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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201조원 부채',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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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의 '201조원 부채',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탄소 중립 포럼] 개발독재시대 에너지 정책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한국의 탄소 중립 전환 움직임은 어느 수준에 와 있나. RE100 달성을 위해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이 당장 시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이 같은 물음에 지침이 되어 줄 '2023 경기탄소중립포럼'이 14일 경기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컨퍼런스홀에서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시민 사회와 연구 단체, 정부, 기업 현장에서 에너지 전환의 오늘을 확인하고 미래를 고민한 김혜애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 원장,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정규창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사업지원팀장이 RE100 달성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전환을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프레시안>에서는 이들의 발제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심화되는 기후위기에 국제사회는 정부와 시장 양측에서 단순한 권고를 넘어 탄소중립 이행 규제와 협약을 무역과 거래의 표준으로 만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RE100> (재생에너지 100% 사용) 이니셔티브는, 탄소감축 과제를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왔던 국내 기업들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와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미미한 국내 여건에서 국내 기업들이 이미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목표와 이행 요구를 충족하지 못해 수출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이어질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윤석열정부는 아랑곳없이 원전지상주의를 표방하며 이른바 "무탄소(CF)연합", "민관 소형모듈원전(SMR)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키며 마치 <RE100>의 대안이라도 되는 양 나홀로 "국제공조"를 외쳐왔다.

하지만 최근 미국 원자력계가 막대한 지원을 해오던 뉴스케일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사실상 유일한 SMR 개발사업인 유타지방전력협회와의 SMR 개발사업의 중도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뉴스케일에 투자를 해온 국내기업들은 투자 손실은 물론 어이없는 투자에 대한 국제적 망신까지 당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대형 원전은 막대한 비용 상승과 공급자들의 파산으로 사실상 종언을 고했고, 유일한 희망은 뉴스케일의 SMR 개발사업이었다는 측면에서 중대한 사건이다. 전력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일부 동유럽과 중동에서 흘러간 유행처럼 2~3기 원전건설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는 세계적 추세와는 거리가 먼 변방의 쟁점이다.

이처럼 윤석열 정부의 원전지상주의는 사실상 파산한 상태다. 문제는 다음 총선 이후 다시 다수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큰 야당과 차기 대권주자들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수많은 탄소중립 관련 선언을 했지만, 재임 기간 동안 국내 재생에너지는 약간의 태양광 증가 말고는 탄소중립이나 에너지 전환 있어 큰 진전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정작 전력산업을 대응할 때는 개발연대식 관행을 반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권 초부터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전기요금 원가 회수 요구는 정권 내내 묵살되었다.

고용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오히려 구형 계량기 검침업체를 한전 자회사로 만들고, 그 직원 5000여명을 정규직화한 사례는 형평성, 디지털혁명, 에너지 전환에도 역행한다. 특히 한전 사례는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력시장을 개방하면서 태양광과 스마트 계량기로 무장한 신규 전기사업자 700여개가 등장한 사례와 대비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이 지난 14일 경기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22주년 경제포럼에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프레시안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공룡 한전

미국에서는 지난 1960년대 이른바 애버쉬-존슨 효과(Averch-Johnson effect), 즉 지역 또는 국가 독점 네트워크 기업에게 독점권을 주고 정부 당국은 적정 요금만 규제하는 방식이 기술 선택 왜곡과 사회후생 왜곡을 유발한다는 실증논문이 발표되며 학계와 정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와 같은 규제를 택할 경우 해당 기업은 자본집약적 기술에 대한 과잉 투자를 하도록 유인을 갖게 되며, 독점기업과 규제당국 간에는 정보 비대칭에 따른 규제 포획이 발생하고 피규제자에 의한 정책 역선택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이 지난 1990년대 전력, 통신 산업을 포함해 대부분의 네트워크 산업에서 지역 및 국가 독점을 철폐하고 경쟁 체제로 전환한 이론적 배경이다. 대신 규제 당국의 역할은 기존의 단순한 요율규제에서 기술 중립, 공정경쟁, 소비자보호로 전환되었고, 최근에는 탄소중립 유인이라는 새로운 역할도 부여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 반세기 동안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내 정치권이 한전에 기대어 요율규제만을 하는 정책은 결국 원전, 석탄과 같은 특정 자본집약형 기술투자에 과잉 투자를 하는 왜곡을 유발해왔다. 이는 현재 우리의 에너지 전환에 결정적인 장애물 역할을 한다.

