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동의 안하겠지만, '이재명 구속판'을 크게 벌인 건 사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었다. 그는 현직 검사도 아니고 수사 책임자도 아니었지만, '도어스테핑'과 국회 발언 등을 통해 이재명 대표를 거의 중범죄자 수준으로 묘사해 왔다.
이 대표의 단식 때 한 장관은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주는 선례가 남게 되면 앞으로 잡범을 포함해 누구나 다 소환 통보를 받으면 단식을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후에는 "이재명 의원은 잡범이 아니다"며 "중대 범죄 혐의가 많은 중대범죄 혐의자"라고 규정했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가 징역 36년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구속영장 청구서를 언론사들은 대체 어떻게 입수했는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렇게 판을 키웠으니, 당연히 이재명 대표가 구속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검찰은 범죄 혐의자 구속을 '골인'에 비유하며 수사를 해 왔으면서, 막상 구속 영장이 기각되니 "범죄수사를 위한 중간과정일 뿐"이며 "그 내용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한동훈 장관)"라고 했다. 징역 36년,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를 받는 자의 구속 영장이 기각된 것은,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애초에 본 적이 거의 없다.
2년 수사했는데 아직까지도 '증거 인멸'을 우려하고 있을 정도면 검찰 수사에 구멍이 뚫렸거나 수사를 태만하게 한 걸 자백하는 꼴이다. 설사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고 치자. 언론 지면을 통해 수사 과정의 상세한 내용을 2년간 전국민에 생중계한 것은 사실상 검찰이다.
결과적으로 국회 체포동의안의 처리 과정과 구속영장 심사의 정치적 의미를 키워온 것은 검찰이고 한 장관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국민의힘은 영장 기각을 '야당 권력'의 책임으로, '판사'의 책임으로 돌린다. 부실 수사를 탓해야 정상 아닌가? 이재명의 부활이니, 민주당의 미래니 하는 한가한 얘기가 아니다. 검찰 입장에선 한 장관이나 이원석 검찰총장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파장이 클 수도 있다. 윤석열 정권의 총선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이제 '쌍특검'이 기다리고 있다
첫째, 검찰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특검이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 가진 '유능함'의 이미지가 무너졌다. 과거 한동훈 장관은 '50억 클럽 특검법'에 대해 "수사 대상인 이재명 대표가 입맛대로 수사할 검사를 고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이 입맛대로 수사 검사를 고르지도 않은 이재명 사건 구속영장이 기각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이재명 대표 범죄 혐의도 입증 못하는데 대장동 50억 클럽 범죄 혐의는 입증할 수 있을까?
한 장관은 지난 2월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가 공정하냐고 여론조사를 하면 평균 50% 이상 '불공평하다'는 답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죄는 증거와 팩트로 정하는 것이지 여론조사를 통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 죄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하지 않지만, 검찰 수사는 여론의 힘을 업어야 잘 된다는 건 한 장관도 알 것이다. 그 신뢰에 금이 갔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양 극단 지지자들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재명의 혐의에 반신반의했던 중도층은 무리한 수사 내지는, 최소한 부실수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민주당 주도로 '50억 클럽'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이른바 '쌍특검'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타 있는 상태다. 오는 12월 국회에서 표결이 이뤄진다.
쌍특검의 한 축인 50억 클럽 특검(대장동 특검)에는 김만배의 누나가 윤석열 대통령 부친의 집을 사준 의혹 규명도 포함돼 있다. 물론 검찰이 그 내막을 밝혀주리란 기대는 접은지 오래다. 쌍특검의 또다른 한 축인 김건희 영부인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수사는 지금도 지지부진하다. 검찰의 태도를 보면 마치 '어차피 특검할 건데'라는 듯한 모습마저 읽힌다. 이쯤에서 한동훈 장관의 속마음이 등장한 과거 채널A 기자와의 '녹취록'을 꺼내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사회가 모든 게 다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어. 그런 사회는 없다고.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국민들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돼.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이야. 그리고 그게 뭐 여러 가지 야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걸렸을 때, ‘아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성내는 식으로 나오면 안 되거든. 그렇게 되면 이게 정글의 법칙으로 가요."
공정한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한 척(김건희 수사)'도 못해놓고 '불공정 수사(이재명 영장 기각)'만 부각된 최악의 상황이다. 이제 김건희 영부인 수사는 '공정한 척'에 부합하는지, 한 장관에게 그의 발언을 돌려 줄 때가 됐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검사 70명 동원, 300번 이상 압수수색에도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자를 구속 못시키는 검찰에 대통령 일가와 관련된 중대한 의혹 수사를 맡기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쌍특검' 처리의 명분은 강화된다.
집권 여당 정국 운영의 두 축, 이념과 사정이 무너지고 있다
한가지 더, '윤석열 아바타'인 한동훈의 실패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국정운영에 타격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중원 전략'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이 '중원 공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집권 여당이 가진 '쌍전략'의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행태를 참고하면, 집권 여당의 총선 전략은 크게 이념 전략(홍범도 흉상 이전)과 한동훈 전략(검찰 사정정국)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 전략,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으로 상징될 수 있는데, 재미를 별로 못 보고 있다. 9월 29일 KBS가 발표한 한국리서치 의뢰 여론조사를 보면 정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 밖으로 옮기려는 데 대해 63.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6.1%만이 "동의한다"고 했다. 같은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긍정평가는 34.6%인데, 홍범도 흉상 이전 동의는 26.1%, 부정평가는 58.7%였는데 홍범도 흉상 이전 부동의는 63.7%였다.
거칠게 보면 윤 대통령 지지층조차 일부가 홍범도 흉상 이전에 반대한다고 볼 수 있다. 이건 주목할 만한 수치이고, 이념 전략이 어떤 '위험 수위'를 넘어선 데 대한 '경고음'과도 같은 것이다. '마이너스 정치'의 전형적인 사례다.
두번째 전략은 대대적 사정 정국 조성이었다. 이 전략의 정점엔 이재명 민주당 대표 구속이 있었다. 추석 밥상에 '이재명 구속'을 올리고, '무신 정권'의 영웅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띄우려는 시도는 첫 단추부터 떨어졌다. 한 장관의 체면이 구겨졌다. "구속영장 기각이 무죄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는 변명은 형사법의 기본 원칙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법무부장관이 뭉개버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플랜B가 없다. 유일한 플랜B는 중도 실용으로 가는 것이다. 야당과 협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야당으로부터 두들겨 맞으며 동정표를 얻는 길이 유일하게 집권 세력에 허락된 '프리미엄'인데, 이 정부는 그럴 생각 자체가 없다. 야당에겐 여당 복이 있다. 물론 이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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