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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만 잡고 있는 대통령, '검찰 공화국'의 '피로감'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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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만 잡고 있는 대통령, '검찰 공화국'의 '피로감'이 몰려온다

[박세열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왜 '깡패 때려 잡기'에만 몰입하고 있을까?

윤석열 정부가 잘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이 있다.

잘 하는 것은 '범죄와의 전쟁'이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말도 한 바 있다. 이건 '전쟁'이다. '나쁜놈'을 때려잡는 '정의파 검사'의 서사는 흠 잡을 데가 없다. 명분과 당위성에서 그 자체로 완벽한 스토리고, 관전자에겐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그의 충실한 측근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발언에는 공통점이 많다. 특히 '깡패'라는 말을 쓰는 걸 좋아한다. '깡패 잡지 말란 거냐'는 윽박지름에 감히 대꾸할 사람은 없다. 이건 10계명에 준하는 격언이자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문장이다. 이런 류의 문장을 자주 사용하는 배경엔 상대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모두가 동의할 만한 악한 적을 설정하고, 비난을 쏟아 붓고 때려 잡는다. 여기에 토를 달면 "깡패 잡지 말란 거냐"는 말이 돌아온다. 이 지점에서 대화는 종료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는 특히 깡패 수사에는 진심인 것 같다. 이걸 위해 행정부는 빠르게 검찰 조직처럼 재배열된다. 정부가 때려잡겠다는 건 크게 세 부류다. 첫째, 마약 조직, 둘째, 노동조합(건폭 포함), 셋째, 간첩이다. '깡패'는 이 모든 '나쁜 짓을 하는 무리'의 상징어다. 그리고 묘하게 이 세 종류의 사건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마약수사는 깡패 수사로 이어지고, 깡패 수사는 건폭(노조) 수사로 번지고, 노조 수사는 간첩 수사로 흘러간다. 사건의 교집합을 만들어 물고 물리는 수사를 벌이는 걸 보면, 대대적인 사정 정국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들이 용산과 법무부에 포진해 있고, 경찰청은 경찰국 신설을 통해 행정안전부의 통제,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통제를 받도록 설계됐다.

"도대체 깡패, 마약, 무고, 위증 수사를 검찰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한동훈 법무부장관),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윤석열 대통령)

마약 조직은 사회 정화 사업의 일환이 된다. 윤 대통령은 청소년에까지 마약이 스며든 현실을 개탄하며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마약 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라고 지시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 범죄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부족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처럼 아이들에게 학교 갈 때 '너 마약 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고 경고도 했다. 이 마약수사에 어느 정도 진심인지,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마약 부검' 제안까지 했다. 논란이 있지만 이태원 참사 때 경찰은 질서 유지보다 마약 범죄 적발에 더 열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핼러윈 당일 마약 범죄 예방 활동을 위해 형사를 배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같은 시간,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에서 압사로 쓰러져갔다.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하게 단속하라"(윤석열 대통령)

'노조 때리기'는 이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다.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진압하고 지지율 상승을 맛 본 대통령은 나아가 '건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깡패 잡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냐'는 완전무결한 명분은 이번에도 작용했다. 잠재적 범죄를 위한 것인지, 노조의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겠다고 나섰고, 일선 경찰과 검찰은 '건폭 검거' 실적 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언론은 그들이 던져 주는 '실적'을 받아적고 있다. 이 작전의 목표가 어디 쯤인지 알 수 없지만, 대강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김문수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를 방문했습니다. 감동받았습니다. 노조가 없습니다."

감동적으로 노조가 없어질 때까지 '건폭 척결 작전'을 수행하는 게 최종 목적일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 행정부의 장관급 인사가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노사정의 화합 대신 '노조가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인식을 내비치는 부분에선 어떤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나라에 간첩이 이렇게나 많나"(윤석열 대통령)