한전을 통한 유사 복지 정책도 사회 후생 측면에서 해악적이다. 사실 기본소득이나 여타 복지 정책과 달리 전기요금 할인은 구매력이 높은 소비자에게 집중되기에 소득 역진성이 크다. 국내 요금 보조의 대표 사례인 농사용 전기요금은 영세농 지원 차원에서 원가의 절반 이상을 할인해준다. 하지만 2020년 농사용 전기 할인 총액 1조942억 원 중 4480억 원이 불과 7800호의 대형 농가(호당 5744만 원)에 돌아갔고, 189만호의 나머지 농가에는 호당 34만 원의 푼돈이 돌아갔다. 결국 농사용 전기요금제는 할인액의 40%를 0.4%의 기업농에게 몰아준 셈이다. 심지어 수입업체들도 중국산 냉동식품을 들여와 싼 농사용 전기로 대량 건조해 국내에 유통시키는 등 왜곡된 전력수요 증가 문제는 덤이다.

에너지 공기업 때문에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이집트

우리처럼 전기, 가스, 석유를 에너지 공기업을 통해 할인 공급해오던 이집트는 지난 2013년 이들의 적자 합계가 정부 예산의 20%를 넘는 220억 달러(현재가치 약 35조 원)에 달하자 감당을 못해, 결국 세계은행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당시 세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의 에너지 요금 할인은 소득 상위 20%의 소비자들에게 소득 하위 20% 소비자들의 8배가 달하는 할인 혜택이 집중되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에너지요금 할인을 통한 유사 복지정책이 강한 소득역진성을 갖고 있으며, 그만큼 빈부격차를 더 확대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소득 역진성과 에너지 시장 왜곡 때문에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국가들은 일찌감치 전기요금 할인을 대부분 철폐하고 필요시 직접 보조 원칙을 고수해왔다. 영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폭등한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기보다는 최대한 가격 기능을 살리되, 각각 100조 원이 넘는 정부재정을 동원해 모든 가구와 취약계층에게 에너지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반면 프랑스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전력공사를 통해 원가 이하의 요금을 고수했지만, 덕분에 프랑스전력공사는 지난해에만 25조원의 영업적자를 입었고 현재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빠르고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탄소중립 시대에 매일같이 쏟아지는 원자력계의 아전인수식 '탈원전 탓’ 보도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시계를 30년 뒤로 돌리게 만든다. 정부 역시 실질적 복지 개선에는 '자린고비’ 행세를 하며 전기요금 할인으로 생색내는 관행을 거듭해왔지만, 이는 고도로 성장한 국내 시장경제와 더는 부합하지도 않고 전기요금의 수요관리 기능만 무력화시킨다. 이제는 정부가 국민의 기본소득을 일부라도 보장해 복지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희소한 전기는 제값을 주고 쓰도록 시장을 정상화하는 게 우리 경제와 사회 수준에 필요한 개선이다. 이러한 개선이 있어야 구호에 비해 내실이 부족한 탄소중립 정책을 실현할 시장 토대가 마련되고 고효율 에너지 기술들이 성장할 수 있다.

부실한 복지를 개선하기보다 전기요금으로 생색내며 면피해 온 재정당국과 국회의 오래된 관행과 정부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이 갖는 모순은 조만간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한전의 201조 원 부채는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으며 결국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이자비용과 함께 청구된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석탄화력이나 방사능 누설로 얼룩진 원전으로 싼 전기를 공급하던 시대는 끝났다.

국민들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되 전기는 제값을 주고 쓰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혁명이 일어나며 세계 각국은 변동성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전력시장으로 흡수하기 위해 위치와 시간에 따라 정교하게 변동하는 전기요금체계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 뉴질랜드 등은 이미 변전소마다 15분 단위로 송배전 비용에 따라 변동하는 이른바 모선별 요금제를 운영해왔고 곧 영국도 합류할 전망이다. 유럽연합 각국도 내년 기존 전국 단일 요금제에서 지역별 전기요금체제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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