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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공사 현장의 '구제발굴'과 '기록보존'이라는 말 속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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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공사 현장의 '구제발굴'과 '기록보존'이라는 말 속의 위험성

[이춘구 칼럼] 문화재 당국의 역사 감각 '유감'

가야문화연대와 후백제시민연대의 역사문화탐방에 동행하면서 큰 의문점이 생겼다.

고속도로나 재개발사업 현장에서 귀중한 유적이 확인되고 유물이 출토되는 데도 이를 보존하는 데는 지극히 소홀하거나 인색하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국립군산대학교 곽장근 박물관장은 탐방단을 이끌면서 건설공사로 인한 사업시행자의 긴급발굴을 구제(救濟) 발굴이라고 설명한다. 공사과정에서 유물이 나오거나 유구가 확인될 때 긴급하게 매장문화재를 조사하는 발굴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비되는 개념이 학술발굴이다. 학술발굴은 연구자가 학술연구 목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서 정밀하게 실시하고 보존과 정비 대책을 추진하는 데 기초가 된다.

전북은 유감스럽게도 학술발굴보다 구제발굴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보존과 정비 대책 추진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필자가 둘러본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건설현장인 김제 석교리 말무덤(마한고분)군과 전주 원당동 추동유물산포지, 인봉리 후백제 궁성 추정지 등은 소위 구제발굴이 이뤄진 곳으로 모두 기록보존에 그치게 됐다.

기록보존이라 함은 발굴을 실시하고 발굴 결과만을 기록으로 보존하고 유구 등을 그냥 없애버리며 건설공사를 하는 것이다. 거대하고 귀중한 역사 현장을 한 바탕 꿈인 양 파헤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과연 이러한 처사가 옳은가?

이춘구 칼럼니스트(前 KBS 모스크바 특파원)ⓒ

먼저 가장 오래된 마한시대 고분이 있는 김제시 백산면 석교리 말무덤 발굴현장을 찾아갔다. 이곳은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건설이 진행되는 현장이다.

답사단을 안내한 곽장근 교수는 10여 기의 말무덤이 있었던 곳으로 전해져 구제발굴이 실시됐다고 설명한다. 마을 앞 제방은 방조제와 선착장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곽장근 교수는 석교리가 군산과 김제, 부안으로 이어지는 서해안권에 마한 문화를 일으킨 중심지 중의 하나일 것으로 분석한다.

답사단이 찾았을 때 현장은 이미 발굴을 마치고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성토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록보전 결정이 나 말무덤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노기환 박사와 함께 찾은 곳은 완주 구이와 경계를 이루는 추동 유물산포지이다. 이곳은 원당산성 바로 앞 자락이며 새만금-전주간 고속도로 건설현장이다.

석교리 현장처럼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이 2만9000㎡를 발굴 조사한 결과 백제시대 3기의 분구묘와 58기의 석곽묘, 1기의 옹관묘, 109기의 수혈 등 210기의 유구가 확인됐다.

석곽묘에서는 병, 단경호, 삼족기 등 도자기와 철도, 철촉 등의 철기류, 금제이식, 구슬 등의 장신구도 출토됐다.

조선시대 유적으로는 112기의 토광묘와 1기의 회곽묘, 8기의 옹기관묘, 그리고 17기의 수혈, 1기의 건물지 등 164기의 유구가 드러났다. 수혈은 곡식 등 저장고로서 역할을 한 것이다.

이곳은 백제 사비기 이래 역사문화 백화점인데도 기록보전 결정으로 땅속에 다시 묻히게 됐다.

다음은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는 전주 인봉리 후백제 궁성 터 추정지를 찾아갔다.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2023년 4월 기자촌재개발조합으로부터 유적발굴조사를 의뢰받은 뒤 2024년 9월까지 주요 유적을 발굴하고, 유물을 수습했다. 그 결과 건물지 세 군데와 궁성 내 도로, 북쪽 성벽 등을 확인했다. 1호 건물지는 길이가 19m로 대형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로는 북동-남서방향으로 40m 정도 길게 이어지며 폭은 4m 정도이다. 도로시설은 동쪽의 경우 ‘L’자형으로 굴착을 하고, 석재를 바깥으로 면을 맞춰 2단 내외로 쌓았다. 전주시는 이처럼 귀중한 유구가 확인됐는데도 공개도 안 하고 시민의 의견도 묻지 않고 기록보전으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건설공사 등으로 구제발굴이 실시되고 역사유적이 확인되지만 기록보전으로 결정이 나 심하게 얘기하면 발굴조사의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발굴의 취지는 유물과 유구의 확인과 그 현장의 정비 및 복원에 그 뜻이 있다.

우리가 함께 살펴본 세곳의 구제발굴은 각각 고속도로 건설과 재개발의 명분을 주는 데 그쳤다고 밖에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석교리 말무덤은 마한의 실체를, 추동 유물산포지는 백제시대의 도시 모습을, 그리고 인봉리 후백제 궁성 터 추정지는 고도지정의 핵심을 놓치는 구제발굴의 사례이다.

문화재 당국은 시민의 역사 감각과 전혀 동떨어진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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