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번 주에 다룰 내용은 '횡재세법'입니다. 이 법안은 지금도 국회에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안입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횡재세 이면의 사회 현상과 생각해볼 거리들을 다루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횡재(橫財)'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뜻밖에 재물을 얻는다"입니다. 영어에서도 windfall, '바람에 떨어진 과일'이라는 의미죠. 즉 본인의 노력이 아니라, 우연이 작동한 결과에 의해서 운 좋게 얻은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운'에 대해서는 어떻게 과세할까요? 대표적으로 로또 당첨금이 있습니다. 3억 원을 초과해서 당첨금을 받으면 33%(30%소득세+3%지방소득세), 그 이하면 22%를 과세합니다.
금액이 많더라도 근로소득이나 종합소득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형적인 소득이라 하기 어렵고, 경비를 들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경비라면, 1회 복권게임비 1000원정도일까요?) 일률적으로 저율과세를 하게 됩니다. 운이라도 벌어들인 소득이고, 소득에 대해서는 당연히 과세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벌어들인 소득중 '운'이 작용한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취급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서, 신상품 '허니버터칩' 과자를 발매했는데, 대박이 나서 평상시보다 10배 이상 과자를 팔았다면 이것은 운일까요? 내지는 기업의 마케팅의 노력일까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BTS가 무명시절을 보내다가 대중의 인기를 확보하게 됐는데, 이것은 운일까요 아니면 K-Pop과 BTS, 그리고 BTS소속사인 하이브의 노력에 의해 확보한 이익일까요?
어떤 특정 산업군에서는 한 번 설비투자를 하면 그 이후로는 시장에서 항구적으로 이익을 누리게 되기도 합니다. 파이프라인을 깔고, 투자 설비에서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생산물에서 수익을 얻는 중후장대형 비즈니스가 특히 그렇습니다. 내지는 특정한 산업의 라이센스(특허)를 요구하는 비즈니스가 그렇습니다. (물론 그러한 비즈니스의 특성만으로 항구적인 이익을 보장받는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기업 구성원들의 노력 없이 비즈니스 이익을 보장받는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정유사는 상당한 설비투자를 요구받지만, 설비투자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원물(feed)을 투입하면, 원유의 정제물인 나프타·휘발유·경유·등유·중유 등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산물들은 국제원자재가(원유가)의 연동을 받게 되지만, 수익은 비교적 꾸준하게 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1970년대 중화학공업 드라이브를 건 이유겠죠.
금융업도 비슷한 속성이 있습니다. 금융업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주요한 매개체이고, 대부분의 국가는 금융업을 라이센스(license, 인·허가)제도로 운영합니다. 금융업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습니다. 금융업이 가진 국가·사회적인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죠. 시장의 '유동성 공급자(liquidity provider)'로서 금융기관의 역할이 없다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금융업에 대해서는 제조업과는 다른 형태의 강한 규제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건전성 감독, 금융소비자 보호 등 가중적인 규제를 가하는 거죠. 금융업이 망가지면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도 1997년에 IMF사태로 고통을 겪었지요. 2008년 전세계 금융위기 때는 어떠했습니까? 금융업의 붕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다른 산업과 비할 바 못됩니다.
이러한 에너지업·라이센스업은 정부 입장에서는 적정하고 안정되게 유지함이 제일 바람직합니다. 영업이익이 과도하게 높아지거나 저하되는 것이 딱히 반가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기름값이 올라가거나, 고금리가 되면 서민들이 고통받습니다. 지금의 전세계의 상황이 이렇지요.
