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있으면 훈련을 하고 타국과 동맹을 맺고 있으면 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한미연합훈련엔 유독 특이한 점이 있다. 영토 크기 세계 109위에 해당되는 작은 나라에 5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구 밀집 지역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이 매년 수차례 실시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도 상대는 북한이다. 군사적인 적대관계이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군사력을 포함한 전쟁수행능력은 세계 36위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세계 5위, 미국은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북한이 있으니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시선을 거둬내고 객관적으로 따져보자.
세계 최대 군사동맹체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이다. 최근 스웨덴의 가입으로 회원국이 32개에 달한다. 이러한 나토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에 돌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의 위협이 커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5개월 가까이 실시될 나토의 훈련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나토에 따르면 훈련 참가 병력수는 약 9만 명이고,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포함한 함정 50여 척, 80여 대의 전투기·헬리콥터·무인기, 133대의 전차·장갑차, 533대의 보병 차량 등이다.
그럼 한미연합훈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한미 군 당국은 3월 4일 시작돼 14일까지 11일간 실시될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훈련 규모를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훈련 규모를 통해 유추해볼 필요가 있다.
2016년 3월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한 병력 수는 미국 증원군 1만 5000명과 주한미군 2만 5000명, 한국군 30만 명 등 총 34만 명이었다. 병력 수만 놓고 보면, 최근 나토가 실시하고 있는 '확고한 방어자(Steadfast Defender)' 훈련의 5배에 육박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및 코로나19 펜데믹 등의 이유로 문재인 정부 임기 때 축소되었던 한미연합훈련의 규모를 예전 수준으로 회복하기로 했다. 또 올해 '자유의 방패' 훈련의 야외기동훈련을 작년의 2배인 48회 실시키로 했다. 아울러 유엔 사령부의 전력공여국 가운데 12개국이 참여한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번 훈련 역시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한미연합훈련은 왜 압도적인 세계 최대 규모가 된 것일까? 우선 '풍선 효과'를 지적할 수 있다. 유럽에선 1975년부터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헬싱키 프로세스가 본격화되었는데, 그 핵심적인 내용이 군사 훈련의 대폭 축소였다. 그 불똥이 한반도로 튀었다.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할 수 없게 된 미국이 한국과 그 인근에서 1976년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훈련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매년 봄에 실시된 '팀 스피릿' 훈련으로 참가 병력수가 20-30만 명에 달했다. 이는 냉전 시대였던 1988년 나토가 실시한 최대 규모의 연합훈련보다 약 2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그것도 압도적인 규모의 야외기동훈련이었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매년 여름 실시된 '을지포커스 렌즈'였는데, 이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이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한미연합훈련에 새로운 목표가 추가되었다. 앞선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및 이를 연습하는 연합훈련에 유사시 무력 흡수통일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연합훈련은 방어와 반격 두 단계로 나누어 실시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100만 안팎의 병력과 산악 지형이 70%에 달하는 북한을 무력으로 점령해 통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병력과 무기·장비가 필요하다. 한미연합훈련의 규모가 커진 데에는 이러한 사유가 작용한 것이다.
또 있다. 미국의 필요가 바로 그것이다.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국만큼 최적의 훈련장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펜타곤(미국 국방부)이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와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놓은 답변이 있다. "우리는 군사 태세 유지를 위해 훈련과 연습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고 한반도보다 더 중요한 장소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1년 단위로 순환배치를 하는 미군에게 한반도만큼이나 실전에 가까운 군사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도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한미연합훈련의 목적이 한국 방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한미군 사령부는 이번 자유의 방패 훈련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이번 훈련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안정을 증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한국의 합동참모본부 보도자료에는 없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상화"라는 이름을 달고 한미연합훈련 및 한미일연합훈련을 대폭 확대·강화하고 있다. 미국도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최대 동맹체인 나토보다도 몇 배나 큰 규모의 훈련을 매년 여러 차례 실시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일까?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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