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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천시의회 서과석 의원이 보내온 기고문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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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천시의회 서과석 의원이 보내온 기고문을 보며

파리올림픽 개막식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드러낸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지난 12일, 기자의 메일함에 포천시의회 서과석 의원의 기고문이 도착했다. 제목은 ‘파리올림픽을 보며’였다. 무심코 메일을 열어본 기자는 큰 충격을 떨칠 수 없었다.

서 의원은 기고문에서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식을 본 필자는 큰 충격을 떨칠 수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충격은 파리올림픽 개막식이 아니라 이를 논하고 있는 서 의원의 해괴한 논리가 가져왔다.

서 의원은 개막식 공연을 보고 “프랑스가 ‘쾌락주의’에 완전히 매몰되었다”고 주장하며 “개막식은 온통 동성애, 성전환자 옹호 그리고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조롱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사탄을 숭배하는 가수를 내세우고, 동성애자들의 애정행각을 전 세계에 그대로 노출했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자신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전하며 새 언약을 세운 순간을 상징하는 ‘최후의 만찬’을 성전환자들을 채워 패러디했다. 심지어 기괴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만찬상 위를 밟고 지나가는 모습을 패션쇼로 빙자해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기독교 모독에 더 나아가 서구의 전통적 사회 질서 체제가 프랑스에서는 완전히 무너졌음을 전 세계에 과시한 것과 다름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기괴한 개막식은 프랑스 국민들의 기저(基底)에 깔린 기층(基層) 정서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라며 급기야 프랑스의 문화를 폄하하며 “전통적인 세계관과 질서,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쾌락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가 되었음을 개탄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서 의원은 예술이 무엇인지부터 공부해야 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정한 ‘올림픽헌장’에는 개막식에 예술프로그램을 넣도록 명시하고 있다. 서 의원이 지적한 부분은 개막식의 예술프로그램이다. 예술이란 정치적 선언이나 사회적 구호가 아니다. 목적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술은 그래서 자유롭다.

예술은 그 주체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식인들이 진행하는 인문주의적 예술과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예술, 그리고 아마추어인 민중이 드러내는 예술이 그것이다. 지식인들의 예술은 자신의 철학적 지향을 내세우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전문가들의 예술은 권력과 금력을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흔히 말하는 어용(御用)에 빠져들기 쉽다. 가장 자유로운 모습은 민중들의 방식이다. 구체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게 탈춤이다. 가면을 쓰고 춤추며 연기하는 전통적인 한국의 공연 예술인 탈춤은 조선시대에 성행했다. 사회 모순이나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양반의 부조리 등)를 풍자적으로 비판하는 성격이 강하다.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다. 현대적인 개념의 예술은 바로 여기에 방점을 두고 있다.

예쁘고 세련된 것은 이제 예술이 아니라 기술의 영역이다. 전자제품의 디자인이나 건물의 양식 등은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러한 부분을 이제는 예술이라 칭하지 않는다. 테크놀리지의 개념이다. 현대예술은 더 이상 아름답고 세련된 것이나 실용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필기구나 생활용품에서 구현하면 된다. 예술은 기술과 달리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환기시키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기술이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사항에 집중한다면 예술은 사회적으로 권장되지는 않을지라도 허용해야 하는 사항에 집중한다.

탈춤 공연에서 품위와 전통존중을 찾으면 안 된다. 오히려 욕설과 막말과 조롱이 탈춤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그러한 것들이 허용되는 해방공간이다. 프랑스올림픽의 예술공연도 마찬가지다.

서 의원의 눈에 이러한 것들이 쾌락주의로 보인다면 먼저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는 색안경부터 정리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예술이 기술로 보이고 허용하라는 외침이 권장하는 것으로 들린다면 자신의 눈과 귀부터 체크해봐야 한다.

물론 칭찬하고 박수칠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고문을 작성해 뿌리는 용기는 매우 의미가 있다. 그런 용기 있는 행위를 타인이 했을 때에도 넓은 이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서과석 의원.ⓒ포천시의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 의원의 기고문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이해를 위해 서 의원이 보내온 기고문 전문을 아래에 붙인다.

