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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파이' 잘했다. 정작 중요한 건…

[이관후 칼럼] 尹대통령 방미 '편가르기' 평가를 넘어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하고 돌아왔다. 국내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측면이 많다. 보수측에서는 무조건 다 잘했다는 것이고, 진보쪽에서는 다 잘못했다는 것인데, 꼭 그렇게 평가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보수 정부가 들어섰는데 보수적인 외교정책을 펴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진보적 언론과 지식인들에게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대단히 수치스럽고 우스운 모습으로 비친다. 우쭐대기 좋아하는 머리 나쁜 사람이 '우쭈쭈~' 해주는 속이 검은 친구의 형식적인 환대에 감격한 나머지 이것저것 다 퍼주고 왔다는 식의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일본 방문 때의 외교는 실제로 그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한국 정부는 모든 부분에서 굴욕적일 정도로 저자세로 임했는데, 일본은 나머지 반의 물을 채우기는커녕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무시' 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서 얻은 것은 아마도 떠날 때 호텔 직원들이 나와서 박수를 쳐 줬다는 것, 그리고 김건희 씨가 안도 다다오와 점심을 먹은 것 정도인 것 같다. 확실히 일본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인 듯하다. 다만, 이것이 '한국'에도 좋은지는 불명확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감에는 '일본에게 저렇게 잘하는 윤 대통령을 한국 국민들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감정이 한데 섞여 있어서, 반한 감정은 오히려 강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 방문에서도 전반적으로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 미국 측은 겉으로 환대를 해주면서도 실리적인 부분에서 아무 것도 챙기지 못하는 한국 정부가 어리석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은 기왕에 우리를 계속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 국민들이 윤 대통령을 우습게 보는 것 같지도 않고, 한국을 더 미워하게 되지도 않았다. 과거사 문제가 있는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것은 '보수'라도 용납되지 않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보수정부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친미외교는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윤석열 정부에 대해 '생각보다 쉽다'는 느낌을 받았겠지만, 그만큼 전통적이고 일방적인 친미국가로의 회귀라는 인상도 강렬하게 받았을 것이다. 쉬워보이는만큼 호의도 얻은 셈이다. 요구하는 것이 핵공유 하나였는데 그조차 얻지 못했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서 한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 등은 아예 요구하지 않았으며, 가장 곤혹스러운 도청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미국을 방어하고 나섰다. 이 정도면 재조지은을 입은 나라에 한국 보수가 할 수 있는 충성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이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것은 여러모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스꽝스러운 광대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외교란 원래 그런 것이다. 아베 총리는 당선자 신분인 트럼프를 만나러 뉴욕의 트럼프타워로 달려갔고, 트럼프가 원할 때마다 기꺼이 골프 친구가 되어 5번이나 라운딩을 했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팝송을 불렀다면 어땠을까? 한미 정상 간에 격의 없는 우호를 다지고, 미국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적잖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외교의 내용도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기는 할 것이다.

다만, 그 평가가 어느 편이든 100:0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침 출근길에 지나치는 현수막들은 이런 것이다. 한편에는 '한미정상회담 역대급 외교성과', '핵 협의체 창설, 59억달러 투자 유치', 다른 한편에는 '윤석열 정권, 이완용의 부활인가', '독도가 일본땅, 이게 국익입니까?'. 어느 편에도 고개를 끄덕인 국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기념관 환영'이나 '친일매국 파쇼정권 윤석열 타도'라는 현수막과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그냥 편가르기다. 이런 평가가 과연 국민들이나 국가에 도움이 될까? 혹은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외교라는 것은 원래 이중게임(two-level game)이다. 합리적으로 국익을 생각한다면, 진보와 보수가 모두 쓸모가 있다. 보수는 국내의 진보를 탓하며 새로운 요구사항의 불가피성을 언급하고, 진보는 보수를 탓하며 전통적 우호관계를 지속할 수도 있다. 여야나 진보 보수 모두 결국은 노선의 차이일 뿐 어느 편이 국익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한다면 (물론 상대를 폭력적으로 말살하려는 세력을 그렇게 이해할 수는 없다), 좀 더 건설적인 논쟁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조금 긴 안목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 지난 26일(현지시각)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대외정책의 일관성과 한국의 변덕

