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개처럼 뛰다" 죽는 쿠팡 새벽택배, 이제 과로의 원인을 직시하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개처럼 뛰다" 죽는 쿠팡 새벽택배, 이제 과로의 원인을 직시하자

[경제뉴스N시선] 침묵하고 있는 쿠팡이 답해야

야간노동의 위험, 당장은 못 느끼더라도

새벽에 빌라 계단에서 쓰러져 숨지고. 새벽 6시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욕실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숨지고. 빌라 복도에서 머리맡에 쿠팡 박스 3개를 둔 채 쓰러져 숨지고. 물류센터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지고. 프레시백 세척 2명분을 홀로 감당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숨지고. 쿠팡에서 야간노동을 하다가, 또는 야간노동을 끝낸 후 숨진 사례가 많이 알려져 있다. 바로 며칠 전에도 제주에서 새벽배송 노동자가 트럭을 몰다 전신주와 충돌해 숨졌다.

야간노동도 노동자의 '선택'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런데 야간노동이 몸에 무리를 준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그래서 산업재해에 관한 법률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6시 사이의 야간근무를 한 경우 근무시간에 1.3배를 곱하여 산출하도록 정해놓았다.

야간노동의 위험은 크게 두 가지. 급성 심근경색증처럼 노동자의 건강을 즉각적으로 위협하거나, 아니면 부정적 영향이 노동자의 몸에 서서히 축적되거나. 노동자 개개인이 느낄 수도 있고, 당장은 못 느낄 수도 있다. 5년 전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노동하다 숨진 고 장덕준 님의 유가족도 '야간노동이 그만큼 몸에 무리를 주는 일이란 생각을 못 했다'고 말한다.

"우리 아들같이, 술도 담배도 안 하고 아무 건강에 문제없던 애가 1년 6개월을 못 버티고 갔어요. 여기는 서서히 죽어 나가는 구조거든요. 건강한 20대 청년이 그냥 그거 하루 이틀 밤에 일한다고 해서 크게 힘들다고 못 느껴요. 그렇지만 누적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단 말이에요. 불을 켜서 서서히 물이 달아오르듯이, 그러면 안에 있는 사람은 이게 내가 뜨거운지 모른단 말이에요. 따뜻해지네 하다가 어느 순간 죽어 나가는 구조라는 거죠. 규제가 생기고, 바뀌지 않으면 계속 사람들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p.51)

그래도 생계가 급한 사람은 당장 돈이 더 되는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쿠팡 택배와 물류센터는 주간의 단가·시급을 낮게 책정해서 야간에 일할 유인을 만든다. 이걸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동자의 그런 처지를 기업이 악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규제는 필요하다.

쿠팡은 야간에 노동강도가 높다!

새벽배송을 하면 차도 안 막히고 엘리베이터 정체도 없다는 주장이 많이 보인다. 그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쿠팡 새벽배송을 한가하고 여유로운 노동처럼 묘사해선 안 된다. 쿠팡 새벽배송은 프레시백 정리로 시작해서 밤새 시간 압박 속에 배송구역을 2~3회 돌아야 하는 강도 높은 야간노동이다.

▲고 정슬기님이 남긴 카톡 화면. 출처: 택배노조

2024년 5월 과로사한 고 정슬기님. 너무나 유명해진 그의 카톡 화면에서 메시지가 오간 시각을 보자. 관리자가 "달려주십쇼"라고 독촉한 시각이 새벽 5시 23분이다. 정슬기 님이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장한 시각은 5시 24분. 밤 9시쯤 출근했을 것이고, 3회차 배송이라 지친 상태였을 것이다.

깔끔한 아파트 단지만 떠올려도 안 된다. 배송지가 다세대주택이나 빌라라면 엘리베이터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하룻밤 동안 빌라 밀집 지역에 3회전 배송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같은 건물, 같은 집에 많으면 3번까지 간다. 그 집이 4층이라면 계단으로 4층까지 3번 오르내린다. 급하면 뛰기도 한다.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고 정슬기 님은 밤 출근 전에 저녁을 안 먹었다. 배송 중에 화장실 가기가 불편해서 물도 많이 안 마셨다고 한다. 이런 게 새벽배송이다.

