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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가꾸기'했더니 더 타버렸다…불난 산에 기름 대준 산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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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가꾸기'했더니 더 타버렸다…불난 산에 기름 대준 산림청?

[현장] 의성산불 피해 검증 현장, 산림청 주장과 어긋난 모습 도처에…"자연재해 맞나" 의문도

경북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의 한 뒷산. 산불 진화 23일째에도 산 안에는 매캐한 탄내가 짙게 남아 있었다. 수첩을 꺼내면 조금만 지나도 검은 먼지가 쌓였다. 바닥은 재, 숯, 메마른 흙이 뒤섞여 걸을 때마다 발에 흙먼지가 일었다.

사방의 소나무는 모두 검게 탔거나 열에 익어 누랬다. 산림청의 숲가꾸기(소나무만 남기는 솎아베기)가 진행된 산이라 애초에 나무도 듬성듬성해 산 안은 휑했다. 메마른 흙이 뿌리를 잡아주지 못해 뿌리째 들려 엎어진 나무, 구부러지다 동강 난 나무, 열기에 휘어져 버린 나무도 산재했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언덕도 푸른색 없이 시커맸다.

"활엽수가 많은 건 물 적신 종이가 여기 꽉 들어차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 강한 불(수관화)을 계속 막아주는 거죠. 근데 보세요. 다 제거했죠? 소나무만 남겨 놨네요. 기름덩어리만 남긴 거죠. 다 타라는 건데, 이걸 뭐라 그래야 돼요? 차라리 산불 확산 작전을 펼친 거죠. 이게 자연재해예요?"

지난 19일 '산불피해지 1차 현장검증 설명회'가 열린 동변리 뒷산 중턱에서 홍석환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교수가 말했다. 경북 의성군의 점곡면은 지난 3월 발생한 의성 산불로 인한 피해가 큰 곳 중 하나다.

▲지난 4월19일 드론으로 촬영된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산불 피해 현장 모습. ⓒ정정환(지리산사람들)
▲산불 피해가 심했던 경북 의성 점곡면 동변리 인근 뒷 산 내부 전경. 숲가꾸기가 이뤄져 소나무만 남겨진 산이다. 모두 불에 타서 검게 그을렸다. ⓒ프레시안(손가영)

이날 시민 19명과 설명회에 동행한 홍 교수는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산불피해가 극심하면서 임도 밀도가 높은 동변리 인근을 검증지로 정했다. '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이 주최한 이 행사엔 기자들부터 점곡면 주민, 환경단체 활동가, 임업자, 산림학자 등이 서울, 대구, 구례 등 전국 각지에서 참여했다.

다 탄 소나무 숲, 덜 탄 혼효림

"와, 진짜 혼효림(활엽수·침엽수 섞인 숲)에선 끊겼네."

등산 도중 참가자들 사이에서 놀라움 섞인 말이 나왔다. 주변 산을 둘러볼 수 있는 지점에 섰을 때다. 숲가꾸기를 한 산은 검은 소나무만 조밀하게 박혀있어 눈에 쉽게 띄었는데, 대부분 검게 탔다. 그런데 우측 멀리 보이는 한 언덕의 혼효림엔 산불이 채 확산하지 않은 모습의 푸른 산이 보였다.

참가자들은 이날 설명회 3시간 동안 임도(산 내 도로)를 따라 걸었다. 오르던 임도에도 비슷한 광경이 목격됐다. 숲가꾸기를 한 지 수 년이 지나 산 사면 아래에 활엽수가 자생한 구역이었다.

"불이 이렇게 (경사로) 내려오다가 바닥으로 타죠. 활엽수가 꽉 차 있으니까, 바닥으로 불이 탈 수밖에 없어요. 활엽수에서는 (나무 꼭대기까지 잎·가지가 다 타는) 수관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바닥으로 불이 내려오면 자연히 이 임도에서 불이 끝나요. 더 갈 데가 없잖아요."(홍 교수)

산림청은 불 확산을 제어하고 소방인력도 투입할 수 있기에 임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무조건 임도만 놓는다고 산불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바닥 불(지관화)이어야 임도에서 불 확산을 저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활엽수림에선 지관화가 주로 발생하고, 소나무림에선 수관화가 발생하는데 이 수관화가 대형 산불을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산림청은 이같은 지적에도 이달엔 4200억 원의 추경 예산을 편성받아 임도 증설과 긴급 벌채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산림전문가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 불이 나무 꼭대기 위를 날아다니며 수백 미터 떨어진 언덕에까지 불을 확산시키는 대형 산불의 경우 해당하는 논리가 아니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임업자 A 씨는 산림청의 입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교통사고가 계속 나요. 근데 '야, 저기 교통사고 자주 나네. 앰뷸런스를 미리 많이 준비하자'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도로가 꼬불꼬불해 맨날 사고가 나는 건데, 이걸 예방해야 하는 건데, 담당자가 나와서 '앰뷸런스를 구석구석에 대기해 놓자' 하는 거예요. 이게 말이에요?"

