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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총선을 통해 양당 구도의 한국 정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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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총선을 통해 양당 구도의 한국 정치를 돌아본다

[장석준 칼럼] 미세한 정책 차이에 대한 대중의 결정권 행사 가능케 한 다당제 정치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브라질 대통령선거 결선에 가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룰라 승리 소식이 전해지고 몇 시간 뒤인 11월 1일에 북유럽의 덴마크에서도 총선이 있었다. 정권이 교체되어야 그나마 관심을 받았을 텐데, 지금껏 총리였던 메테 프레데릭슨이 속한 정당 '사회민주주의자들'(이하 사회민주당)이 오히려 의석을 늘리며 권좌를 지켰다. 그래서 더욱 한국 언론의 외신 기사에서는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해외영토인 페로 제도나 그린란드의 지역정당들을 제외하더라도 14개에 이르는 주요 정당들이 각축을 벌여 무려 12개 정당이 원내에 진출한 덴마크 총선은 그저 진기한 풍경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좋을 사안은 아니다. 한국 정치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덴마크 정치야말로 어쩌면 우리에게 없거나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선명히 보여주는 참조 대상일지 모른다. 그럼 최근 덴마크 정치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가?

극단적이기까지 한 덴마크의 다당 구도

이번 총선은 조기 선거였다. 본래는 내년에 차기 총선이 잡혀 있었는데, 최근 프레데릭슨 총리를 향한 정치 공세가 거세지면서 선거를 앞당기게 되었다. 공격거리는 팬데믹 중에 프레데릭슨 총리가 단행한 밍크 대량 살처분 조치였다. 2020년 11월, 모피용으로 밍크를 키우는 농장들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례들이 발생하자 덴마크 정부는 밍크 살처분 명령을 내렸다. 한국에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유행을 통해 이미 겪은 공장형 축산업의 비극이었다.

벌써 2년 전 일이었지만, 이때의 정부 결정이 과연 옳았는지 따지는 보고서가 올해 10월에 발표되면서 이는 새삼 정치 쟁점이 됐다. 프레데릭슨 총리는 2019년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팬데믹을 맞았지만, 초기에 과감한 정부 주도 방역 대책을 펼쳐 이웃 스웨덴 등에 비해 상당히 성공적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때부터 우파 정당들은 프레데릭슨 총리와 사회민주당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시도한다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밍크 살처분을 비판하는 보고서 내용은 이런 야당들의 공세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럼에도 반드시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할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사회자유당의 도박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사회자유당은 본래 사회민주당 정부의 적군이라기보다는 우군이었다.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입장을 취해온 이 당은 정부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프레데릭슨의 총리 선출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회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두 급진좌파정당 '녹색좌파'(이전 당명은 사회주의민중당), '적녹연합'과 함께 이 당이 던진 찬성표 덕분에 프레데릭슨은 2019년 총선 뒤에 사회민주당 단독정부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사회자유당의 마음이 바뀌었다. 2020년에 이 당의 새 대표가 된 소피 카르스텐 닐센은 사회민주당 단독정부 대신 사회자유당이 참여하는 연립정부를 바랐다. 그래서 밍크 보고서를 계기로 조기 총선을 요구했고, 프레데릭슨 총리는 이를 받아들였다. 선거운동 와중에 닐센 대표는 사회민주당 정부를 공격하던 입장에서 돌변해 사회민주당 주도 연립정부에 참여하겠다고 공약했다. 유권자들은 이런 모습을 곱게 보지 않았고, 사회자유당은 심판을 받았다. 3년 전 선거에서 받았던 8.63%의 득표율이 3.79%로 곤두박질쳐 16석이던 의석이 7석이 되고만 것이다.

반면에 사회민주당의 득표율은 25.90%에서 27.54%로 늘었다. 미미한 차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총선 전까지만 해도 사회민주당 정부가 받았던 거센 공격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였다. 불과 몇 달 전 스웨덴 총선에서는 사회민주당이 30.3%를 얻어 제1당이 되고도 극우파 민주당의 약진 탓에 정권을 내주었지만, 덴마크 사회민주당은 운이 훨씬 좋았다. 극우파의 성장은 스웨덴만 못했고, 전통적인 우파 진영은 혼란과 분열의 자중지란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사회민주당의 성적이 돋보였다.

지난 총선에서 23.39%를 얻어 사회민주당을 바짝 뒤쫓았던 주류 보수정당 자유당(공식 명칭은 당혹스럽게도 '좌파당'이다)은 이번에 13.31%를 얻어 의석이 반 토막 났다. 이 당의 지도자로 총리까지 역임한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이 탈당해 신당 온건당을 창당한 탓이다. 사회민주당과 함께 중도 연립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라스무센은 분당을 결행했고, 온건당은 선거운동 중에 중도파 연립정부 결성 방침을 분명히 했다. 온건당은 9.27%를 득표해 단숨에 원내 제3당이 됐다.

한편 좌파 진영에서도 정당 수가 예전에 비해 늘어났다. 우선 지난 총선까지만 해도 '사회주의민중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녹색좌파는 득표율을 7.71%에서 8.29%로 조금이나마 늘렸다. 사회민주당 정부를 왼쪽에서 압박해 복지정책의 골격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 그간 활동이 일정한 인정을 받은 셈이었다.