<기고>파리올림픽을 보며

포천시의회 서과석 의원

제33회 파리올림픽이 많은 논란(?) 끝에 폐회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역대 최소 인원 참가에도 불구하고 총 32개의 메달을 획득, 종합순위 8위(금메달순)라는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쳤다. 특히, 양궁 대표팀은 전 종목을 석권했으며, 여자 단체 종목은 올림픽 10연패(連霸)라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을 달성했다. 국민 한 사람으로서 이들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다만, 우리 선수들의 선전 이전에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식을 본 필자는 큰 충격을 떨칠 수 없었다. 자유·평등·박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의 상징인 프랑스가 ‘쾌락주의’에 완전히 매몰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개막식은 온통 동성애, 성전환자 옹호 그리고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조롱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사탄을 숭배하는 가수를 내세우고, 동성애자들의 애정행각을 전 세계에 그대로 노출했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자신의 몸과 피를 제자들에게 전하며 새 언약을 세운 순간을 상징하는 ‘최후의 만찬’(이탈리아어: Il Cenacolo, 영어: The Last Supper)을 성전환자들을 채워 패러디했다. 심지어 기괴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 만찬상 위를 밟고 지나가는 모습을 패션쇼로 빙자해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기독교 모독에 더 나아가 서구의 전통적 사회 질서 체제가 프랑스에서는 완전히 무너졌음을 전 세계에 과시한 것과 다름없다.

분명, 이 같은 기괴한 개막식은 연출자의 개인적 사고에 기반한 일탈이 아닐 것이다. 올림픽은 전 세계인의 축제요, 개막식은 개최국의 문화를 선사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괴한 개막식은 프랑스 국민들의 기저(基底)에 깔린 기층(基層) 정서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쾌락주의에 물들기 전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사회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질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를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확립된 도덕과 윤리는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사회 번영의 원천으로 작용됐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쌓아온 이 같은 전통적 세계관이 이번 파리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완전히 파괴되기까진 반세기가 채 걸리지 않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행태가 자유와 다원주의(多元主義)로 포장되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세태는 비단 프랑스와 서구사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만약, 이러한 전통적인 세계관과 질서,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쾌락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가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즉, 기독교 세계관을 중심으로 한 개개인의 자발적인 윤리와 도덕의식 확립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주의를 기반으로 자리 잡은 서구사회가 쾌락주의적인, 공리주의(功利主義)적인 사회로 대체된다면 과연 사회가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까?

이 문제 중심에 동성애가 있다. 올림픽 개막식에 메인으로 등장시킬 만큼 프랑스는 동성애의 자유를 중시한다. 그러나, 과연 동성애의 자유를 부르짖는 것이 과연 사회의 압제를 해방하고 프랑스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특히, 프랑스는 동성애도 인정하고 동성애자를 보면 살인까지 불사하는 이슬람교도 인정하고 있다. 한 국가 내에 이들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자유와 다양성 보장은커녕 사회는 더욱 혼란해질 것이며, 압제와 혼란은 더 가중될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과거 나치 독일도 혼외정사와 성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한 바 있다. 당시에도 이를 국민의 자유로 포장했지만 실제는 기존의 전통 질서와 윤리를 무너뜨리고,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끔찍한 만행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려는 히틀러의 기만책에 불과했다.

결국, 자유와 압제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전통적 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는 더 큰 압제를 혼란을 불러온다는 것이 인류사의 역사적 증거인 것이다.

필자는 이런 프랑스를 보며, 우리 지역사회와 우리 정가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작금의 포천시의 상황을 보면, 전통적 정치 질서와 윤리, 도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쾌락주의’를 위해 전통적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프랑스처럼 우리 포천 지역 정가 역시 정치적 ‘쾌락주의’를 위해 전통적 정치 질서를 파괴하고 있진 않은지, 이로 인해 우리 지역사회가 피폐해지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진 않은지 스스로 묻고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전통적 정치 질서란 결국 개인의 영광과 이득을 위한 정치가 아닌 지역사회의 상생과 발전을 위해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것이고, 결국 이러한 전통적 정치 질서가 바로 잡혀있어야, 우리 지역공동체 역시 건강해질 것이라 필자는 확신한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인들은 전통적 질서 확립을 위해 과연 어떤 기치(旗幟)를 내걸고 정치를 해 나가야 할까. 대화와 타협을 기반으로 한 의회 정치 회복이 급선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파리올림픽은 여러모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사건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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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

경기북부취재본부 이도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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