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민간보험사의 맞춤형 상품개발을 위하여 국민건강보험공단 질병통계 데이터에 대한 보험업계의 접근성을 높이는 절차를 개선 중이다. 올해 2월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에 건강보험 빅데이터의 민간보험사 개방 확대가 명시되어 있고, 3월 11일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언제 개인 동의를 받아가면서 이 정보를 활용하겠습니까? 데이터가 돈입니다' 라는 발언으로 이 정책에 힘을 실어주었다. 8월 8일 열린 2차 보험개혁회의가 연말까지 매월 개최된다고 하니, 이를 통해 정부가 보험산업 진흥에 앞장설 모양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그러나 8월 19일 출범한 '건강보험 빅데이터 민간개방저지 공동행동'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빅데이터 개방에 반대하고 있으며, 비동의 개인정보 활용·보험사의 가입자 선별과 배제·의료영리화 촉진 등의 우려로 전문가와 노동시민사회도 이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적 인프라를 통해 구축된 건강보험 빅데이터는 그 자체로 공적인 자료로서 사회공동체의 삶과 건강의 편익을 높이는데 활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 데이터는 시민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의료이용의 접근성 개선, 불리한 인구 집단의 건강 위험 보호,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등과 관련된 정책 개발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할 수 있고, 마땅히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런 역할을 방기하고, 민간기업의 이윤 축적을 위해 공공자료를 제공하는데 전력하는 국가의 행태를 어찌 지탄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간 민간보험사들이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에 개인의료정보를 요구한 목적은 새로운 보험상품이나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 등 건강정보를 상품화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5월 열린 '건강보험자료제공 가이드라인 토론회'에서도 건강보험 가명정보 사용을 신청한 보험업 관계자는 기존 보험사 정보로는 '유병자 상품개발에 어려움이 존재한다' 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보험업계가 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사업의 수익성 제고와 이윤 창출 및 축적을 위한 것이 명약관화하다.
게다가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에 대한 보건의료 전문가 및 노동시민사회의 반대를 우회하기 위하여 정부는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기관 내부 업무지침에 불과한 가이드라인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은 정부가 기업의 법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법령상 기준을 보다 용이하게 준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침서이다.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들은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2019, 2023),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2021), '의료기기 시장진출 통합 가이드라인'(2024), 'DTC 유전자검사 가이드라인'(2024),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가이드라인'(2024)처럼 명백히 보건의료산업 진흥을 장려하기 위한 것들에 집중되어 있다. 법률이나 시행령 개정 없이 법적 근거가 없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행정사무를 처리하면서 기업의 편의를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의 남발은 절차적 측면에서도, 해당 사업의 안전성과 효과성 측면에서도 매우 문제적이다.
건강보험 빅데이터의 민간보험사 개방을 건강의 상업적 결정요인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세계보건기구의 '모두를 위한 건강 경제학 위원회'는 2023년 5월 <모두를 위한 건강: 진짜 중요한 것을 제공하기 위한 경제 혁신> 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상업적 주체와 그 이해관계에 따른 건강불평등 경험을 성찰하며, 모두의 건강을 위한 새로운 정치경제는 국가와 국제 수준에서 건강의 상업적·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해 우선순위를 가지고 개입하고 규제할 것을 제안했다.
국내 민간보험사들은 2023년 말 현재 가입자 3997만명의 의료이용 및 기초적인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이를 이용하여 보험료 산정 및 지급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20년간 구축된 가족관계와 직장이력·세대규모 등 개인정보, 재산·소득·부채·부동산 등 재정상황, 4대 보험 관련 내역, 건강검진결과와 상세 진료내역 및 처방의 의료정보 등이 집적된 건강보험 데이터가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건강보험과 민간보험 이용내역이 결합함으로써, 민간보험사의 데이터의 규모는 오히려 건강보험보다 더 커진다.
결국 이런 상업적 목적의 데이터 활용이 만들어낼 결과는 건강에 유해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불건강한 사회정책에 대한 개입이 아니라, 개인의 잘못된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며 보다 개인적 해법에 초점을 맞춘 상품이나 서비스의 확대일 것이다.
우리가 보아온 바 건강보험 빅데이터뿐만 아니라, 여타의 빅데이터가 만들어내는 것은 극히 개인을 타겟팅하는 상업전략이다. 이미 정부가 추진하는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나 맞춤형 의료서비스 등에는 상업적 행위자들이 지향하는 그런 문화적 규범이 깔려 있다. 공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민간으로 분할되어 제공 책임을 맡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민영화의 과정이고, 이런 필수 서비스와 재화의 민영화는 가격 상승과 품질 저하, 불평등 확대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시민건강연구소 민영화 연구보고서 바로가기).
그러나 민간보험사들은 공적 인프라와 재원을 통해 구축된 건강보험 자료를 이용하여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기업의 영업기밀 혹은 지적 재산권이라는 명목으로 공적 견제를 피해갈 수 있다. 이렇게 사회적 통제도 받지 않고, 규모도 비대칭적인 민간보험사의 데이터 활용은 경제권력이 보험정책의 주도권을 가지게 만듦으로써 장차 공적 의료보험의 보장성을 약화시키고 보건의료 영리화를 가속화하여 의료서비스 제공과 의료이용 행태의 변화, 지불능력에 따른 차등 등의 경로로 건강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앞서의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는 모두를 위한 건강을 달성하기 위하여 정부의 경제방향이 가치, 재정, 혁신, 역량 차원에서 달라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경제성장과 GDP 극대화보다 인간과 지구의 번영을 가치있게 여기고, 건강에 대하여 양질의 충분한 재정을 투자하며, 사람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공익을 우선하는 혁신을 이루며, 재정·인프라·인력에서 잘 설계되고 적절한 자원을 갖춘 역량있는 정부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하는 것은 국가가 유해한 서비스와 상품을 법적으로 규제하여 시민들을 보호하는 대신, 산업화의 논리로 건강을 위협하는 정치적·정책적 제도와 규범을 확산하는데 일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건강보험 빅데이터 개방을 비롯하여, 일련의 보건의료산업화 정책들이 국가가 시민들의 삶과 건강에서의 위험들에 차별없이 대비하기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개발된 상품과 서비스가 시민의 안전과 편익을 효과적으로 보장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상업적 행위자들에 의한 바람직한 삶의 가치 및 기본권의 침해를 방어하고, 시민들이 직면하는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공성의 가치와 의료 공공성을 옹호하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량이 더욱 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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