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수업을 어렵게 진행하는 편은 아니다. 가끔 학생들이 졸면 아재 개그도 하고, 어르신 모인 자리에서 강의할 때면 음담패설도 섞어가면서 졸지 않도록 노력한다. 중년들은 음담패설을 아주(?) 좋아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중 연설할 때는 양념으로 넣으면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청중이나 학생들이 졸 때면 사용하는 명약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농담은 경계선이 없다. 어디까지가 음담패설이고, 어디부터가 육담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조금 심한 음담패설을 하면 “적당히 좀 하지.”하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지루하기만 한 강의를 지나치게 오래 하는 것 같으면 “적당히 끝냅시다.” 하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다.
예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끊어졌을 때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나온 기사 제목이 있다. ‘한국의 적당주의가 낳은 참사!’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적당히’, 혹은 ‘적당주의’라고 하면 ‘대충대충’이라는 용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사실 적당히 했다면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는 무너지지 않았다. 우선 사전을 보자
적당(適當)하다 :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다.
그러므로 ‘적당하다’는 ‘정확하게 합당하다’는 의미가 핵심이다. 비슷한 말로는 ‘합당하다’, ‘적절하다’, ‘적합하다’, ‘알맞다’, ‘마땅하다’ 등이다. 그러므로 예문으로는
이만하면 동네 도랑에 놓을 다릿돌로 적당해.
적당한 운동은 근육을 긴장시켜 보기 좋은 몸매를 만들어 준다.
이곳은 경관이 좋아 전원주택 용도로 적당하다.
와 같다.
문제는 현재 서울에 사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적당하다’의 의미를
대충 통할 수 있을 만큼만 요령이 있다
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사전에서는 ‘대충 요령있게’와 같은 의미로 쓴다고 하였지만 바람직한 표기는 아니다. 한자를 보아도 적(適 : 당연하다)과 당(當 : 마땅히 ~~하여야 한다)이 만난 것으로 여기에 ‘대충’이라는 뜻은 없다. 그러므로 원래는 ‘가장 정확하게 잘 맞는 것’을 ‘적당하다’고 했는데, 어쩌다가 언론에서 ‘적당주의’라고 표현하면서부터 우리말이 국적을 잃기 시작했다. ‘빨리빨리’ 혹은 ‘대충대충’이라고 썼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당시 언론에서 마구잡이식으로 표기하다 보니 언어가 국적을 잃게 되었다. 요즘 세상에서 ‘적당한 인재가 없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이럴 때 ‘대충하는 인재’ 혹은 ‘어영부영하는 인재’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아직도 그 본래의 의미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언중들이 ‘요령껏 하자’는 의미로 쓴다고 해서 언론마저 그래서는 안 된다.
여름이 가지 않을 것 같더니 제법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계절은 적당하게 알아서 돌아가고 있는데, 사람만이 지나치게 여야 따지면서 싸우는 것은 아닌지? 모두 백성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깊이 들어가 보면 당리당략에 놀아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말로 적당한 인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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