바이든 정부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패권국가로서의 국가적 이익이라는 실질적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외정책의 구체적 목표 중 하나는 첨단 기술과 제조업 공급망에서의 중국 배제, 그리고 미국 시장 진입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에 대한 공격적 배제 정책은 바이든 정부 이전에 트럼프 정부에서도 추진되었던 목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배제·봉쇄 정책은 트럼프 시기의 정책을 뒤집거나 우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효율적으로 이를 달성하기 위해 보완·강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이 대외적 명분이나 정당성 없이 즉흥적·감정적으로 추진된 측면이 있다면, 바이든 정부는 중국 배제 정책이라는 몸통만 있었던 대외 전략에, 한편으로는 '가치'적 명분을 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괄적 동맹의 구축이라는 실천적 전술을 덧붙여 이를 완성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보더라도 미국의 대외정책은 정부의 교체와 관계없이 상당 기간 일관성을 유지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외교정책이 급작스럽게 방향을 바꾸기 어렵다는 현실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인과 관료, 외교관, 전문가들 사이에 미국은 그러한 급작스런 변화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통의 인식과 합의가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외교 정책은 한 정권이나 정치인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라는 주체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이 바뀌어야 할 때도 충분한 검토는 물론 지속성과 안정성을 고려하여 채택되고 실행에 옮겨져야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한국의 외교정책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심각한 부침을 겪고 있다. 단순히 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에 대한 입장의 변화 뿐 아니라, 러시아와 유럽에 대한 외교, 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에 대한 외교에서도 한국이 기존에 가져왔던 프로토콜을 한순간에 훼손한다든지, 갑자기 기존의 정책을 철회한다든지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한국이 예전과 같은 동아시아의 약소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권에 따라서 외교정책이 180도 바뀌는 일이 계속 일어나면, 한국의 국제적 신뢰도 자체가 문제가 생긴다. 당장의 특정 정권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존 정부와 외교 정책의 노선이 다르더라도 방향 선회의 속도를 조절하고, 변화하기 전에 국민적 동의를 구하며, 잘된 정책은 지속·강화해야 한다는 정치적 합의와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대중국 봉쇄와 한국

냉전 시대와 달리 국제 분업과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미국이 대중국 봉쇄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우방국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과거 냉전 시기에는 안보를 보장받으면서 한미일 국제 분업체계에 편입되면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이제 동아시아를 넘어서 글로벌 공급망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경제적 연관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그런데 반도체와 전기차 등 미국이 공급망을 자국 내에 구축하려는 산업들이 모두 한국과 중국의 국제 분업 체계에서 핵심적인 산업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외전략에서 한국은 매우 핵심적인 협력 대상 국가가 되고, 이는 곧 한국의 대외(대미·대일 등) 협상력이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한국이 미국의 압력을 받게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적 지렛대의 축도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지점이 몇 개 있다.

먼저, 만약 한국이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미국에 이전하는 것 외에,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낮추는 대신 한국에 공급망을 두고 한미간의 분업을 강화하는 것 역시 하나의 협상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한국의 대중국 경제분업, 공급망의 제한이 실제로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미국 역시 중국 봉쇄를 추진하고 있지만, 패권유지에 필요하고 군사적 전용이 가능한 첨단 기술 일부를 제외한 많은 산업분야에서 관세 부과를 유예하는 등 선별적 접근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에도 미중간 국제 분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충분한 검토를 하고, 우리도 여러 산업에서 동일한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고 미국 측에 주장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세 번째는, 만약 한국이 미국에 공급망 이전을 순순히 시행할 경우 -아마도 정치적 압력, 무역 규제 수단, RE100 등 환경규제의 수단 등이 다각적으로 동원될 것인데- 우리 미래 산업의 공백을 현 정부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미국이 자국 내에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핵심 산업들은 모두 한국의 핵심 산업들이다. 이들 산업이 미국에 모두 넘어가게 되면, 한국으로서는 경제의 미래와 지속성, 산업의 기반을 모두 잃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원천기술과 첨단기술에서는 아직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많은 격차를 보인다. 반면 미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뛰어나지만 제조업 역량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국 제조업 생태계의 미국 유출은 장기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어떤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지가 대미 외교의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북정책의 극단적 전환과 이른바 '국내 문제'

대미, 대일 정책에서의 차이점 못지않게, 윤석열 정부의 차별성은 대북정책에 있다. 아니, 대북정책에서의 상반된 태도야말로 외교정책의 모든 방향을 반대로 돌리게 한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저렇게 자신 있게 강경 일변도의 한반도 정책과 외교정책을 밀고 나가는 데에는 얼마간의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국내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전례 없던 중요한 계기들을 이루기도 했지만, 하노이 이후 북미간 대화가 진척되지 않으면서 임기 말에는 대외 정책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노이에서 북미간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책임이 당사자가 아닌 한국 측에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이 양측의 중재에 많은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북미간 하노이 회담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는 국민적 평가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과가 앞으로의 한반도 정책에 미칠 장기적 영향이다. 문재인 정부가 과감한 남북정책을 펼 수 있었던 계기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9년간 북한에 대해 강경책을 썼지만 얻은 것이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려되는 것은 그 반대 방향, 곧 보수 뿐 아니라 중도나 진보적인 국민들 사이에서도 남북 화해협력 정책에 대해 앞으로 회의적인 입장을 갖게 될 가능성이다.

그래서 다음 정부가 들어섰을 때, 과연 대북정책에서 다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대북 강경책 못지않게 대북 유화책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 때의 사례를 보면 현 정부의 대북 강경책도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예상되는 국민들의 반응은 오히려 냉소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 이후 20년 넘게 대북정책에서 항상 고려의 대상이 된 이슈, 곧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서 국내적 지지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물론 대북정책에서는 대중적 인기만을 의식해서는 안 되며, 장기적 측면에서 가치를 통해 설득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국민들의 '하노이 학습효과'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냉정한 현실인식과 대안의 마련에 먼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참석자들에게 손 흔들어 인사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손뼉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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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16대, 17대 국회에서 보좌진으로 일하고, 영국 런던대학교(UCL)에서 '정치적 대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와 경남연구원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메시지비서관을 지냈다. 정치의 이론과 현실에 모두 관심이 있다.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해 <경향신문>, <한겨레>, <피렌체의 식탁>에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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