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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결집·난동은 '공동체 붕괴' 방치해 받은 영수증…언제든 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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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극우 결집·난동은 '공동체 붕괴' 방치해 받은 영수증…언제든 재발"

[좌담회 下] 이한·안희제 "시민들의 좌절 증폭하는 정치가 가장 큰 문제…대화·화합 이끌어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이유로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서부지법 폭동' 가담자들이 여전히 법의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96명 중 1심 선고가 내려진 이는 6명, 그중 3명은 법원 판결에 불복해 재판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혐의를 부인하는 상당수 피의자는 계속해서 공판에 출석하지 않으며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서부지법 폭동으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의 폭력행위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대선 결과에 따라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남아 있다. 부정선거와 중국 개입설 등 허위정보를 재생산하며 국가기관인 서부지법과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자고 모의·실행한 남초(남성 중심) 커뮤니티도, '국민저항권'이라며 폭력선동에 앞장섰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도 별다른 처벌 없이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총칼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룩한 한국 사회가 어쩌다 음모론과 물리적 폭력으로 인한 체제 붕괴를 걱정하게 됐을까. 학교와 군대 등에서 성교육을 진행해온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며 <증명과 변명-죽음을 계획한 어느 청년 남성이 남기는 질문들> 등을 집필한 안희제 작가는 "한국 사회와 정치가 공동체와 공공영역의 붕괴를 방치한 결과 극우세력의 등장과 난동이라는 영수증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대단히 지지해서, 부정선거 등의 음모론을 확신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잃어버린 시민들이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공간을 찾아 보수 개신교, 극우세력으로 흘러 들어간 결과 지금과 같은 극단적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붕괴를 방조하고 또 시민들의 좌절을 증폭해 자기 이익으로 삼은 정치인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대선후보와 새 정부에 "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차별을 시정하는 정책을 주도하며 시민 간 대화와 화합을 이끌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지난달 21일, 그리고 지난 12일과 23일 진행한 두 사람의 좌담 두 번째 편이다. 첫 편은 탄핵 정국에서 주목받은 극우 남성들의 폭력성을 주목했다.(관련기사: "약자에 '박탈감' 느낀 남자들, '고어자본주의' 등에 업고 극우화")

▲4월 2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이한 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 활동가와 안희제 작가가 극우세력의 등장과 난동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탄핵집회와 극우집회, 남녀대립 아닌 팬덤문화 대 교회문화 구도로 봐야"

프레시안 : 언론과 시민사회는 탄핵 정국을 이끈 청년 여성들을 주목하는 동시에 청년 남성들이 광장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하곤 했다. 이 활동가와 안 작가는 이런 시각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한 : 시민들이 광장에 나오는 이유에 주목해야지, 단순히 성별 그 자체만 집중하면 광장에 나오지 않는 사람(남성)들에게 변명거리를 만들어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청년 여성들이 광장에 쏟아져 나온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젠더폭력과 차별적 역사를 겪으며 쌓인 분노에 있지 않나. 그래서 성별보다는 집회 참여자들이 광장에 나오는 각각의 이유를 보고 듣는 데 집중했다. 시민 100명을 만나 광장에 나온 이유 또는 나오지 않은 이유를 묻는 릴레이 인터뷰, 집회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주목하려고 노력했다.

안희제 : 광장에 남자가 없다는 비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단 집회에 참여한 나부터가 남자기 때문이다. 나도 걸그룹 '이달의 소녀' 응원봉 들었다(웃음). 내 부친도 함께 광장에 나갔고, 광장에서 만난 지인들 중에서도 남자가 많았다. 애초에 언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는 게 아니라 사실에 담긴 특정 성질을 증폭하는 기구지만, 광장에 남자가 비교적 적다는 점을 증폭하면 '광장은 남자가 올 곳이 못 되는구나'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광장에 참여한 남자들을 발견하려고 노력했고, 서로 팔짱을 낀 채 다정하게 서 있는 남자들을 보며 희망을 느꼈다.

프레시안 : 탄핵 집회에도 남성이, 극우집회에도 여성이 있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탄핵 찬반 집회의 성격을 성별이 아닌 다른 요소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안희제 : 웃긴 대립일 수 있지만, 탄핵 찬반 집회를 청년 여성과 청년 남성의 대립이 아니라 팬덤문화와 교회문화의 대립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문화는 돌봄과 폭력이 공존하는 공동체라는 아주 중요한 공통분모가 있다. 팬덤문화를 보면 콘서트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 과자나 친필 사인이 적힌 굿즈를 아무런 대가 없이 나눠주곤 한다. 때로는 지갑도 못 열게 할 정도로 적극적인 돌봄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돌이나 팬덤 내부 등을 향한 과격한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을 일으키곤 한다. 교회도 팬덤과 비슷하다. 교회에 가면 서로 살갑게 인사하고 일상을 나누고, 아이들 함께 돌보며 믿음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내부에서 조금만 엇나가면 교회를 나가야 할 정도로 끝없이 서로를 감시한다. 이처럼 폭력과 돌봄이 얽혀있는 공동체 문화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적극적으로 발화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을 때 지지받을 수 있도록 했다고 본다.