어느 정치인은 새벽배송을 제한하면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들이 더 힘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물류센터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쿠팡 물류센터는 야간에 노동강도가 더 높다. 야간에 물량이 쏟아지고 새벽배송 나갈 시간은 어떻게든 맞춰야 해서 그렇다. 평소 쿠팡은 자동화 로봇과 랜덤스토우 같은 혁신적 기술을 자랑하지만, 새벽배송 마감을 앞둔 물류센터와 배송캠프 현장에서는 인적 통제로 그날그날의 마감 물량을 맞춘다. 노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인적 통제란 관리자들이 윽박지르거나 막말을 한다는 뜻이다.

노동강도가 높은 것은 마감 시간의 압박뿐만 아니라 쿠팡의 운영 방식에도 원인이 있다. 쿠팡은 풀필먼트 센터와 배송캠프 모두에서 인력을 최소로 운영하면서 최대치의 노동력을 뽑아내려 한다. 물량은 많고 인력이 부족하니 노동강도는 당연히 높다. 2024년 작업대에서 쓰러져 사망한 고 김명규 님은 야간에 혼자 작업대 2개를 맡아서 버겁게 일했다. 쿠팡 물류센터의 여러 일용직 노동자들 역시 노동강도가 세서 일주일에 5일 이상 연속 출근이 어렵다고 말한다.

쿠팡이 새벽배송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노동강도와 속도 압박, 인력 부족 문제의 개선책이라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정규직 → 특수고용으로, 바뀐 고용구조

쿠팡 택배노동자의 과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노동자의 과로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게 가로막는 구조가 있고, 그 구조는 쿠팡의 선택으로 만들어졌다.

쿠팡이 처음 자체 배송을 시작했을 때는 '쿠팡맨'(나중에 '쿠팡친구'로 변경)이라는 이름으로 택배노동자를 직접고용했다. 당시 쿠팡은 배송기사 확보와 이미지 관리가 필요했고, 그래서 업계 평균보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사람을 모집했다. 로켓배송 기사들이 손편지를 써주고 사탕을 나눠주던 감동적인 사연과 이미지는 이때 정규직 '쿠팡맨'들이 만들어 냈다.

그런데 괜찮은 일자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멤버십 회원을 확보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인 후 쿠팡은 배송 부문을 자회사(CLS)와 하청 체제로 전환했다. 쿠팡CLS가 하청업체인 중간 영업점(대리점)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고, 대리점은 다시 택배노동자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했다. 근태 관리는 영업점이 하지만 핵심적인 운영 방침은 모두 쿠팡CLS가 결정한다. 정규직이었던 배송기사들도 다수가 개인사업자로 전환해서 대리점과 계약했다.

플랫폼 기업들은 처음에는 새로운 대안 모델을 제시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고객을 묶어놓고 시장을 독점하고 나면 본색을 드러낸다. 쿠팡도 그랬다. 직접고용 정규직이었던 쿠팡 택배노동자를 나중에는 자회사의 하청의 특수고용 노동자로 만들었다. 고용구조가 변경된 이후로 쿠팡 택배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물가는 상승하는데 택배 단가를 매년 낮췄다. 쿠팡의 택배 배송 단가는 초창기에 건당 2500원으로 가장 높았다. 하지만 쿠팡은 시장점유율이 높아질수록 배송 단가를 떨어뜨렸다. 태사자 김형준 씨가 쿠팡 택배 일을 해서 화제가 되었던 2019년 무렵의 단가는 야간 1500원, 주간 1000~1200원이었다(김형준씨 본인의 증언). 지금은 야간 기준으로 건당 900원 전후, 주간 700원 전후로 떨어졌다.

물가는 해마다 올랐는데 택배노동자의 임금인 건당 수수료를 이렇게 후려쳐도 되나? 쿠팡은 대리점과 협의하는 자리에서 '수수료는 삭감하지만 물량이 늘어나니 수입 감소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신박한 계산법이다. 건당 단가가 떨어졌는데 노동자 1명이 배송해야 하는 물량을 늘려서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수입은 그럭저럭 맞춰지는 것이다. 지난 10월 전국택배노조와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25년 쿠팡 퀵플렉스 노동자의 하루 평균 배송 물량은 388건으로, 지난해 평균인 359건보다 8.1% 증가했다. 이렇게 해마다 늘어나는 물량을 처리하다 보니 노동강도는 점점 높아진다. 이것도 과로의 원인이다.