▲지난 4월19일 드론으로 촬영된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산불 피해 현장 모습. 단순 소나무숲에서 산불이 대거 확산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정환(지리산사람들)

'돈이 돼서' 했던 '숲가꾸기'의 결말

"아이고. 그냥 바람길이네. 바람이 '숭숭' 다니네."

설명회에선 참가자들의 이런 혼잣말들도 수시로 들렸다. 임도와 활엽수가 모두 베어진 휑한 숲 사이로 바람이 어떤 방해물 없이 수시로 드나드는 걸 직접 맞으면서다. 2시간가량 걸었던 숲 사면 대부분엔 베어진 활엽수 밑동이 즐비하게 깔려있었다.

홍 교수는 소나무만 남긴 휑한 숲엔 빛이 직사해 토양이 건조해지고 척박해지며 풍속도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같은 숲가꾸기가 "미세먼지 저감, 탄소 중립, 온도 저감, 산불 예방 등 다양한 명목의 사업으로, 다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숲가꾸기는 왜 2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현장에서 질문이 나오자, 실제 산림청 벌목 사업에 오래 참여해 왔던 A 씨는 "돈이 되니까요"라고 말했다.

"70년대 만들어진 (숲가꾸기) 교본이 그냥 그대로 오는 거예요. 가장 돈이 몰리는 곳이 (전국의) 산림조합이고요. 통상 벌목비는 헥타르(ha)당 1200만 원 선입니다. 산불 지역은 몇 배로 더 뛰고요. 긴급복구라며 만드는 임도도 미터(m)당 20만 원 선입니다. 산림청은 이 예산을 따겠죠. 처음 산불피해 면적이 5만 헥타르라고 산림청이 밝혔을 때 복구비용이 3조가량으로 추산됐는데, 피해 면적이 10만 헥타르라고 하죠. 예산이 얼마나 들까요?"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산불 피해 현장에서 산불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멧돼지 사체가 발견됐다. ⓒ프레시안(손가영)

불 못 피한 산 멧돼지 사체에 '아이고'

언덕 중턱을 오르자, 참가자들 사이에선 "아이고", "어떡해" 하는 짧은 탄식도 터져 나왔다. 미처 산불을 피하지 못한 듯한 멧돼지 사체가 임도 인근에 엎드려 있었다.

좀 더 산을 올라, 홍 교수는 검게 탄 나무의 껍질을 벗기면서 말했다. 껍질이 떨어져 나간 자리엔 보통 나무의 것과 다를 바 없는 흰 속살이 보였다.

홍 교수는 "정확히 말하면, 나무는 타지 않는다. 타는 건 잎과 잔가지, 껍질"이라며 "죽을 순 있어도, 다 재가 된 것처럼 탄 건 아니다. 그을린 것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8일 발표된 산림청의 연구 결과가 검증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산림청이 이번 산불로 366만 톤 정도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밝혔죠. 그런데 호주 산불 지역 연구 결과, 약 3%의 탄소만이 산불 후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나머지 97%는 그대로 있습니다. 숲의 탄소 저장 구조가 그래요. 배출된 탄소의 대부분이 나뭇잎에서 나오는 것이니 우리나라는 1~2% 정도 될 거예요. 그런데 마치 다 재가 된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언론도 그리 보도하죠. 이게 산림청 긴급 벌채의 명목이 돼요."

▲4월19일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산불 피해 현장 검증 설명회에 참석한 홍석환 부산대학교 교수가 참가자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손가영)
▲산불 피해 현장 바닥에서 활엽수 싸리나무 맹아가 발견됐다. ⓒ프레시안(손가영)

황폐한 땅 뚫는 활엽수 맹아 "산, 벌채 말고 내버려두라"

이윽고 도착한 정상 부근에선 점곡면 동변리, 사촌리 일대를 둘러싼 산이 모두 시커멓게 탄 풍경이 펼쳐지며 참가자들이 짧은 탄식을 뱉었다.

그럼에도 재와 숯가루로 시커멓게 변한 땅 위에 초록색 순이 간헐적으로 보였다. 참가자들은 활엽수 싸리나무 맹아 서너 개가 5센티미터(㎝) 정도 자라있는 곳에 멈춰 섰다. 정정환 지리산사람들 활동가는 "산불 지역은 충분히 자연 복구가 된다"며 "이미 땅속에 뿌리 내린 활엽수도 있고, 바람에 씨앗이 옮겨 다녀 자연적으로 나무가 새로 잘 자란다. 지리산에도 그런 마을이 이미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회 말미, 홍 교수는 "수관화가 일어나지 않는 숲의 구조가 제일 중요한 핵심"이라며 "활엽수가 있으면 불이 바닥불로 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 불의 속도가 느려지고 이게 시간을 벌어준다"며 "그 과정에서 비도 올 수 있고, 시간을 벌 때 위험한 집에 물을 뿌리고 헬기도 가용하면서 불 확산에 대비하고 진화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산불시민모임은 시민들에게 산불 현장과 정부 기관 발표의 간극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산불 현장검증 행사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4월19일 산불 피해 현장 검증 설명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모습. ⓒ프레시안(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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