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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놓친 산림청…산불 서쪽서 발생할 땐 나라 절반 다 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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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놓친 산림청…산불 서쪽서 발생할 땐 나라 절반 다 태운다"

[현장] 산불 현장검증 2차 설명회…"기후 변화, 강풍 탓 그만"

"12년간 산불현장 640여 곳을 다녔습니다. 그동안 진화 체계, 전략이 부재한 컨트롤타워만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의성 산불 같은 경우엔 불 뒤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불이 도시나 산을 뛰어넘는 그 중간에 저지선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미 불이 저쪽으로 넘어가고 뛰어가는데, 모든 진화 자원이 이쪽에만 있어요."

지난 25일 오후 경북 의성군 안평면의 한 야산 속, 노란색 폴리스라인이 설치된 산불 최초 발화지에 시민들과 기자 15여 명이 모였다. 가장 앞에 선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이 주최한 산불피해지 2차 현장 검증 설명회에서다.

황 소장은 이날 3시간에 걸친 설명회에서 산불 대응을 위한 전략이 부재한 산림청을 거듭 비판했다. 발화지에선 산림청이 산불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점을, 1시간 후 이동한 대형 산불 확산 지점에선 산림청이 기본적인 산불 대응 인프라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했고, 전략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 역할도 해내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산불시민모임)'이 4월 25일 최초 의성산불 발화지인 경북 의성군 안평면의 한 산에서 산불피해지 2차 현장검증 설명회를 열었다. ⓒ최진우(서울환경연합)

"'기후 변화', '강풍' 그만... 디테일 조사해야"

"한국에서 산불이 직선거리 80킬로미터(km)를 이동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가장 멀리 갔다는 청양 산불은 17km를 이동했고요. 의성 산불은 계속 산과 산, 마을과 마을을 뛰어넘었어요. 근데 우리가 가진 진화 장비, 전략으로 이걸 진압을 못 한다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느냐? 향후 서쪽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땐 나라 절반을 다 태울 가능성도 있습니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겁니다."

황 소장은 현재 산불 대응 체계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첫 운을 뗐다. 그는 기후 변화와 강풍이란 키워드가 산불 보도를 뒤덮었지만, "산림청 주장을 검증 없이 싣고 있다"며 언론이 진압 과정을 세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성군 안평면에서 산불이 처음 신고된 시각은 지난 22일 오전 11시 24분, 이후 불이 대형 산불로 크게 번지며 안동과 영덕으로, 급속도로 확장한 건 25일 경북 일대에 초속 10미터 이상의 강풍이 불면서다. 황 소장은 이 사흘 동안 산불 진화 책임 부처인 산림청의 전략 부재로 인해 초기에 잡을 수 있던 작은 불이 대형 산불로 번졌다고 지적했다.

"2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40분까지 제가 기상 상태를 정밀하게 분석했는데 그 당시에 여기 바람이 몇이었냐, 초속 1.5미터였습니다. 언론은 22~24일 기상청 날씨누리 들어가서 기상 상태 다 확인하셔야 해요. 물론 7부 능선의 바람은 평지와 2~3배 차이는 날 수 있습니다. 저도 22일 현장에 있었는데 저녁 8시에도 바람이 잠잠했습니다. 24일까지 그랬어요."

이에 안동에서 온 참가자가 "25일 오전까진 바람이 하나도 없었다"며 "내같은(나같은) 문외한도 지금이 골든타임 아닌가 했다"고 맞장구쳤다.

황 소장은 불바람이 생기는 대형 산불 현장은 진화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24일에 불을 다 진화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림청의 '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실책의 한 예로 들었다.

이 시스템은 전국 각 지역의 지형, 산림 상황, 온도, 습도, 풍속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산불 위험도가 높은 지역을 예측해 경보를 내리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번에 예측도가 실제와 확연히 다르게 그려지거나, 산불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했고, 일부 지역에선 아예 가동도 되지 않았던 사실이 확인됐다. 황 소장은 "모든 시스템과 정보를 가지고, 정보를 지원기관에 신속히 전파해야 할 산림청의 대단히 심각한 실책"이라고 비판했다.

산불 전략 부재한 컨트롤타워

황 소장은 그러면서 '확산 저지'라는 개념을 꺼냈다. 불을 뒤따르면서 끄는 게 아니라 확산에 대비한 저지선을 그어, 그 선을 중심으로 진화 자원을 대량 동원해 대형 산불로의 확산을 방어하자는 개념이다.

