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유사 사태는 곧 일본의 유사 사태이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이후에도 일본 정권은 이 발언을 유언처럼 간주하면서 외교안보 정책의 초점을 여기에 맞춰왔다. 이는 대만의 미래를 중국과의 전략 경쟁의 '핫스폿'으로 간주해온 미국의 전략적 셈법과 맞물리면서 미일동맹 강화와 동조국들과의 안보협력 강화를 낳아왔다.
이 와중에 주목할 만한 보도가 나왔다. 4월 15일 자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3월말 일본에서 열린 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하나의 전장'(One Theater) 구상에 대한 공감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피트 헤그세스 장관에게 한반도-동중국해-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장으로 보고 "일본·미국·오스트레일리아와 필리핀, 한국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했고 헤그세스도 이를 환영했고, 헤그세스는 이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하나의 전장' 구상을 언급하며 관련국들의 공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본 방위상이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대만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핵심은 대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만 유사시를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해온 일본의 자민당 정권과 '대만 방어'를 본토 방어 수준의 국방 목표로 격상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이러한 진단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미일동맹의 '하나의 전장' 구상은 최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동과도 연관이 깊다. 일본이 '대만 유사 사태=일본 유사 사태'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데에는 주일미군의 개입을 상수로 보면서 일본도 연루를 피할 수 없다는 데에 기초한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해 대만 유사시 투입을 고려하고 있고, 호주도 '오커스'를 기반으로 대중 견제·봉쇄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도 최근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무력 분쟁이 발생하면 중국의 유일한 군사동맹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선택도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 핵과 미사일 고도화를 거듭해온 조선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또 조선이 분쟁에 휘말리면 상호방위 조항에 따라 러시아의 개입도 배제할 수 없다.
1차 세계대전과 유사하게 관련국들이 '동맹의 체인'에 엮여 한 지역에서의 전화(戰火)가 '동맹의 바람'을 타고 동아시아 전체로 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일동맹의 '하나의 전장' 구상이 이러한 상황 전개를 가정하고 '아시아판 나토'에 버금가는 동맹 네트워크 구축에 나서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는 매우 위험천만한 구상이다. 특정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이를 수습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여야지 확전을 전제로 대비책을 세우다보면 '자기충족적 예언'에 빠질 위험도 커진다. 또 대중 억제력 강화를 취지로 한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억제 추구는 군사적 긴장 고조와 군비경쟁의 격화를 낳으면서 우발적 충돌과 오판·오인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는 것도 숱하게 경험해왔다.
아울러 한미일이 사실상의 동맹을 추구한 움직임이 북러 동맹 재결성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것처럼, 미일동맹 주도의 동아시아 동맹 네트워크 강화는 북중 혈맹관계의 재구축의 빌미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는 한국의 차기 정부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임을 예고해준다.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으면서 주한미군이 있고 비핵 군사력에 있어서 세계 5위에 올라선 한국을 상대로 미국의 압박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방비 증액을 통한 한국의 자체 국방력 강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제고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유엔사 활성화와 확대, 한미일 군사협력 지속 등의 요구가 있을 것이다.
막가파식 일방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질을 볼 때,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심지를 굳게 다져야 한다. 외교가 사라진 자리에 'K-외교'를 추진할 수 있는 지혜, 한미동맹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인식, 폭망한 남북관계를 안정화해 안보 수요를 낮출 수 있는 선택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최근 신간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를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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