반면 글로벌 수요 저하로 유가가 하락하거나, 금리가 낮아지면 서민들의 삶은 좀 나아지긴 합니다. 물론 글로벌 석유기업이나 정유회사의 수익은 낮아질 것입니다. (2020년이 이러한 상황이었죠) 은행업은 반면 금리가 낮든, 높든 일정하게 수익을 내는데는 큰 지장은 없는 편인 것 같습니다.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고, 적정하게 정부 통제 하에 관리된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이후의 급격한 글로벌 수요-공급의 미스매칭, 미국의 금리인상 등으로 이들의 수익이 갑자기 극대화됐다는 것입니다. 석유·가스 에너지업계가 석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급격한 수익을 얻게 되고, 기준금리 상승보다 시차를 두며 시중은행의 예대마진이 벌어지면서 은행들은 고수익을 얻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해부터 여러 국회의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횡재세법안을 발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년간의 평균으로 벌어들인 소득보다 당해 년도의 소득이 급격하게 높아진 경우, 이에 대해 '초과이득세'를 거두자는 것입니다. 소득의 산정방식이나, 추가 소득세율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초과이득분을 거두자는 내용은 별반 차이는 없습니다. 대체로는 초과이득분에서 20%(이성만 의원), 많게는 50%까지(용혜인) 거두자는 안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명확하게 '당신들은 횡재한 것'이라는 거죠. 전쟁, 글로벌 물가 상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고, 그 이익이 특수한 업종(석유회사·금융회사)를 배불려주고 있으니, 그만큼 사회에 기여를 하라는 것이지요.
미국(추진 중),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OECD선진국들이 석유·가스회사의 이익에 대해서 초과이득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처리했거나, 처리를 시도했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는 "연대부담금(Solidaritätbeitrag)" 명칭의 연대세를 이미 2022년 12월 1일부터 부과하고 있습니다.
즉, 초과이익을 환수해야 하는 목적은 결국 국가재정을 조달하기 위한 명분도 있지만, 사회적 연대라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반면 반대하는 입장 또한 존재합니다. 물론 이 논리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국한된 논리이긴 합니다. 서유럽 국가들, 특히 영국의 경우는 직접 원유를 채굴하고, 원유의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는 나라인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이고, 정제하는 마진의 차익으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이에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반론이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의 BP(British Petroleum)만 하더라도 2022년에 276억불 정도 되는 순이익(net income)을 얻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정유4사의 영업이익은 14.2조원으로 BP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아울러, 특히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에는 글로벌 경기 위축의 영향으로 정유사들 또한 5조원 가량의 큰 손실을 보았는데, 정작 수익으로 전환되니 '초과이득'으로 보아 과세하는 것이 맞냐는 것이지요. 석유제품 가격은 또 다른 전후방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오히려 고물가를 더 악화시킬 우려가 있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었습니다.
이 법안을 둘러싸고, 민주당은 처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반대 입장의 기류가 명확해 보입니다. 물론, 국민의힘 의원중에서 개별적으로는 찬성 의견도 존재하지만 내부에서 큰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국민의힘이 반대하니 횡재세법안은 사실상 처리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들어서, 정유업계가 아니라 은행을 타깃팅한 법안은 더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금융소비자보호법·보조금관리법을 개정해 금융권 초과이익에 대해서 '상생기여 부담금'을 부과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당해 이자 순수익이 최근 5년 평균 이익의 120%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이익의 최대 40%의 부담금을 부과하자는 안입니다.
민주당 민병덕 의원안도 비슷합니다. 은행의 이자 순수익이 최근 5년간 평균 이자 순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경우에 이를 서민금융진흥원의 회계에 활용하자는 안을 발의했습니다. 위 횡재세법안들과 논리는 모두 동일합니다. "은행 종노릇" 등의 언사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입장은 조금 다른 게 아닐까 여겨지는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정부의 입장은 공고해 보입니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찬반의 양론이 명확해, 어떠한 결론이 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습니다. 에너지 가격의 상승과, 경기침체로 인해 대한민국 전체에 타격이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세수 여건이 급격하게 악화됐죠.
당초 국세수입 전망치가 400조원 수준이던 것이 340조원까지 조정됐습니다. 여러 정부 예산 사업 축소가 불가피해보입니다. 서민들에게 베풀어야 할 예산들이 줄줄이 삭감될 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중지를 모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유럽은 '사회적 연대' 의식으로 이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전염병(코로나19)이라는 불가항력으로 누군가 손해를 보면 누군가는 이익을 볼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직시하고,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기울어진 이익과 손해를 조정하는 '저울'이 우리 사회에도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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