이한 : 안 작가 말에 동의한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탄핵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고, 두 시위를 평화와 폭력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기도 어렵다. 태극기 집회 가보면 서로 빵을 나누고 애들끼리 뛰어놀기도 한다. 한편, 윤석열이 파면되지 않았을 때 과연 나는 높은 확률로 (폭력 시위로 인해) 잡혀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권위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고, 동시에 안정적인 상태에 놓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미세한 경로의 차이로 인해 어느 쪽으로 가게 되는지 달라질 뿐이다.

▲28일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 정문 앞에 모인 극우세력들은 오후 1시부터 탄핵 찬성 측과 대치를 시작해 피켓을 뺏어 찢고 현수막을 짓밟는 등 폭력 행위를 벌였다. 탄핵 찬성 측 앰프를 뺏어가려다 제지당하자 손잡이와 안테나를 파손시켰으며, 한 극우 유튜버는 경찰 펜스를 향해 차를 몰고 위협하며 사이렌을 울리는 등 극단 행위까지 벌였다. ⓒ프레시안(박상혁)

"극우 결집·난동은 '공동체 붕괴' 방치해 받은 영수증"

프레시안 : 양측 집회의 성격과 참여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평등 문화와 폭력성 등에서는 분명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나. 어떤 요소가 이런 극단적인 결과를 들었다고 보나. 이것도 '팬덤 대 교회'라는 틀로 설명할 수 있나?

안희제 : 서로 비슷한 원리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같은 성격을 가진 건 아니다. 대형교회는 목사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권위주의 성향이 강하고, 내부에서 일자리나 음식을 나누는 등 경제공동체 성격을 띠고 있어 한번 얽히면 쉽게 나가기 어렵다. 반면 팬덤은 언제든 아이돌을 비난하거나 떠날 수 있기에 아이돌이 오피니언 리더가 되기 어렵고, 2차 창작물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팬의 경우 칭찬을 받을지언정 수익을 창출할 수는 없으며 그도 언제든 팬덤에서 쫓겨날 수 있다. 아이돌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모인 사람들도 특정 지시나 경제적 이익에 의해 집단행동을 벌인 게 아니다. "우리 오늘 응원봉 들고 나갈까?"라며 소수 인원이 모여 광장에 왔을 뿐인데 모두가 응원봉을 들고 있던 거다. 이런 차이가 폭력과 돌봄의 공동체라는 공통점을 두고도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한 : 특히 보수 개신교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핵심 요소라고 본다. 집단 내부에 다양성이 있다면 실패와 잘못을 비판하면서 더 나은 대답을 찾아갈 수 있는데, 목사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체제는 이런 비판을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여기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을 마냥 손가락질할 게 아니다. 가족이라는 전통적 공동체가 무너진 지 오래됐고, 한국 사회에 공동체나 공공 자원이 사라진 상태에서 교회가 돌봄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공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극우집회에 참여했던 이들이 대단한 신념을 가져서 윤석열을 지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친하고 나를 자주 도와준 사람이 보수 개신교 교회를 다니며 극우집회에 가니까 따라가는 거다. 극우세력의 등장과 난동은 우리 사회가 공동체 붕괴를 방치하다 뒤늦게 받은 영수증이라고 생각한다.

안희제 : 우리가 놓친 것들을 전광훈과 같은 보수 개신교 세력이 제공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극우로 흘러가는 거다. 모든 사람들은 타인의 눈에 비합리적으로 보일지언정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합리성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기에 극우로 빠지는 이들을 비난하기보다 극우에 빠지는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탄핵 정국에서 나타난 극단적 폭력은 지금처럼 좌절감과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소수자 차별이 만연하고 이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까지 부재한 사회에서는 증오범죄가 너무 일어나기 쉽고 또 이미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극우 난동을 단발성 사건으로 볼 게 아니라 전부터 이어져온 사회 문제의 연속으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국민의힘 김문수·민주노동당 권영국·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가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1대 대선 2차 후보자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하기 위해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동체를 와해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 말고, 차별 막고 대안 모색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우리 사회 공동체와 공공성 붕괴 등 전부터 이어져온 사회 문제가 극우 난동의 근본 원인이라면, 정치권에도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대선 후보들, 그리고 새 정부에 바는 태도가 궁금하다.

이한 : 당연히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사실 공동체 붕괴는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보수 개신교가 불만과 불안에 찬 사람들의 목소리를 결집시키는 일도 전부터 있었다. 정치인들은 이런 불안을 더 부정적인 방식으로, 공동체를 와해하고 정적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윤석열 정부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여성들의 불만과 불안을 외면한 채 여가부 폐지를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갈등을 조장하고 누군가를 평가하는 태도를 가진 정치인이 아니라, 시민들의 부족한 점들을 채워주며 대안을 모색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안희제 : 최근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토론회에서 자신이 평범한 기반에서 시작했다며 누구나 이 자리를 꿈꿀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가 밟은 엘리트 코스는 말도 안 되게 좁다. 극히 일부만 이룰 수 있는 꿈을 모두가 꿈꾸게 하겠다는 말은 아주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나는 이 후보가 자신의 거짓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면서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후보들이라고 대단히 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차별을 시정하겠다는 정치인이 너무 적다는 게 지금 정치의 가장 큰 문제다. 여성이든, 성소수자든, 장애인이든, 이주민이든 많은 사람들이 차별로 인해 좋은 삶을 누릴 수 없고, 자신은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며 그들을 혐오하고 차별을 강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혐오와 폭력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 차별 시정이야말로 모두를 위해 정치가 해야 하는 약속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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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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