 이어져 왔는지를 묻는다.
'노포'는 정선만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산업구조의 변화와 인구 감소, 지역소멸이라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지방 공동체가 어떻게 기억을 이어가고 사람을 지켜낼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지역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를 무대 위에 올린다.
작품의 또 다른 축은 정선아리랑이다.
작가는 민둥산역 인근에서 성장하며 어린 시절부터 정선아리랑의 가락을 가까이에서 접했고, 같은 마을에서 이웃사촌으로 살았던 정선아리랑 명창 고 최봉출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경험은 최근 출간한 시집 '민둥산역 플랫폼에서'와 이번 희곡 '노포'를 하나의 문학 세계로 연결한다.
시집이 정선아리랑의 정서를 현대시로 풀어냈다면, '노포'는 이를 연극으로 확장했다.
작품 마지막에 흐르는 '신(新)정선아리랑'은 전통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탄광과 폐광, 카지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현재의 언어와 노래로 새롭게 빚어낸다.
서예일 작가는 대학 시절 프랑스 희곡 『아버지의 연설』에서 주인공 '아버지' 역을 맡아 공연한 것을 계기로 희곡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계간 『문예한국』을 통해 희곡으로 등단했으며,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강원도는 정선아리랑이라는 문화유산과 탄광·폐광이라는 독특한 현대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이를 본격적인 장편희곡으로 형상화한 사례는 드물다.
'노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극이라는 공간예술로 구현하고, 정선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서예일 작가는 15일 "'노포'는 폐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정선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남아있는 정선 사람들의 기억이 우리 사회의 기억에 남기위해서도 이 작품이 앞으로 연극 공연을 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 작가는 최근 '나는 왕이 아니었다' 역사소설을 출간했다. 단종 이야기이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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