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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도 견딜만한 자본주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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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도 견딜만한 자본주의는 없을까?

[프레시안 books] <불평등 이데올로기>

사적 소유를 장려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불평등은 기본 속성이다. 소득 불평등도 문제인데 자산 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21세기 자본>에서 'r>g' 공식으로 논증한 빈익빈부익부 원리다. 19세기 이후 자본소득률(r)은 경제성장률(g)보다 언제나 높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산 부자의 불로소득은 기껏해야 경제성장률 수준인 임금노동자 소득과 격차를 벌린다. 게다가 부와 계급은 대물림된다. 날때부터 '금수저', '흙수저'가 결정되며, 대가 이어질수록 계급간 거리는 더 벌어진다. '수저 계급'이 고착화된, 부인할 수 없는 세습 자본주의다.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불평등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불평등은 경제적이거나 기술공학적인 것이 아닌,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것이다.(피케티 <자본과 이데올로기>)

조돈문 가톨릭대 명예교수의 저서 <불평등 이데올로기>(한겨레출판)는 피케티가 주창한 자본주의 속성을 돋보기 삼아 한국 사회의 불평등 작동역학을 들여다본다. 국민 대부분이 저마다 막연하게나마 느끼는 불평등의 정도가 실제로는 어느 수준인지 가늠해보고, 조금이라도 덜 불평등해질 방법이 없는지를 모색한다.

▲ <불평등 이데올로기> 조돈문 ⓒ한겨레출판

불평등이란 소수의 지배자들이 소득과 자산 등 자원을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반면, 대다수 시민은 자신의 몫보다 적게 소유하는 현상이다.

해석의 편향과 과잉을 제어하려 비교 사회분석 방식을 적용했다. 시장경제 모델은 영미형 자유시장경제, 스칸디나비아형 사회민주주의, 대륙형 조정 시장경제, 지중해형 조정 시장경제로 구분된다. 이를 각각 대표하는 미국, 스웨덴, 독일, 스페인을 우리와 비교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 10년 주기로 여러 나라의 사회 불평등 지표를 조사하는 ISSP(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 자료 등을 활용했다.

이들 통계에 따르면, 모든 나라에서 상위 10%가 가져가는 국민소득 점유율이 하위 50%가 차지하는 점유율을 크게 넘어선다. 그나마 스웨덴의 격차가 가장 작고 가장 격차 큰 나라는 미국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매우 빠른 속도로 미국에 근접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한국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불평등한 국가군에 편입됐다.

이런 불평등, 견딜 만한가? 소수 고소득자는 다수의 저소득자를 상당히 견고하게 지배한다. 대체 어떻게?

불평등 체제에서 이득을 보는 세력은 사회에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주술을 건다. 제대로 먹히면 피해 세력도 불평등을 내면화하거나 순응하고, 모순에 저항하면 균열이 생긴다. 다음 세가지 명제가 이데올로기 투쟁이 벌어지는 주전장이다.

1. 불평등은 없다.

2. 불평등이 있다 해도 정당하다.

3.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없다하더라도 대안적 평등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

저자의 논증에 따르면 1번 명제는 명백히 거부됐다. 3번 명제는 대체로 수용됐다. 지배와 저항의 각축이 벌어지는 부분은 2번 명제다.

"한국은 강한 실력주의와 결합된 상승 이동 가능성과 수저 계급 사회의 불평등 대물림으로 인한 불공정성이 공존하며 각축하고 있어 상승 이동 기회 보장 명제는 수용되지도 거부되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지배 세력의 이데올로기 주술이 광범위하게 관철된 미국에 비해 한국은 아직 절반만 성공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공정성 담론에서 핵심적으로 다툼하는 실력주의 혹은 능력주의까지 파고든다.

권력과 재벌이 결탁해 사회계약을 위반해 벌어진 촛불항쟁은 공정 사회에 대한 염원의 발로였으나, 이어 벌어진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에선 합리성이 결여된 공정 담론이 위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에서 불평등과 불공정을 둘러싼 모순된 인식과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평등과 공정'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 '자유와 공정'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를 잇달아 겪으며 어떤 가치와 결합되느냐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는 공정성의 혼란상을 체감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능력과 노력을 성공의 주요 요인으로 인식하면서도 '출신 배경'이 더 성공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경향이다. 기회의 불공정이 사회구조적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불평등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가 발현되기도 하지만, 3번 명제에서 길을 잃은 상태가 한국이다.

출구가 없을까? 오랫동안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는 이 불평등 시리즈를 두권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객관적 자료에 바탕해 현실을 살핀 이 책에도 힌트가 담겨있지만, 평등 사회의 대안과 이행 전략을 다룰 두 번째 책에서 '덜 불평등한' 체제로 가는 문이 열리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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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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