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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저버린 검찰, 배신당한 언론, '배신의 계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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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 저버린 검찰, 배신당한 언론, '배신의 계절'인가

[정희준의 어퍼컷]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협조하다 당한 언론

검찰이나 경찰 등 범죄수사를 행하는 사람이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 공표하면 그건 범죄다. 이는 '무죄추정 원칙'을 지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형법 126조는 이를 '피의사실 공표죄'로 규정하여 엄히 금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검사들이다. 희한하게도 법의 수호자라는 이들이 법을 무력화하며 스스럼없이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때로 브리핑을 통해 버젓이, 때로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은밀하게, 법조출입기자들에게 피의자의 혐의사실을 유포한다. 그러니까 검사들의 범법행위에 파트너가 있다는 얘기다. 바로 기자들은 공범이 되는 것이다.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협조하다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당한 언론

일부 언론에 따르면 대장동 일당의 주역인 김만배가 2019년과 2020년 주요 일간지 기자들과 거액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간부급 기자들과 9000만 원에서 무려 6억 원에 달하는 돈거래를 했는데 차용증조차 쓰지 않고 돈을 준 경우도 있다. 그 뿐 아니다. 어떤 기자에게는 명품을 선물하는가 하면 복수의 언론사 기자들에게 골프접대를 하며 한 사람당 100만원씩을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사실이 어떻게 알려졌을까? 흔히 보는 "검찰이 무엇 무엇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식의 기사다. 즉 검찰발 기사이자 전형적인 피의사실 유포다.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검찰이 일부 언론사 기자들의 돈거래를 타 언론사 기자들에게 흘렸다는 점이다. 이번엔 기자가 당한 것이다. 피의사실 유포에 적극 협조하던 기자들이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당한 것이다. 검찰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우선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사에게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의 문제를 흘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물론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했던 조선일보만큼은 이제 확고부동한 '자기편'으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둘째, 대장동 수사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기자들 간 돈 거래'를 검찰이 도대체 왜 지금 깠냐는 점이다. 특히 10일 이재명 대표가 FC성남 광고비 관련 소환조사에 응하기로 결정된 시점에서 말이다. 이 대표를 향한 수사는 오히려 산만해져버렸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검찰이 기자 길들이기에 나선 것인가? 또는 대장동 수사에 진전이 없자 수사팀이 다급해진 것인가? 아니면 이 대표의 돈 거래 흔적이 나오지 않자 기자들 돈 거래라도 까발리려는 것인가?

의리를 저버린 검찰, 배신당한 언론

피의자와 기자들 간 돈거래라는 자극적 기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문제점이 있다. 바로 언론의 '출입처 관행'이다. 김만배와 돈거래를 한 기자들은 과거 함께 법조출입을 하며 친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검사와는 피의사실 등의 정보 거래를 하면서 기자들끼리는 돈 거래도 하고 향응도 주고받은 것이다. 이는 아주 고약하고 못된 언론의 관행으로 이어진다.

한 공영방송 피디는 기자의 출입처가 정해지고 그 내부사정에 익숙해지면 알면서도 기사를 안 쓰는 경우가 많아진다면서 "두 번 봐주고 한 번 때려요"라고 말한다. 한 번은 왜 때리냐는 질문에 "자기들 존재감은 보여줘야 하니까"라고 답한다. 이런 식으로 기자가 취재 대상과 한 통속이 되다보니 결국 외국에서는 보기 힘든 '피디저널리즘'이 자리잡게 된다. 출입처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어울리는 기자들이 뻔히 보이는 문제조차 기사를 쓰지 않으니 피디들이 나서서 <추적60>, <피디수첩>을 통해 사회 비리를 고발하게 된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룸을 만들려던 시도가 기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무산됐던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그렇지만 훌륭한 기자도 출입처 드나들며 이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출입처 관행은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제도라는 것이 중론이다.

다른 예를 찾아보자. 2011년 한국 스포츠 최악의 사건으로 꼽히는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있었다. 60명 가까운 선수들이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영구제명 당하고 감독 포함 무려 세 명을 자살에 이르게 해 프로축구의 존립마저 뒤흔들었던 사건이다.

당시 수사가 1차에 이어 2차까지 진행됐는데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필자는 기자들로부터 백통 넘나드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특이한 점은 그 중 축구 담당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 단 한 명 있었는데 야구 담당 기자였다. 축구 문제인데 왜 축구 기자들은 기사를 안 쓰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걔네들이요, '이러다 축구가 야구한테 완전히 먹히는 거 아니야?' 요즘 이거 걱정해요."

출입처에서 취재편의는 물론 향응, 용돈, 해외 전지훈련 동행 등의 혜택을 받으며 취재 대상과 한통속이 되는 수준을 넘어 기자가 침묵의 카르텔에 동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이 경우는 이번에 폭로된 기자들보다는 나은 편이라 해야겠다. 적어도 출입처로부터 배신은 당하지 않았으니까.

새해에 찾아온 '배신의 계절'

검사의 권력은 없는 죄도 만들어 뒤집어 씌워 감옥 보낼 때보다 있는 죄를 뭉개고 봐주는 데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많은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김건희 여사 특검'이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기자의 힘은 '정론직필'의 자세로 비리를 캐고 세상에 알리는 것에도 있지만 출입처 등 친한 사람들 문제점을 봐주고 기사화 하지 않을 때 더 위대해진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사실상 거래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언론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검사와 거래하고 동시에 다른 기자들과도 거래하는 요지경. 그리고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적극 화답하여 검찰이 원하는 여론 조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에 기자들 스스로 당하는 진풍경. 검찰과 언론은 지금 '배신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

▲검찰의 2023년 시무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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