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차분히 짚어봐야 할 문제들은 있다. 5월 21일에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참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조선인 피폭자들은 강제징용-피폭-외면으로 이어진 비극적인 역사를 온몸으로 떠안았던 사람들이다. 하여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들의 고통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정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어색함과 불편함도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의 핵폭탄 투하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지만,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한 당사자는 미국이었다. 이로 인해 조선인들을 포함해 약 70만 명이 피폭되었고, 이 가운데 약 20만 명은 1946년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역대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2016년에 히로시마를 찾았던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도, 이번에 히로시마를 방문한 조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원폭 투하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었던 사람들의 고통은 일제의 식민 지배 및 태평양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총리는 이번에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유감을 표했을 뿐, 일본을 대표하는 지도자로서의 사과 표명은 또다시 마다했다.
가장 큰 문제는 핵무기에 대한 언행불일치와 이분법적인 사고에 있다. 이번 G7 회의에선 '핵무기 없는 세계'가 주요 의제였고 이를 반영하듯 '핵군축에 관한 G7 정상 히로시마 비전'이라는 성명도 채택했다. 또 G7 가운데 미국·영국·프랑스는 핵보유국이고 다른 회원국들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 옵저버로 초청받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공동성명에선 핵보유국의 핵군축 의지를 뒷받침할 만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고 핵비확산만 부각시키는 데에 머물고 말았다. '나와 내 친구들이 갖고 있는 핵무기는 좋은 것이고 나와 친하지 않은 나라들이 갖고 있는 핵무기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내로남불'식 태도로는 핵비확산도, 핵군축도, 더 나아가 '핵무기 없는 세계'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은 역사가 충분히 입증해온 바이다.
'좋은 핵'과 '나쁜 핵'을 구분 짓는 사고가 가장 유행하는 곳이 바로 한반도이다. 북한은 1950년 이래 미국의 핵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왔고 이것이 북한의 핵무장의 중요한 배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적은 친북·종북을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한미동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이 어떤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핵무기를 포함한 한미의 압도적인 대응으로 "정권의 종말"에 직면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겠다며 한미일의 미사일 방어체제(MD)도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핵시대의 역사는 종말을 운운하면서 근력을 과시하는 것보다 소통과 군비통제가 핵전쟁을 막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사실상 MD 구축을 포기하기로 한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이 "국제 평화와 안정의 초석"이었다는 점도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2000년까지만 하더라도 공히 합의했던 바이다.
2년 후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MD를 위해 ABM 조약을 탈퇴한 이후 세계적인 핵군비경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지적이 북핵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님은 물론이다. 북핵은 나쁜 것이니 없애야 하고, 나와 친구들의 핵은 좋은 것이니 강화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북핵이라는 독버섯을 키워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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