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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가는 규제, 날고 뛰는 플랫폼…전 세계를 휘젓는 플랫폼의 '법망 피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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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가는 규제, 날고 뛰는 플랫폼…전 세계를 휘젓는 플랫폼의 '법망 피해가기'

[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구독료, 하청화, 알고리즘 : 플랫폼의 규제 회피 3종 세트

"우리가 관측하는 순간, 그 대상도 바뀌게 된다.(The very act of observing disturbs the system)" 양자역학의 대가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회고록 <부분과 전체>에 남긴 문구이다. 입자의 질량과 속도(운동량)를 동시에 확정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 얘기지만, 적절하게 변용하면 사회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착취도 진화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를 주름잡는 플랫폼 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혁신'이라는 이미지로 치장했지만, 알고 보면 노동법 규제를 피해 가는 사기였다. 그래서 정부가 규제라는 수단을 꺼내면 플랫폼은 더 교활해진다. 모든 법망에는 구멍이 있기 마련이고, 플랫폼은 그걸 빛의 속도로 찾아낸다.

"수수료 동결했더니 구독료가 생겼습니다"

2억 8000여 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 이곳의 주요 교통수단은 이륜차(오토바이)다. 승차공유 앱 택시 역시 승용차 기반이 아니라 오토바이 택시가 일반적인데, 이 업종에서 일하는 앱 기사들 규모만 300~400만 명에 달한다. 이 나라 앱 택시 플랫폼을 주름잡는 기업은 본토에서 성장한 고젝(Gojek)과 동남아 최강자 그랩(Grab)이다.

플랫폼기업이 앱 기사들로부터 과도한 수수료를 강요한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2022년 발표된 교통부령 KP 667호를 통해 수수료 상한을 20%로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하게 된다. 운전자 수입에서 징수할 수 있는 중개 수수료는 최대 15%, 여기에 드라이버 복지 목적으로 추가 5%를 더해 총 20%를 초과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정부가 법을 만들면 플랫폼은 편법을 빚어낸다. 수수료 상한 규제를 우회할 편법은 '구독료'였다. 이를테면 그랩은 '헤맛(Hemat)'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는데, 앱 기사는 하루 3,000~20,000루피아 구독료를 내면 저가 주문을 먼저 배정받을 수 있게 된다. 구독료 결제는 전자지갑 잔액에서 자동 차감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인도네시아 기사들이 저가 주문을 선호하는 이유는, 대도시 교통정체가 극심해서 단거리일수록 이동시간 예측이 쉽기 때문이다. 단거리 중심으로 콜을 수행하면 한 시간에 여러 건 수행이 가능하고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연료비 절감 효과도 있다. 길이 익숙한 지역일수록 고객 응대도 쉽고 리스크도 줄어든다. '꿀콜' 저가 주문을 받으려면 구독료를 내라는 것이다.

▲배달 라이더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구독은 자유지만 탈퇴하면 '콜' 마름

구독료를 고려하면 수수료율 20% 제한을 위반하는 것인데, 그랩의 변명은 간단하다. "구독 선택은 기사의 자유입니다. 언제든 탈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독을 취소해 본 기사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얘기한다. 탈퇴하면 배정받는 콜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고젝 플랫폼의 경우 근거리 주문을 우선 배정해 주는 '아쩡(Aceng)'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프로그램 사용료는 무료지만 기사의 수입은 무조건 5,000루피아로 고정된다. 2만~3만 루피아의 콜 단가가 책정되더라도 운전기사에겐 5,000루피아만 지급된다. 나머지 금액은 모조리 고젝 플랫폼이 가져간다.

아쩡 서비스 역시 가입하지 않으면 앱 노출과 주문 건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실질적으로 가입 강제 효과가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명목상 수수료는 20%를 넘지 않지만, 플랫폼이 고객으로부터 받는 요금에서 실제 가져가는 비율은 최대 75~80%까지 치솟는다. 플랫폼은 법을 피해 달리고, 앱 기사는 소득을 피해 달리는 꼴이다.

하청화로 규제 따돌리기

세계 최초로 라이더법을 제정한 스페인. 이 나라에서 배달 라이더는 플랫폼이 직접 고용한 '근로자(노동자)'로 간주한다. 당연히 최저임금과 노동안전을 비롯한 모든 노동기본권이 차별 없이 보장된다.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기 싫다면 사용자인 플랫폼기업이 입증해야 한다.

