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았던 내 집이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들이 공사해서 집을 폐차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원래 노후 주택이라는 겁니까?"
15일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공사로 인한 주택 피해 주민설명회가 열린 광주 북구 중흥1동 행정복지센터. 주민들은 3년간 쌓인 울분을 토해냈지만 행정 당국의 '법과 원칙'만 강조하는 답변에 결국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됐다.
광주시와 북구는 이날 도시철도 공사 현장 인근 주택 13곳에 대한 정밀안전점검 용역 결과 주민 설명회를 개최했다.
피해 주민과 신수정 광주시의회 의장, 안평환 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 광주시, 도시철도본부, 북구청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설명회에서 일부 공개된 점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3곳 중 11곳이 '심각한 결함'으로 즉각 사용을 금지해야 하는 'E등급', 2곳이 '긴급 보수·보강'이 필요하며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D등급' 판정을 받았다.

시는 지난 4월 담장 붕괴 사고 이후 주민 요청에 따라 7월부터 9월까지 해당 지역 주택 13곳을 대상으로 정밀안전점검을 진행했다. 정밀안전점검 결과서에 따르면 용역업체는 50여년 지난 노후건물과 지반 침하, 균열 등 복합적 원인이 작용했다고 진단했으며 문 개폐 불량, 건물 경사 등의 구조 이상이 확인됐다.
이에 시는 △모텔 등에 거주 중인 E등급 주택 주민 즉시 이주를 위한 인근 지역 아파트 26호를 확보 △북구 재난안전대책본부를 통해 이사 비용 등을 포함한 긴급 조치 비용을 우선 지원(선보상) △피해 주택 인근 지역에 대한 지반 보강 공사와 공법 변경 검토 △주민들과 협의체 구성 등을 제안했다.
◇"원인 뺀 대피명령, 모욕적"…시작부터 터져 나온 분노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2022년부터 고통받아 왔다며 원망과 성토의 목소리를 토해냈다.
설명회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E등급 받은 주택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주변 집들은 다 같은 시기에 지었는데 왜 우리 집들만 무너져 내리는지 모르냐"면서 "3년간 누적된 도시철도 공사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한 주민은 "추석 연휴 직전 북구청에서 보낸 대피명령 공문은 살면서 가장 기분 나쁜 공문이었다"며 "'도시철도 공사'라는 원인은 쏙 뺀 채 그냥 위험하니 나가라고만 한다"고 분개했다.

◇"폐차에 새 차값 주나?"…기름 부은 관계자 발언
갈등은 보상 문제에서 폭발했다. 도시철도건설본부 관계자가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할 것이며 공사 손해보험을 통해 보상하겠다"고 밝히자, 주민들은 "책임 회피"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한 주민은 "E등급은 차로 치면 폐차다. 당신들이 집을 폐차시켜 놓고 보험사를 끌어들이는 게 말이 되냐"며 "이사 비용, 임대료, 영업 손실, 정신적 손해배상까지 시가 직접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여성 주민은 "손해 사정 결과 책정 보상 금액이 570만원"이라며 "그 돈으로 어떻게 삶의 터전을 복구하고 돌아가겠느냐"고 울먹였다.
이때 광주시 기술직 관계자의 발언이 불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손해사정 결과에 대해) 폐차할 때 새 차값을 주나?"라고 반문했고 격분한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시 관계자는 "용역 결과에 공사가 원인이라는 내용이 명확히 나오지 않아 몇 퍼센트 책임인지 알 수 없다"고 맞서면서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광주시와 북구는 책임 떠넘기기"…행정 불신 최고조
사태 수습에 나선 광주시 관계자는 "북구 재난안전대책본부를 통해 이사비 등을 먼저 지원하고, 시공사와 협의해 보상하겠다"고 밝혔지만 행정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 정황마저 드러났다. 주민 한명이 왜 시가 나서지 않느냐고 묻자 "돈이 없다"고 답해 탄식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에 북구청 관계자는 "원래 발언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이번 사태가 사회적 재난에 해당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데, 시가 구 재난대책본부에 떠넘기고 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2022년부터 균열 문제를 제기해왔다는 한 주민은 "강기정 시장을 만나고 나서야 겨우 정밀점검이 시작됐다"며 "시장님이 'D, E등급은 집을 고쳐주거나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현장에서는 보험사 타령만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책도 없는 자리 왜 마련했나 '질타'
결국 이날 설명회는 뚜렷한 해법 없이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한 주민은 "이전 공청회 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주민들은 "주택 뿐 아니라 도로, 맨홀까지 갈라지고 있다. 이것도 노후화 탓이냐"며 성토를 이어갔다.
참석한 신수정 광주시의회 의장과 고영임·전미용 북구의원 마저 "대책도 없이 나올 거면 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느냐"고 질타할 정도였다.
그러자 관계자들은 오늘 자리가 주민들의 신속한 거주지 이전 등을 안내하는 자리라고 변명하기 급급했다. 특히 이날 주민설명회를 비공개 하기로 결정하면서 주민들의 원성은 더 커졌는데, 이후 주민들의 요구로 공개하기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사유물에 대한 사안이라 개인정보보호법등을 고려해 비공개하려다 주민들의 의견에 따랐다"고 발뺌했다.
결국 '평생 산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주민들의 간절한 외침은 '법과 원칙'라는 행정의 벽 앞에서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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