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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도 진상도 밝히지 않는 죽음, 누구를 위한 것인가[인권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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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도 진상도 밝히지 않는 죽음, 누구를 위한 것인가[인권의 바람]

[인권의 바람] 경찰은 ' 장제원 성폭력' 사건 수사결과 발표해야

2015년 부산디지털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임하던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당시 그의 비서로 재직하던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다. 피해자는 사건이 발생하자 해바라기센터를 찾아 피해를 진술하고 증거를 채집했다. 확실한 증거를 가졌음에도 10년간 피해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가해자 장제원의 위력이 실재하기 때문이었다.

업무상 위계관계의 잔상을 한 번에 떨치기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전 충남도지사 안희정은 성폭력 가해자로서 재판을 받는 중에 헛기침을 반복했는데, 이 행위로 피해자는 정서적 위축감을 느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업무관계였던 시절, 안희정의 기색이나 기척만으로도 그의 의중을 파악해야 했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업무상의 위계·위력'이 얼마나 지독하고 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업무상의 위계·위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전인격적으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다. 나도 그런 이유로 장제원 성폭력 사건 소식을 접하는 게 유독 괴로웠다. 피해를 입은 후 10년간 피해자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시기를 보냈을지 감히 상상되고, 과거에 당했던 위계·위력 관계의 성폭력들의 장면이 다시금 떠올라 뉴스 창을 켜는 것만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고(故)장제원 전 국회의원의 발인식이 4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위계폭력, 상대의 '심기'가 관계의 주인이 되는 것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뉴스를 자세히 찾아보는 것은 괴롭다. 피해자의 심정과 고통이 다른 피해에 대한 기사보다 더 생생하게 와닿기 때문이다. 위계란 나의 생계, 평판, 안위를 흔들 수 있는 상대의 '심기'가 관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위계에 의한 위력이 얼마나 흔하고 공기처럼 자연스러운지 체감하게 된다.

공공장소에서 내게 성적 불쾌감을 준 가해자에게 즉시 일갈한 적이 몇 번 있다. 피해 입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 사람이 나를 성추행했다'고 크게 외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만난 상사가 가해자일 때는 성적 괴롭힘이 확실한 정황임에도 이것이 피해가 확실한지, 혹시 내가 너무 예민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이 피해를 모른 척하고 넘기는 것이 더 성숙하고 현명한 사회생활은 아닌지, 혹여 내가 직장인에 걸맞지 않게 여성성을 발현하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닌지 '자기반성'까지 했다.

이렇게 자신을 흠집 내가며 수천 갈래의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자기혐오가 발생한다. 가해자를 꾸짖는 일보다 나 자신을 꾸짖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정신건강에 지장이 생기기 쉽다.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한 모든 사람이 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많은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성폭력에 대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낙인을 내면화하여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Dworkin et al. 2017). 장제원 성폭력의 피해자 역시 피해 후 10년 간의 세월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음을 자신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에게 말하기도 했다.

한편 성폭력 피해자가 정신병리적인 어려움을 겪지 않고 정서적으로 취약해지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입은 피해를 밝히는 것은 분명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제원은 자신의 SNS에 '10년이 지난 일을 갑작스럽게 밝히는 것은 모종의 음모와 연관돼 있다'는 식의 글을 올려 피해자를 음해했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10년 간의 세월을 딛고 피해를 밝히려고 한 것은 엄청난 용기의 결과다. 우리는 이 용기에 연대해 성폭력 가해자가 '죽음으로도' 처벌을 회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피해자에 대한 연대일 뿐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온당한 노력이기도 하다. 범죄자는 그 어떤 회피를 동원하더라도, 설령 그것이 죽음을 이용한 회피도 할 수 없도록 범죄의 진상을 사회에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피해자의 피해가 인정되고 회복으로 한 발 내딛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작동하게 하는 제도는 이러한 기본 감각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성폭력 사건 수사 결과 발표를 촉구하는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죽는다고 '끝' 아닙니다

경찰은 성폭력 혐의 사건 수사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가해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정이다. 피의자 사망으로 수사를 종결한다면, 이는 '성폭력 가해자'인 장제원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피해자에게 권리가 보장되고, 책임의식이 살아있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면, 가해자가 죽더라도 성폭력에 대한 수사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

2022년도에 한국형사정책학회에서 발행한 논문 <피의자 사망을 이유로 한 '공소권 없음' 수사종결 관행에 대한 고찰-피의자 사망 후 수사 지속의 필요성을 중심으로>에 의하면, 피의자 사망에 따른 무조건적인 수사종결 관행은 실체적 진실 발견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점, 내사와 수사의 효용성을 약화시킨다는 점,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영국은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라도 피해자의 요청이나 공익적 필요성이 인정되면 경찰이 수사를 계속할 수 있는 '피해자 재심사 요구제'라는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도 피해자의 권리 보장과 회복을 위해, 성범죄의 경우 피의자가 사망하더라도 피해자가 원한다면 수사를 지속하는 제도개선과 관행의 변화가 필요하다. 성범죄 피해자의 진정한 치유는 공적 제도의 작동에 따른 피해사실의 인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광장이 외친 평등과 정의,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받곤 하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공적인 피해사실의 인정은 자기의심을 거두고 회복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이다. '수사결과를 알려 달라'는 장제원 성폭력 피해자의 절박한 호소를 경찰은 엄중히 경청해야 한다.

윤석열 파면을 외친 지난 4개월간 광장의 요구 중 핵심은 '평등'이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 여성을 위해서는 물론 극단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 등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성폭력 피해자가 어떤 경우에라도 낙인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피해를 밝히고 가해자를 공권력에 신고할 수 있어야 평등한 사회다. 성차별에 대한 이해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윤석열을 경험했기에, 우리에게는 성평등이 더욱 절실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구제를 위한 정의가 피의자가 사망했다고 자동으로 사라지는 사회는 이제 청산하자. 그것이 평등, 존엄, 정의를 외친 광장의 요구다.

지금 바로 연대하자

지금 바로 피해자와 연대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 현재 국회전자청원 사이트에서 진행 중인 '성범죄 진상규명을 위한 법안 제정에 관한 청원'에 서명하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의 피고소인이 사망하더라도 수사가 계속될 수 있게 법적 절차와 제도 마련을 촉구하는 청원이다. 청원서에 서명하는 1분의 연대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고 우리 사회의 성평등이 한 단계 진보할 수 있다. 청원 주소를 남긴다. 지금은 피해자 곁에 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우리의 행동과 응원이 필요한 때다. (입법 청원 서명 링크 ☞:https://petitions.assembly.go.kr/proceed/onGoingAll/310CB7EB6BAE1850E064B49691C198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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