이 법이 싫어서 딜리버루(Deliveroo) 배달 플랫폼은 스페인에서 사업을 철수했다. 반면 우버이츠(UberEats)와 저스트잇(JustEat)은 울며 겨자 먹기로 라이더들을 직접 고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글로보(Glovo)만은 몽니를 부렸다. 법을 어겨가면서 라이더들을 프리랜서·자영업자처럼 계약을 체결해 온 것이다.

그러자 스페인 정부가 엄격한 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검찰은 노동법 위반으로 건건이 기소해 재판에 부쳤다. 최근 법원은 막대한 벌금은 물론이고 수천 명에 달하는 라이더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글로보도 사업모델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몰렸다.

하지만 글로보가 꺼내 든 카드는 바로 하청화였다. 즉, 배달 플랫폼과 라이더 사이에 글로보와 계약을 체결한 전용 하청업체인 플릿(fleet)을 끼워 넣었다. 실질적 지배자는 글로보 플랫폼이지만 형식적으로 고용은 플릿(fleet)에게 떠넘김으로써 사용자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무책임 기술의 달인

기존에 플랫폼이 활용해 온 알고리즘, 즉 콜 배정 방식이나 운행 시간 통제 등 실질적 권한은 여전히 글로보가 수행한다. 플릿은 보험, 세금, 근태 관리, 계약 체결 같은 인사·노무관리 항목만 외주화된 형태일 뿐이다. 라이더는 이 플릿과 연계된 방식으로 오로지 플랫폼에 올라온 주문만을 수행한다. 하지만 글로보는 라이더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남유럽에 있는 EU 회원국 몰타(Malta)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나라 역시 EU가 의결한 '플랫폼 노동 입법지침'에 따라 배달 라이더를 '근로자(노동자)'로 추정하는 제도를 도입했는데, 우버, 볼트(Bolt), 이-캡스(eCabs) 등의 플랫폼이 기사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중간에 하청업체를 끼워 넣었다. 공교롭게도 이 하청업체 이름도 플릿(Fleet)이다.

대부분의 몰타 승차공유 앱 기사가 플랫폼을 통해 콜을 수행하면, 발생한 총매출을 플릿과 운전자가 50:50으로 분배하는 '수익분배계약'을 체결한다. 예를 들어 기사가 연간 8만 유로 매출을 올리면, 각자 4만 유로씩 나눠 갖는 구조다. 대신 수수료(20%), 부가세(18%), 차량 유지비, 보험료 등의 운영비용은 플릿이 지불한다.

실질 사용자는 우버를 비롯한 플랫폼이지만 계약에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플릿에 떠넘긴다. 플랫폼이 건당 20%의 수수료를 따박따박 챙겨가니 플릿은 자신의 이윤 창출을 위해 실제로는 기사들에게 법정 최저임금만 강요하고, 간혹 현금 주문 수익을 챙기도록 지시해 탈세를 통한 수익을 챙기기도 한다.

규제에 구멍 뚫는 '알고리즘'

전 세계 승차공유 앱 1위를 달리는 우버가 최근에 도입한 '트립 레이더('Trip Radar)'라는 알고리즘은, 하나의 콜이 아니라 여러 건의 호출을 동시에 보여주고 클릭 경쟁으로 매칭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버는 "운전자에게 다양한 선택지와 더 많은 콜 기회를 제공한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경쟁을 부추긴다. 때로는 사고 유발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트립 레이더는 운전자에게 여러 개 호출 리스트를 동시에 제시하며, 빠르게 선택한 사람이 해당 콜을 배정받는다. 그런데 이 리스트는 요금 높은 순서가 아니라, 오히려 플랫폼에 유리하도록 가성비 낮은 순서로 노출되기 일쑤이다. 빨리 클릭한 순서대로 콜이 잡히니 앱 기사는 평소에 기피하던 '똥콜'도 수행할 수밖에 없다.

