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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동훈의 '노빠꾸' 연설…2011년 박근혜는 '사죄'부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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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동훈의 '노빠꾸' 연설…2011년 박근혜는 '사죄'부터 했다

[박세열 칼럼] 박근혜와 한동훈의 '평행이론'은 없다

"국민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위기에 빠진 여당의 사령탑을 맡게 된 비상대책위원장은 연단에 올라 제일 먼저 고개부터 숙였다.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의 첫마디는 "벼랑 끝에 선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것이었다.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게 됐는지 참담한 심정"이라며 "집권 여당으로서 국민의 아픈 곳을 보지 못하고 삶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2011년 12월 19일,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된 박근혜의 첫 수락 연설이었다.

총선을 4개월 앞두고 2023년 12월 26일 집권여당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수락한 한동훈 위원장의 연설은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릴 때, 곤란하고 싫었던 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으냐, 장래희망이 뭐냐'라는 학기초마다 반복되던 질문이었다. 저는, 정말, 뭐가 되고 싶은게 없었다. 대신,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며 자신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먼저 밝혔다.

"중대범죄가 법에 따라 처벌받는 걸 막는 것이 지상 목표인 다수당이, 더욱 폭주하면서 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런 당을 숙주 삼아 수십년 간 386이 486,586,686되도록 썼던 영수증 또 내밀며 대대손손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집권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첫 일성이다. 2011년 박근혜와 2023년 한동훈, 두 비대위원장은 똑같이 '선민후사'를 말했다. 하지만 방식은 전혀 달랐다. 박근혜의 키워드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변화'였고, 한동훈의 키워드는 야당와 일전불사의 '대결'이었다. 2차대전에 히틀러를 처단하기 위해 출정식에 나선 처칠의 호전적 연설을 인용하고 "무기를 다시 듭시다", "싸울 겁니다"라고 당을 선동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연설에는 그간 윤석열 정부의 실정과 집권당의 무능력함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사과는커녕, 자부심마저 느껴진다. 한 위원장은 "우리는 지금 비록 소수당이지만 대선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하여 대통령을 보유한, 정책의 집행을 맡은 정부여당이다. 정부여당인 우리의 정책은 곧 실천이지만, 야당인 민주당의 정책은 실천이 보장되지 않는 약속일 뿐이다"라고 했다. 대통령을 거역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다.

반성과 쇄신이 들어갈 자리에 전쟁과 선동의 언어를 넣었다. 집권 여당의 실정에 대한 반성을, 부도덕한 야당의 폭압으로 바꿔치기했다. 박근혜는 "중산층 복원과 불평등 구조의 혁파, 공정한 시장과 경쟁 앞에 안전한 사회"를 선언하며 국정 기조의 변화를 예고했지만, 한동훈은 '야당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무기력 속에 안주하지 말자"고 당의 전열을 재정비한다.

박근혜는 대통령실과 여당을 수술대에 올렸고, 대통령이 낙점한 한동훈은 야당을 수술대에 올렸다. 아직 한동훈 비대위는 뭐가 잘못돼 비대위가 출범하는 상황에 이르렀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와 한동훈이 처한 정치 상황도 비슷하다. 박근혜 비대위 출범 계기가 된 것은 2011년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의 한나라당 참패였다. 수도권 위기론이 불거지고 총선 패배의 불안이 엄습했다. 보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물러났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10.26선거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이 불거지면서 한나라당 의원실의 비서가 체포됐다. '디도스 특검'이 부상했다. 비상대책위원장에 오른 박근혜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국정 기조와 당 체질의 변화를 선언했다. 그리고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누가 봐도 당에 불리했던 '디도스 특검'을 받는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특검은 당을 들쑤셨고, 범죄 혐의는 언론 지면을 통해 매일 브리핑됐다. 그런데도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152석 과반을 차지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어떤가. 2013년 10.11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수도권 위기론이 불거지고 총선 패배의 불안이 엄습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기현 당대표가 물러났다. 설상가상으로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이 불거지고, 영부인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한 '김건희 특검법' 처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런데 비상대책위원장은 '국정 기조 변화'와 '집권 여당 실정에 대한 사과' 없이, 잠재적 대선 경쟁자인 야당 대표를 비난하며 "무기력 속에 안주하지 말자"고 당을 다독인다. 변하지 말고 한길로 나가자고 선동한다. 여당 최대 리스크인 '김건희 특검법'은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이 용산을 들쑤시는 모습은 총선 기간에 브리핑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당은 지금 170석을 바라고 있다.(홍문표 의원)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성공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끈 박근혜는, 한국이 정치 리더들 중 가장 나르시시스트적 면모가 강한 정치인이었다. 그런 박근혜도 겸손과 변화를 얘기하며 비대위를 출범시켰다. 한동훈의 연설문에서 '비상'한 상황의 여당을 이끌 정치 지도자의 면모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진다. 자기애에 빠져 '정의'를 독점하려 하는 나르시시스트의 면모가 엿보이는데, 지금까지 수도권 민심이 '비상 상황'이 된 데 대한 성찰은 안보인다. 한동훈은 박근혜의 비대위 수락 연설문을 전혀 참고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한동훈은 과연 박근혜만큼의 '팬덤'이라도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의 심경이 이러할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연설문은 '국정 기조의 변화는 없다'는 선언문이다. '비상'이라는 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총선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운동권 때려잡는 정치는 성공할 것인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수락의 변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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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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