쉬기도 어렵고, 노동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택배노동자는 개인사업자니까 야간배송도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택배노동자는 진짜 사장님일까? 원칙적으로 진짜 사장님이라면 가격을 협상할 수 있어야 하고, 쿠팡 외 다른 곳에서도 독자적으로 영업할 수 있어야 하고, 마음대로 쉴 수도 있어야 한다.(한국에서는 프랜차이즈 사장님들도 마음대로 못 쉬니까 이런 말이 공허하게 들리긴 한다) 그러나 2024년 5월 과로사한 고 정슬기 님은 배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나 아침 7시까지 배송 못 하면 여기서 일 못 해." 자기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은 이런 말을 안 한다.

"'아니 뭐 그런 게 어딨어? 사람이 하다 보면 조금 늦을 수도 있는 거고, 비나 눈이 오면, 정말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잖아'라고 했어요. 어느 날은 (비를) 쫄딱 맞고 왔더라고요. 축 처진, 스펀지가 물먹은 그 상태로 이렇게 들어왔는데 '조금 여유를 갖고 했으면 좋겠어. 안전이 제일이잖아'라고 했는데 '아니야. 7시까지 못 맞추면 안 돼' 계속 그 얘기만 하더라고요." - 고 정슬기님 유가족, MBC PD수첩 '죽어도 7시까지 배송 완료'(2024)

주간 신선식품은 오후 8시, 야간에는 모든 상품 오전 7시. 이런 마감시간은 다른 택배사에는 없고 쿠팡에만 있다. 고객에게 7시까지 집 앞에 배송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이 7시는 악천후에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지금 새벽배송이 운영되는 방식이다.

▲숫자로 보는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 ⓒ안진이

그럼 휴식은? 쿠팡 택배노동자가 피곤하면 마음 편히 쉴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에서는 1년 동안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노동자에게 15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보장한다. 그러나 택배노동자에게는 '사장님'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연차 유급휴가가 없다. 아플 때나 집안 경조사가 있을 때 쉬려고 해도 자유롭지 못하다. 대신 배송할 사람을 구하는 비용을 '용차비'라고 하는데, 택배노동자가 하루에 버는 돈의 1.5~2배에 달하는 용차비를 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영업점의 갑질이고, 과로를 부르는 또 하나의 원인이다.

3회전 배송처럼 불합리한 시스템도 과로의 원인이 된다. 택배노동자 본연의 업무인 배송과 집화가 아닌 분류작업, 프레시백 회수와 같은 일들이 떠넘겨지는 것도 큰 부담이다. 심지어 쿠팡은 생수 2묶음을 테이프로 감아서 ‘합배송’을 시키는 방법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이라는 처지 때문에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기 어렵다. 반면 원청 사용자로서 쿠팡은 모든 책임을 피해간다. 예를 들어 2023년 군포에서 택배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쿠팡은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닌 군포시 소재 전문 배송업체 소속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따라서 쿠팡 택배노동자가 특수고용이고 형식상 개인사업자라고 해서 새벽배송을 현상 유지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바로 그 '개인사업자' 지위 때문에 작은 처우개선마저 어려워지는 현실의 부당함을 고쳐나가야 한다. 노조법 2·3조가 개정된 지금은 원청 쿠팡CLS의 책임이 더 분명해졌다.

쿠팡 택배노동자의 과로, 다른 택배사에는 없는 3회전 배송, 노동자에게 떠넘겨지는 분류작업, 100~200원 받고 회수해야 하는 프레시백. 이런 문제들은 소비자나 노동조합이 아니라 사용자인 쿠팡이 만들었다. 그러니 해결책도 쿠팡이 내놓아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안진이

안진이 the삶 대표는 '더 나은 일과 삶'을 위해 플랫폼 기업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노동 현장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헌동의 부동산 대폭로>, <톡 까놓고 이야기하는 노동>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the삶 공식 뉴스레터(33레터) 구독 링크 https://the3together.ghost.io/#/portal/signup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