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은 '척지토성' 발굴조사 현장을 1일 공개했다고 밝혔다.
척지토성은 1500년 전 경남 함양 지역을 이끌었던 가야 세력 중심 거점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두류문화연구원은 "척지토성은 단순한 산성이 아니라 당시 함양 지역 정치와 행정을 관장하던 중심지인 '치소성(治所城)'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를 대거 확인했다"며 "함양읍 백천리 일원에 있는 척지토성은 둘레 약 730m 규모 가야시대 산성이다. 2011년 서부경남의 성곽에 처음 소개된 이후 시굴과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돼 오다 이번에 3차 발굴조사 성과가 공개됐다"고 밝혔다.
두류문화연구원은 "3차 발굴조사는 동쪽 체성부와 추정 동문지 일원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면서 "조사 결과 동쪽 체성부에서 흙을 여러 겹 반복해서 다져 쌓는 고도의 가야계 성곽 축조 기법인 '층첩성토(層疊盛土)' 방식이 뚜렷하게 확인돼 1500년 전 가야인들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두류문화연구원은 또 "추정 동문지(東門址)에서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석축시설 3기가 발견됐다"며 "이 중 일부 시설은 물의 흐름을 조절하는 보(洑) 기능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척지토성이 오랜 기간 증·개축돼 지역 지배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분석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토성 인근에는 함양지역 지배세력의 대표 고분군인 '백천리고분군'이 자리하고 있어 이 일대가 당시 정치·군사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두류문화연구원은 "출토된 유물과 축조기법을 분석한 결과, 척지토성은 5세기 중엽에 처음 쌓은 뒤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고쳐 쌓은(수축)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학계는 척지토성이 가야 말기 함양지역 지배 세력의 정치·행정 거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신라의 지방 지배체계가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역사적 전환기의 핵심 유적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그동안 상대적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함양지역 가야사 실체를 밝힐 귀중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는 것.
두류문화연구원은 "이번 척지토성 발굴 조사로 함양지역 가야사 실체를 규명하고 함양의 독자적인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고 하면서 "앞으로도 척지토성의 역사적 가치를 밝히고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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