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10일부터 21일까지 브라질 벨렝에서 개최된다. <프레시안>은 이 기간 동안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하인리히 뵐재단 동아시아지부와의 공동기획으로, 기후위기에 맞선 아시아-남아메리카 청년기후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하루에 한 편씩 싣는다. 한국기후활동가 다섯 명의 글과 COP30 참가자 대학생의 취재기 다섯 편을 차례로 게재한다.
COP30이 열리는 브라질 벨렝에 도착해서 처음 본회의장인 블루존(Blue Zone)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설치한 화려한 파빌리온(전시관)이었다. 이들은 자국의 탄소 감축 성과를 알리고 미래 전략을 소개하며 국제 협력을 강조했다. 겉으로 보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 연대의 장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중심 공간에는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인 시민들의 목소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기후 취약계층, 농민, 원주민, 청년 등은 블루존 출입조차 제한된 채 차로 약 20분 떨어진 파라연방대학의 옐로존(Yellow Zone)에서 별도 회의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공식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약 1300개 단체와 1만 5000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피플 서밋(민중회의·People’s Summit)'을 조직해 목소리를 모았다.
피플 서밋은 2년 전부터 준비된, 시민들만의 대안적 회의장이다. 하지만 이들이 외치는 내용은 여전히 본회의장에 닿지 못한다. 국가들은 여전히 이해관계 중심의 협상에 집중하며, 기후위기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경험과 요구는 주변부로 밀려난다.
민중회의와 살찐 트럼프 조각상
옐로존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작품 중 하나는 살찐 트럼프 대통령이 마른 사람 위에 목마를 타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기후위기 의제를 망치는 트럼프”와 “선진국·대기업의 구조적 착취”를 상징하는 작품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블루존에 전시하고 싶었지만 허가 받지 않은 조형물 설치라는 이유로 제지됐다. 이후 작가는 거리 전시를 시도했으나 정치적인 조형물이라는 이유로 또 무산됐고, 결국 시민사회가 마련한 피플 서밋에서야 공개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시민의 메시지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구조적 한계를 마주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후위기의 당사자들은 말할 기회조차 갖기 어렵고, 그 목소리는 종종 삭제되거나 제지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온 농부 "농촌, 이미 기후 위기에 잠식"
한국에서 농사를 짓는 김정열 씨는 국제 농민 조직 중 하나인 비아 캠페시나(La Via Campesina) 동·동남아시아 지부 국제조정위원으로 직접 COP30을 찾았다. 김정열 위원은 농민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직업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급격한 기온 상승으로 농사를 짓기에는 체력적으로 무리가 많이 간다"며 "기온 상승으로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 줄어들며 지역 기후변화로 품종교체가 불가피해진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로, 경북 상주의 사과 농가들은 기온 상승으로 사과 재배가 불가능해지면서 작물을 샤인머스캣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농가 대부분이 같은 품종으로 몰리다 보니 가격 경쟁은 심해지고, 농민들의 수익은 오히려 줄었다.
벼농사를 짓는 김 위원은 올해 이상 기후로 인해 벼에 병충해가 들어 생산량이 줄어들고 쌀값도 하락해 소득이 줄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농업 분야의 피해는 이미 현장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음에도, COP 회의에서는 이제야 '공동 인식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느린 대응 속도를 비판했다. 또한 "COP30 회의장에서 이제야 사례를 공유하며 공동으로 인식하는 정도라 너무 늦었다"고 말하며 COP30 회의장에서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하지 못하는 상황에 안타까워했다.
선주민 시위 "우린 우리 땅을 지킬 권리가 있다"
기후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 중 하나는 아마존 선주민(원주민)이다. 이들은 블루존 출입이 제한돼 있어, 일부 정부 대표 자격을 얻은 선주민만 협상장에 들어갈 수 있다. 대부분의 선주민 공동체는 공식 협상에서 배제된 채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다.
이에 선주민들은 COP30 본회의장 정문 앞에서 직접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기업식 농업, 석유 탐사, 불법 채굴·벌목으로부터 토지를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하며, 브라질 정부가 원주민에게 아마존 보존을 위한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회의장 밖에서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가 협상장에 도달하기를 바랐다.
기후 피해자 쏙 빠진 COP 협상장
지금의 COP 체계는 시민·원주민·농민 등 실질적 피해 당사자의 발언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국제사회는 과거에 비해 훨씬 다원화된 양상을 보인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국가 간 경쟁이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과 같은 단순한 구도로 국제사회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환시대에 접어든 지금, 국제 사회는 국가 외에도 국제기구, 글로벌 기업 등 다양한 행위자가 동시에 영향을 미치며 작동한다. 경제적 계층 역시 더 이상 자본가와 노동자로 이분화해 설명하기 어렵다. 노동자 집단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자본가 집단 역시 동일한 이익을 공유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복합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만큼, 글로벌 의제 역시 단일한 주체만으로 다루기 어렵다. 기후위기는 대표적인 예다. 기후위기 대응은 국가 간의 이해관계뿐 아니라 다수 시민과 지역사회, 농민, 원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당사자의 경험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문제다. 즉, 기존의 국가 중심 기후 거버넌스 구조는 보다 다양한 주체를 포괄하도록 보완될 필요가 있다.
국가와 기업, 국제기구 중심으로 설계된 협상 체계 안에 시민들이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하고, 피해를 직접 겪는 사람들의 경험이 정책 논의의 중심에서 다뤄져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가 협상 과정 전반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국제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크게 겪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왜 여전히 회의장 안에 없는가?"
COP30은 국가 간 협상만큼이나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제사회가 약속한 1.5℃ 목표나 '정의로운 전환'은 선언적 의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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