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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의 세상읽기] 법정에 들어온 과학, 그러나 법은 과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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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영의 세상읽기] 법정에 들어온 과학, 그러나 법은 과학이 아니다

법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CCTV에 다 찍혔다”, “전문가가 과학적으로 분석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이 나오면 사건의 진실이 이미 확정된 것처럼 느낀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숫자와 영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과학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과학은 측정하고 분석한다. 하지만 법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분석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가 어떤 전제와 한계 위에서 도출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론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다. 영상분석만 해도 마찬가지다. 해상도, 프레임 수, 촬영 각도, 빛의 반사, 노이즈 제거 방식에 따라 같은 장면에서도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분석 결과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지점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 과학적 분석은 곧 ‘정답’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과학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의견을 제공할 뿐이다. 그 의견이 사실로 인정될지 여부는 과학이 아니라 법의 영역이다. 법원은 그 분석이 얼마나 객관적인지, 다른 증거들과 논리적으로 연결되는지, 반대 가능성은 없는지를 종합해 판단한다.

통계 역시 마찬가지다. 숫자는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만든다. 비교 기준이 무엇인지, 표본은 적절한지, 전제가 생략되지는 않았는지에 따라 같은 통계도 의미가 달라진다. 법정에서는 숫자가 많다고 해서 증명력이 자동으로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은 숫자는 판단을 흐릴 위험이 있다.

그래서 법은 과학을 존중하면서도, 과학에 판결을 맡기지 않는다. 이는 법이 과학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과학의 한계와 불완전성을 알기 때문에, 최종 판단은 인간의 책임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증거를 어떻게 평가하고, 의심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규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법정에 들어온 과학은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그 도구가 언제나 진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법은 과학을 참고하지만, 과학이 법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이 불편한 거리감 속에서 법은 여전히 질문한다. “그 분석을 넘어, 우리는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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