"당장 현장을 봤을 땐 번질 대로 번진 불이 보이죠. 근데 이 불이 저 산으로 뛰어넘을 땐 어떨까요? 불티가 산 초입에 떨어져서 새로 시작해요. 그 불은 잡기가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굉장히 좋죠. 산불은 부채꼴로 번지기 때문에 저지선을 빨리 그을수록 진화에 유리합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참가자들은 산에서 내려온 후 14km가량 떨어진 산불 확산 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성 산불이 안동, 영덕 등으로 번진 대형 산불이 되기 시작한 지점인 의성군 업리의 길목이었다. 황 소장은 이들이 자동차로 이동한 14km의 4차선 도로를 '최종확산저지선'이라고 소개했다.

"여기 우리가 따라온 길이 뭐냐, 자연 방화선이에요. 도로 폭이 한 50m는 되잖아요. 주변이 평지, 농지면 폭이 200~300m는 되죠. 또 지금 선 도로는 남북도로입니다. 그때 서풍이 불었으니 남북도로가 확산 저지에 용이하죠. 이 선에서 얼마든지 진화 자원을 동원하거나 소방관을 동원하거나 해서 불이 넘지 않아야 했고요. 그러나 이런 전술은 그날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이 저쪽으로 이미 옮겨 탔는데, 진화 자원 150%가 다 이쪽에만 있어요."

한 참가자가 "봉우리 한두 개를 포기하더라도?"라고 묻자, 황 소장은 "맞다"고 답했다. 그는 "산불 진화엔 '맞불' 전략이 가장 좋으나 산불 진행 방향이 일정하고 국토가 좁은 한국은 쓰지 못한다"며 "그러나 더 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사전 조치 전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정석 산불정책기술연구소장이 참가자에게 나눠준 확산저지선(붉은색 선) 도식화 지도.ⓒ프레시안(손가영)

'숲가꾸기' 마른 장작 쌓인 숲... "헬기 만병통치약 아냐"

황 소장은 전략 부재에 더해 인력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림청은 공중진화대를 강조하지만, 전국의 104명이 다 여기 동원되지 않는다"며 "의성 산불엔 20명이 채 동원되지 않았고 이마저 2교대로 운영된다"고 했다. 이어 "특수진화대가 430명이라 해도 산청, 울주 등으로 산불이 동시다발로 났고, 교대제인 데다, 진화대원이 고령인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그는 산불 진화 업무를 산림청 대신 인력과 인프라의 규모가 더 큰 소방청으로 일원화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현재 산불 대응 주관기관은 산림청이다. 산림의 산불은 산림청의 산불진화대가 진화하고, 소방청은 유관기관으로 산림청 지휘본부를 지원한다.

이날 설명회 인근 산속 곳곳에는 재선충 피해를 당한 소나무, 산림청의 숲가꾸기로 베어진 후 말라버린 나무들이 산 바닥에서 보였다. 참가자들은 마른 고사목과 나무 잔해들을 보며 "저게 다 마른 장작이 된다"라며 혀를 차기도 했다.

황 소장 또한 "숲의 밀도가 높으면 산불에 취약하다고 산림청은 숲가꾸기로 나무를 베지만, 이걸 끄집어내지 않고 바닥에 그대로 방치한다"며 "이게 마른 장작이 된다. 산 중간에 베어진 나무들은 사람이 지게로 다 져서 나가야 해 절대 산림청이 처리 못 한다. 방치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형 헬기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그리는 보도에 대해서도 이면을 지적했다. 황 소장은 "산불 현장에서 직접 헬기를 보면 안다. 헬기가 낮게 날 경우 하강풍이 어마어마하다"며 "헬기가 화점을 탁 때린다 해도 이미 화선이 3~5배 더 늘어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 머리에 헬기를 투입해야 하는데, 이미 퍼져 나가고 있는 불 꼬리에 투입하니 불이 더 확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 소장은 언론에는 "산림청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지 말 것"을 당부했다. 강풍 때문에 불을 진화하지 못했다면 그날 정말 강풍이 불었는지, 산불위험예보시스템은 제대로 운영하는지 등을 확인해달라는 지적이다. 그는 "산불이 기후변화, 강풍 때문이라고 그대로 그냥 실어주면, 앞으로 대책 못 세운다"며 "분명히 잘못된 것은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의성산불 피해 현장인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 일대 야산. ⓒ정정환(지리산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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