▲Rideshare Guy라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이자 미국의 승차공유 앱 기사인 세르지오 아베디안 씨가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트립 레이더가 작동하는 장면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공개한 내용. ⓒ유튜브 채널 Rideshare Guy

위 사진은 구독자 19만 명의 Rideshare Guy라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이자 미국의 승차공유 앱 기사인 세르지오 아베디안 씨가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트립 레이더가 작동하는 장면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공개한 내용이다. 요금 구간 관계없이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12~17분 거리의 가성비 낮은 콜만 보이는 실제 상황을 잘 말해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트립 레이더가 보여주는 이런 콜들은 앱 기사들이 운전하는 중에도 휴대폰 화면에 뜨게 되고 운전 중에 수락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 회피만이 아니라 사고 유발 알고리즘인 것이다.

"콜 뺑뺑이" "두더지 잡기 게임"

미국과 유럽 일부 나라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트립 레이더 알고리즘에 대해 우버 기사들은 '콜 뺑뺑이' 또는 '두더지 잡기 게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먼저 콜을 잡기 위해 무한 클릭을 반복하는 짓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똥콜 안 잡으면 되잖아?" 하지만 가성비 낮은 콜을 계속 거부하면 당연히 페널티가 주어진다. 아베디안 씨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서는 콜을 몇 차례 이상 거부하면 다음 콜부터 목적지 미리보기를 박탈할 수도 있다며 저가 콜 수락을 강제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똥콜 하나를 거절했더니 다음에도 똑같은 콜을, 그걸 거절했더니 계속 그 콜만 보여주는 일도 경험했다.

배달 플랫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미국 도어대시(DoorDash)는 △배달원 평점 4.5 이상 △수락률 50% 이상인 경우에만 좋은 콜을 우선 배정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수락률 70% 이상일 경우 더 강한 우선권을 준다고 홍보한다. 결국 가성비 낮은 저가 주문도 받아서 수행해야 높은 수락률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운행을 미끼로 똥콜 수락을 강요하는 꼴이다.

하청은 가리고 알고리즘은 감추고

하청화나 복잡한 알고리즘 모두 최근 시작된 정부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이다. EU가 의결한 플랫폼노동 입법지침에 따라 플랫폼기업과 종사자 사이에 고용관계(노사관계)를 부과하게 되자, 이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하청업체가 동원된다. 근로자성(노동자성)을 부정할 수 없다면, 사용자책임을 면해보자는 심보다.

복잡한 알고리즘을 도입하는 것 역시 EU의 입법지침, 그리고 네덜란드 법원이 최근 잇따라 알고리즘 원리를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설명하고 알려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복잡한 알고리즘을 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훨씬 더 복잡한 알고리즘으로 바꿔버리면 규제가 작동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ILO 총회에서 플랫폼노동 관련 협약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핵심내용은 △플랫폼기업의 사용자책임 △플랫폼노동자 적정임금·노동안전 보장 △알고리즘 알 권리 강화 등으로 EU 플랫폼노동 입법지침에 담긴 내용들과 비슷했다. 하지만 플랫폼 자본은 이미 이런 규제를 우회할 길을 만들고 있다. 규제는 거북이걸음인데, 우회로 뚫기는 쏘아놓은 화살이다.

구독료·하청·알고리즘 삼위일체, 배달의민족

일부 독자들은 읽으면서 몇 번이고 느꼈을 것이다. '어? 저 방식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하고. 그렇다. 지금까지 소개한 3종 세트는 해외에서 먼저 시작했을 뿐 거의 모두 한국의 플랫폼 자본들도 앞다투어 도입하는 중이다.

가장 앞선 곳은 당연히 공룡 플랫폼인 배달의민족과 카카오모빌리티. 배달의민족은 최근 '배민커넥트 비즈', 때로는 '배민플러스'라고 부르는 하청업체 도입을 전면화했다. 스페인이나 몰타 사례에서 본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플랫폼의 사용자책임을 면하려는 목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EU 플랫폼노동 입법지침과 같은 규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플랫폼 자본 입장에서 하청업체를 활용해야 할 정도로 절실한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배달의민족은 고용관계나 사용자책임 면제만을 위해 하청업체를 도입한 것이 아니다. 수수료 제한이나 알고리즘 검증 등의 규제까지 모두 회피하려는 전략, 즉 규제회피 3종 세트를 하청업체 모델에 모두 담았다.

"배민플러스가 구독료를 요구하진 않잖아?" 그렇다. 하지만 라이더에게 구독료 말고도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게다가 사업모델 자체가 이제 시작된 것이기에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을 실험 중이기도 하다. 글로벌 플랫폼 자본의 규제 우회전략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구체화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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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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