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학련 투옥에서 최고위 외교관까지,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강창일 전 주일대사가 한·일 관계 80년을 정리한 역작을 내놨다.
한·일포럼 한국 측 회장인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최근 '한·일 관계 80년사: 강창일 전 주일대사가 본 한·일 관계의 통찰과 해법'(한울아카데미)을 출간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2025년 집필에 들어간 이 책은, 해방 이후 80년에 걸친 양국 관계를 역사학자의 날 선 시선과 숨 가뿐 외교 현장의 경험을 담았다.
고교 시절 민주운동을 시작으로, 역사 학자, 정치인, 외교관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 온 저자의 시선이 80년간의 한·일 관계에 새로운 해법을 던진다.
학자·정치인·외교관, 세 시선으로 본 80년
이 책의 강점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온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에 맞선 유신 철폐 민주 운동가, 도쿄대 박사과정에서 접한 한·일 관계 연구자, 4선 국회의원의 정치 활동, 그리고 주일대사로서 외교 최전선에서 겪은 양국 관계에 대한 고민 등 강 전 대사는 이 세 가지 시선을 교차시키며 한·일 관계의 본질을 파고든다.
책에는 이승만과 요시다 시게루,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 등 시대별 정권에 따라 요동친 양국 관계가 노장의 삶과 함께 꼼꼼히 적혀있다. 완전한 적대에서 일방적 추종까지, 상호 호혜에서 관계 경색까지, 한·일 관계는 각국 정권의 필요와 국제 정세에 따라 극단적으로 흔들려왔다.
저자는 이러한 변동성이 "가장 가까운 두 국가의 안정적인 협조와 공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감정적 반일 버리고 이성적 지일로
상생을 위한 한·일 관계의 해법은 무엇인가. 그는 "정권의 유불리에 좌우되는 한·일 관계 구도를 탈피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구체적인 몇 가지 제언도 내놓는다. 먼저 국가와 사람을 분리해서 보자는 것이다. 감정적 반일을 버리고 이성적인 지일(知日)을 추구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역사적 과오에 대한 관점과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일견 냉정해 보이는 이 제안들은, 그러나 80년 한·일 관계의 질곡을 온몸으로 체험한 이의 절박한 통찰이다.
4·3에서 민청학련, 정치인, 최고 외교관까지, 역사의 산증인
저자 강창일은 삶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축도다. 1952년 제주 출생인 그는 고교 시절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주동해 기소됐고, 대학 4학년 때는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민청학련 사건으로 비상군법회의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투옥과 석방, 사면을 거쳐 일본 도쿄대에서 동양사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배재대 교수로 재직하며 제주 4·3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17대부터 20대까지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주일대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라대 석좌교수이자 아시아평화역사연구소 이사장, 민청학련동지회 상임대표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근대일본의 조선침략과 대아시아주의' ▷'격정 55년, 조작된 정치범의 시대증언록' 등 다수가 있다.
역사와 현실 사이, 냉철한 균형감
그는 이번 책에서도 역사에 대한 냉철함과 현실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한·일 관계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외면하지도 않는다. 80년을 살아온 역사의 목격자이자, 미래를 설계해야 할 외교 전문가로서의 책무를 다하려는 의지가 행간에 배어 있다.
한·일 관계의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모색하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귀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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