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윤의 팬들이 이승윤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감독 권하정, 김아현)가 지난 9월 개봉해 현재까지 약 1만5000여 명의 관객을 만났다. 이 영화의 감독이자 뮤직비디오의 감독이기도 한 권하정은, 영화과를 졸업한 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이승윤의 노래를 듣고 "뭔가 한번 해보자"하는 열정을 느꼈던 것이 이 프로젝트의 시초였다고 술회한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를 아티스트와 함께 직접 만드는 팬이라니, 이른바 '성덕'의 행보인가 싶지만, 영화는 아티스트와 팬 사이의 관계성보다는 팬이자 창작자인 주인공의 자기실현 과정을 둘러싼 좌절, 반짝거림, 열정을 섬세하게 비추어낸다.
비록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향한 오마주로 출발했지만, 촬영감독을 섭외하고 세트를 짓고 소품 작업을 진행하는 본격적인 제작 과정에 돌입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몸집을 불려나간다. 커진 작업의 스케일만큼이나 결정하고 걱정해야 할 일도, 들어갈 돈도 많아진다. 가끔은 "내가 왜 이걸 한다고 그랬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촬영회의에 참석한 이승윤마저 "아니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한다고요)...?" 라며 놀란다. 세트장에 와서 그간 해온 노력의 결과물을 보고는 더욱 놀람과 감동을 감추지 못한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팬 실천은 팬 활동의 중요한 토대를 이룬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확산하면서 나타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는 팬들의 미디어 소비 및 참여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의 '참여 문화' 속에서 팬들의 문화적 생산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010년에 론칭한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비키(Viki.com)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드라마를 영어 자막을 통해 감상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OTT 서비스가 본격화하기 전 서구 팬들이 한국 드라마를 접할 수 있는 가장 큰 공식 창구였던 이 사이트에서, 드라마의 외국어 자막은 팬 번역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다. 자막 번역이 드라마 팬덤에 의한 일종의 참여 문화적 협력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강력한 결집력과 열정적인 서포트로 이름난 케이팝 팬덤의 대표적인 팬 실천으로는, 신곡 발표 시 대규모 집단 스트리밍으로 차트를 장악하거나, 팬사인회 당첨을 위해 CD를 몇백 장 씩 사거나, 멤버의 생일이나 기념일에 축하 광고를 거는 일 등이 어렵지 않게 떠오를 것이다. 미디어에 드러나는 이와 같은 사례만 보면, 팬 실천이라는 게 결국 기획사의 마케팅에 팬 소비력이 이용당하는 구조가 아닌가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케이팝 팬덤의 실천에는 위 사례보다 더 폭넓은 지평이 존재한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미국에 알리기 위해 자신이 사는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디제이와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교류를 추진한 미국 아미들(A.R.M.Y.), 한국어 노래 가사에 담긴 문화적 뉘앙스를 섬세하게 번역하고 아티스트의 라이브 방송을 실시간으로 번역해 해외 팬들의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팬 번역계정, 각국의 비영리단체를 매달 한 곳씩 선택해 지속적으로 자선 모금을 전달하는 팬 자선활동 등이 그것이다.
이런 팬 실천 중에는 산업적 논리를 창의성으로 넘어서고 나아가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사례도 있다. X(구 트위터)의 방탄소년단 차트계정인 @BTSCHARTDATA는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가 방탄소년단의 신곡을 주요 플레이리스트-Today’s Top Hits 같은-에 편성해주지 않는 등 방탄소년단이 글로벌 스트리밍 시장에서 산업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음악의 사회적 청취(social listening) 어플인 스테이션헤드(stationhead)에서 대규모 스트리밍 파티를 론칭했다. 스테이션헤드에서는 팬들이 직접 디제이가 되어 플레이리스트를 선곡하고, 그 플레이리스트에 접속한 인원수는 그대로 스포티파이로 연결되어 스트리밍 숫자에 반영되는 구조를 갖는다. 팬이 처음 시작한 이 사회적 청취 방식은 이후 방탄소년단 기획사인 하이브가 이어받아, 신곡이 발매되면 스테이션헤드에 아티스트를 디제이로 한 공식 스트리밍 파티를 열었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의 실천에 들어가는 팬의 시간, 열정, 그리고 재화는 당연하게도 보상받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경제적으로 보상받지 못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1925년 그의 저서 <증여론(Essai sur le Don)>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교환체계와 증여가 인간관계의 모든 부분에 관여하면서 사회구조를 작동시키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는 후에 '선물경제(Gift Economy)'라는 용어로 확장되어 표현되는데, 등가교환이 아닌 주고받기, 그리고 답례의 의미로서의 선물은 오늘날 시장경제의 지배적 원칙과는 다른 가치 위에서 작동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팬 실천에 들어가는 시간, 노동과 재화는 아티스트가 준 위안과 기쁨에 대한 답례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또한 팬 실천에 따른 노동은 팬의 정동을 자원으로 이용하며, 나아가 새로운 정동을 창출해내는 '정동 노동'으로도 볼 수 있다. 아티스트를 향한 고마움과 사랑이 촉발한 정동을 자원삼아 실행된 팬의 정동 노동은 아티스트와 팬 사이, 그리고 팬과 팬 사이를 가로지르며 위로와 소속감, 연대의 정동을 생산해낸다.
선물 경제의 틀 안에서 팬의 정동을 자원 삼아 이루어지는 팬 실천은, 그러나 꽤나 자주 "쓸데없는 짓거리"로 폄하된다. 돈도 안 되는 일에 외려 돈을 쓰고 있다는 지극히 시장자본주의적인 반감일 것이다. 더 나쁜 것은 이러한 팬 실천과 팬 노동을 본격적으로 수익화하려는 산업의 시도이다. 팬의 정동을 '관리'해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창의적이긴 하나 실제로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이다. 팬덤을 사업으로 연결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들이 품고 있는 야심이다. 그러나 이것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사례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우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측 불가능한 팬 정동은 애초부터 관리가 가능한 대상이 아니기에 이와 관련한 체계나 청사진을 만드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팬덤으로부터 비즈니스에 필요한 영감을 얻을 수는 있겠으나, 강력한 팬덤과 그에 따른 정동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의 감독 권하정은 "처음에는 이승윤 씨 때문에 시작했는지 몰라도, 어느 순간 이승윤씨는 안중에도 없고 그냥 내가 좋아서 하고 있더라"라고 술회한다. 대상을 향한 애정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 열정, 회의감, 자기실현의 감각. 팬 실천을 둘러싼 이런 복잡한 정동의 교차는, 데카르트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미지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