노조 수사와 연결된 게 최근 간첩 잡기다. '노조에서 활동하는 간첩'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윤석열 정부의 비판 문구를 적어 들고 광장에 나가 '체제 전복'을 꾀하는 중이다. 북한 지령에 따라 F-35 스텔스기 도입 반대 운동을 벌였는 '청주 간첩단 사건'을 보고받은 윤 대통령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사권을 부활시킨 국정원을 컨트롤타워로 경찰, 방첩사령부 등 군경이 총동원돼 전국을 뒤지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국방부는 방첩사령부(옛 기무사) 관련 시행령에 방첩사에 정보 수집 및 작성, 배포 등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으로 '중앙 행정기관의 장'을 명시하려 하고 있다. 쉽게 말해 국토부장관, 행안부장관, 문화부장관 등 일선 장관들이 간첩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건 행정부 자체가 거대한 수사 조직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아니 검찰청 산하에 행정부를 통째로 집어 넣었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대통령의 '간첩 척결' 의지에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당내 '종북 세력 척결 특별위원회' 설치를 검토했다가 슬그머니 말을 흐리는 중이다. 아마도 민심이 '간첩 때려 잡는 게 우선'은 아니란 판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눈치를 볼 줄 아는 건 그나마 여당 정도다. 용산은 행정부의 모든 수사권을 총동원한 것도 모자란 것인지, 급기야 통일부에 자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전'까지 주문하는 지경에 이른다. '심리전'은 적을 상대로 쓰는 말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적'으로 간주한 건 아니겠지만, 이 묘한 발언으로 통일부가 진땀을 빼는 중이다. 대남 정보를 취급하는 통전부에 대한 맞대응을 통일 정책을 수립하는 통일부에 주문한 것도 해프닝에 가까운데,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엉뚱한 발언을 부인하지 못해 심리전을 '북한 인권 대국민 홍보'라고 해석하며 곁눈질 중이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완전무결한 말을 자주 쓰는 이유는 사실 그 외에 다른 일을 잘 하기 어려울 때 변명이 쉽기 때문이다. '한동훈식 화법'이 최근 화제인데, 이 화법은 '도덕적 우위'를 통해 이의 제기를 차단하는데 매우 편리하다. 예를 들면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그럼 깡패 수사 하지 말란 말인가."

"남는 쌀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럼 간첩 수사 하지 말란 말인가."

물가가 치솟고, 무역수지가 곤두박질 치고, 출생율이 하락하고, 굴욕 외교 논란이 일더라도, '깡패 수사'나 '마약 수사'를 안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그의 충실한 '거버먼트 어토니'들의 메시지가 '범죄와의 전쟁'에 집중되는 건 너무나 또렸하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윤석열 정부는 외교,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선 그다지 점수를 잘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럴수록 대통령은 더욱 '당위성'과 '정의구현'에 몰입하는 것 같다. 범죄와의 전쟁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얼마나 잘 잡느냐, 얼마나 많이 잡느냐, 얼마나 더 처벌을 강하게 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스타일은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정치는 주로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으로 이뤄지고 있다. 강제징용 해법이 그렇고, 양곡관리법의 거부권 행사가 그렇다. 강제징용 해법을 너머 채워야 할 물잔은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스스로 손 발을 묶어버렸다. 양곡관리법 대안은 여당의 '밥 한공기 다 먹기' 운동 아이디어로 밑천이 드러났다. 

'정의 구현'에 몰입하고 있는 대통령은 야당을 만나지 않는다. 야당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여의도식 해석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렇다고 169석 야당의 여소야대 현실을 타조가 머리 박듯 외면할 수 없는만큼 뭔가 해법을 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법을 만드는 게 정치다. 농사를 지을 때도 씨를 뿌리고, 날씨 예보를 보고, 둑을 만들고, 거름을 줘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칼을 뽑아들고 잡초만 계속 베고 있다. 이 잡초 베기가 언제 끝날 지도 모른다. 범죄와의 전쟁이 끝날 거였으면 노태우 정부 때 끝났을 터, 지금 대통령은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가장 쉬운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것도 일종의 '나르시시즘'이 아닐까. 정의를 독점하고 깡패를 때려잡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것.

대통령실이 직접 나선 '사정 정국'은 피로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행정부 자체가 거대한 검찰청인 '검찰공화국'에서 벌이는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는 모양새다. 더 이상 지지율은 '깡패 잡는 대통령'에 호응하지 않고 흘러내린다. 소위 '약발'이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 전쟁은 언제 끝나는 것인지 알 수도 없다. 요컨대 사람들에게 희망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남은 것은 너저분한 범죄자의 나뒹구는 공소장들이다.

재보선에서 패배했는데, 대통령은 웃으며 '검찰총장'처럼 도열을 받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민생 사정 정국, 이게 윤석열식 정치의 처음과 끝이라면 유권자들의 실망은 계속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77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졸업생의 경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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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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