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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쓰지 마' 지방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주민 기본권 침해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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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쓰지 마' 지방정부가 발 벗고 나서서 주민 기본권 침해하는 나라

['현금 없는 사회' 당연한가] 공공교통네트워크 기획기고 ③ 법도 현금을 '법정 화폐'라 정하는데… 지방정부 무책임한 행정

'현금 없는 사회'는 얼마나 당연한가. 한국은 각종 상거래에서 현금 없는 결제가 일반화되더니, 급기야 공공 교통수단에서마저도 현금 결제가 차단되고 있다. '현금 없는 버스' 정책이다. 공공서비스의 보편적인 접근을 막는 문제임에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만 치부된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에 '삶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는 선택이 보장되는 사회가 더욱 자유로운 사회'라고 한다. 공공교통네트워트가 보내온 여섯 편의 기고로 '현금 없는 한국'의 문제를 돌아본다. 편집자

‘한국은행법’ 제48조에 따르면, 한국은행권(화폐)은 법화(法貨)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같은 법 제53조에 따라 동전이라 부르는 주화(鑄貨)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 조항은 법정 화폐의 ‘강제 통용력’을 규정한 부분으로, 현금이 우리 사회 결제 시스템의 기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고 기본권을 수호해야 할 지방정부는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 조항이 현금을 직접 사용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일부의 법 해석에 근거해 자신의 ‘현금 없는 결제’ 조치를 합리화한다. 법 해석의 기초인 문언 중심적 해석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다는 점, 법원의 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이 해석은 여러 의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은 간과된다. 주무 기관인 한국은행의 소극적 대응 속에서, 지방정부의 ‘현금 없는 결제’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방정부는 정산 투명성 등을 이유로 공공주차장에서 현금 납부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계좌이체가 현금 사용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답변한다. 계좌이체는 현금 사용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디지털 약자의 ‘이용권’ 보장이 이 기본권의 핵심 내용 중 하나임에도 이에 대한 이해도는 전무하다.

공공주차장 이용료는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다양한 주민의 주차장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 요금 수납을 받는 수단에 가깝다. 노상주차장 등 창구 결제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정산 기기 도입 시 현금 사용도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했음에도, 산하 공사의 행정 처리는 미비하기만 하다. 모든 이의 사용을 위해 도입된 이용료 수납이 오히려 주민을 선택적으로 선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조치는 공공성이 강한 버스터미널 등에서도 반복되고 있지만, 개선 조치는 없다.

▲과천도시공사(왼쪽), 서울고속버스터미널(가운데), 공공주차장 등의 현금 결제 사용 중단 조치 관련 포스터. ⓒ김김정현
▲'카드 전용'이란 경기융합타운 주차장 현수막. ⓒ김김정현

'이용 편의'란 허구

서울교통공사는 기존에 운영되던 물품보관소를 앱으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바꿨다. 상주 인원이 있는 물품보관소 ‘또타 스토리지’도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운영하는 지하철 내 물품보관소는 현금 사용이 가능함에도, 서울교통공사는 이런 사례를 참고하지 않고 디지털 결제 수단만 강제하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들여오는 외부 무인 자판기 등에도 현금 결제가 불가한 경우가 등장하고 있다. 공사는 단순 수익성 개선과 행정 편의를 이유로 이용자의 접근성을 막을 수 없다. 공사는 자체적으로 현금 사용이 가능한 여건을 확인하고, 민간업체 영업을 허가할 시 이를 고려해야 한다.

주민에게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김천시시설관리공단은 현금 수납을 전면 금지하면서 사회적 분위기, 해외 사례, 보안 강화, 환경 보호 등의 여러 근거를 들었다. 사회적 분위기가 기본권 확대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해외 사례의 문제점과 이를 보완하기 위한 법적 조치가 있는지, 보완 및 환경과 관련해서 어떠한 통계가 있는지는 말하고 있지 않다. 현금 금지 조치를 추진하는 지방정부가 근거 없는 번지르르한 이유만 붙이고 있다는 의심을 스스로 증폭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체육개발공사는 더 심각하다. 공사 이용약관 제11조 제4항에 따르면, 회원이 현금 등의 결제 수단을 통해 이용료를 내되 신용카드 결제 거부를 못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용약관에 회원이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이 언급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결제 거부를 언급한 건 이용자의 권리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이지, 현금 사용 금지의 정당성이 될 수는 없다.

▲앱으로만 사용 가능한 서울교통공사 물품보관함. ⓒ김김정현
▲ '현금 없는 결제' 조치 민원에 대한 한국체육개발공사의 답변. ⓒ김김정현

대안은 이미 있다

전국의 버스터미널에서는 현장 창구를 폐지하고, 키오스크(주문·정산 기계)로만 결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오프라인 접근성을 배제하는 문제를 낳을뿐더러, 현행 키오스크엔 동전 사용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한국은행법상 동전 사용은 무제한 통용돼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확인할 수 없다. 키오스크에 동전 투입구를 만드는 경우가 없을까? 그렇지도 않다. 대형 병원 수납기의 경우 지폐, 동전 등 모든 현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정돼 있다. 최소한 공공성을 띤 사업은 자신들의 수익 개선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해당 조건들을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민간보다 공공 부문에서 현금 사용이 어려운 역설에 처해 있다. 성남의 한 도서관에서는 도서 연체료 현금 납부를 근거 없이 막다가, 추후 문제 제기로 시정한 바가 있다. 창구 앞에 붙어있던 ‘카드 가능’ 표현이 현금 사용이 가능함을 전제로 함에도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법률적으로도 그리고 대중의 인식으로도 현금 사용이 현대 경제의 근간임에도 행정은 이를 애써 부정하고 있다.

시대 변화라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지방정부를 꼬집어야 한다. 기술 발전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 이것이 시민 기본권과 공공서비스의 보편적 이용을 막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현금 없는 사회’가 불러오는 인력 감축과 디지털화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배제를 불러온다. 행정이 이를 따르기만 하는 건 시대정신이 아니라 무책임한 변명이다.

▲지폐, 동전 등 현금을 쓸 수 있는 대학병원 주차비 정산 기기. ⓒ김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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