반면 생태사회주의를 천명해온 적녹연합은 6.94%에서 5.16%로 득표율이 줄었다. 적녹연합 역시 사회민주당 단독정부 구성을 양해하면서 그 정책을 견인한다는 전술을 구사했지만, 녹색좌파에게는 약이 된 이 방침이 적녹연합에게는 독이 됐다. 녹색좌파보다 더 왼쪽에 자리하며 수도 코펜하겐의 급진적 대중의 지지를 받아온 적녹연합의 경우에는 이 전술이 당 정체성 약화에 대한 지지층의 실망과 이탈을 낳았다. 특히 프레데릭슨 정부가 극우파 성장을 예방하겠다며 선제적으로 이민 규제를 강화하자 사회민주당 정부에 대한 적녹연합의 '비판적 지지'가 당 핵심 지지자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실망층이 향한 곳은 신생 정당 '독립녹색'당이다. 몇 년 전에 이미 바람을 일으켰고 이번 선거에서도 3.33%를 얻으며 원내에 진출한 녹색당 성향의 '대안'당에서 아나키즘에 가까운 이들이 떨어져 나와 만든 것이 독립녹색당이다. 사회민주당의 이민 규제 강화에 격렬히 반대하는 이들은 적녹연합 대신 독립녹색당에 표를 던졌다. 그러나 독립녹색당의 득표율은 0.90%에 그쳐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적녹연합의 의석을 줄이기에는 충분히 큰 유권자층이었지만, 독립녹색당을 새로 원내정당으로 만들 만큼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이번 덴마크 총선의 대략적인 소묘다. 우파의 몇몇 정당은 아예 소개도 하지 않았는데 이것만으로 벌써 어지럽게 느껴진다. 우리 상식에 벗어나는 너무나 많은 수의 정당들이 아나키즘에서 극우 포퓰리즘까지 참으로 다양한 정책 선택지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선택이 그대로 의회 의석 분포로 반영된다. 대선거구에서 비례대표 방식으로 의원을 선출하는 데다 각 당의 의석 점유율이 득표율에 더욱 가까워지도록 추가로 배정하는 의석까지 있는 선거제도이기에, 어쩌면 극단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런 다당 정치가 펼쳐진다.

다당 구도의 연합정치냐, 양당 구도의 연합정당이냐

여기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덴마크에서는 유권자들이 정치노선이나 정책을 놓고 상당히 실질적인 수준에서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가령 자유당과 온건당의 분당을 보자. 이로써 주류 우파는 사회민주당과 대결해야 한다는 입장(자유당)과 사회민주당과 함께 중도파 공동정부를 결성해야 한다는 입장(온건당)으로 선명히 나뉘었다. 기존 자유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한 우파 성향 유권자들은 투표를 통해 두 입장에 대한 견해를 제시했고, 그 결과 온건당이 약진하는 새로운 세력 구도가 대두했다.

좌파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회민주당에서 녹색좌파, 적녹연합, 대안당, 독립녹색당에 이르는 여러 선택지들이 있었고, 저마다 정치적 색깔과 정책적 차이를 뚜렷이 내세웠다. 사회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들은 이번에도 사회민주당에 표를 몰아주었지만, 프레데릭슨 정부의 복지정책이나 기후변화 대책이 미흡하다 여긴 이들은 녹색좌파나 적녹연합을 대안으로 선택했다. 또한 이 두 급진좌파정당마저도 사회민주당의 우경화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한다고 여긴 이들은 신생 독립녹색당으로 과감히 이동했다.

사회민주당과 그 왼쪽에 포진한 정당들의 정책 차이는 양당 구도가 지배하는 국가라면 한 정당 안에 공존하는 여러 경향들과 분파들로 나타날 만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영국 노동당은 덴마크 사회민주당에서 적녹연합에 이르는 이념 스펙트럼을 포괄한다. 아니, 사회자유당까지 포함한다고 봐야 하며, 실은 사회자유당에 가까운 흐름이 '제3의 길' 등을 내세우며 노동당의 주류를 이룬다. 더 나아가 미국 민주당은 덴마크라면 자유당이나 온건당에 해당한다고 할 세력부터 심지어는 녹색좌파, 적녹연합에 가까운 이들까지 아우른다. 영국이나 미국이라면 한 당 안에서 조율될, 어쩌면 '미세'하다 할 수 있는 정책 차이조차 덴마크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직접 개입하는 사안이 되는 셈이다.

영미형 양당 정치를 교과서로 받드는 이들이라면, 이를 그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쯤으로 여길 것이다. 양당 구도를 뒷받침하는 거대 연합정당 안에서 분파 간 경쟁을 통해 정책을 조율하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며 안정적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한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늘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선거 때만 되면 더불어민주당을 더 거대하고 광범위한 '빅 텐트 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회운동 일각의 목소리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러나 정당 내 정치와 정당 간 정치는 그 역학이 전혀 다르다. 당 내 정치에서는 정당 엘리트나 다수파의 입장에 따라 노선이나 정책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대중은 양대 정당에 의해 이렇게 걸러진 두 개 정도의 선택지 중 하나만을 택해야 하게 된다. 양당 구도를 배경으로 한 연합정당이 다당 구도를 바탕에 둔 연합정치보다 '경제적'이거나 '안정적'이라는 주장의 이면은 실은 유권자가 직접 결정권을 행사하는 영역을 적당히, 아니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껏 한국 정치는 영미식 양당 구도의 거대 연합정당을 전범으로 삼아왔다. 그리고 두 거대 정당은 앞으로도 한국 정치를 이 방향으로 몰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양당 구도의 연합정당과, 다당 구도의 연합정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덴마크의 사뭇 극단적인 다당 구도까지 그대로 따를 일은 아니겠으나, 이런 다당 구도를 통해 미세한 노선-정책 차이에 대해서까지 대중의 결정권이 상당히 실질적으로 행사되게 한다는 점은 우리가 더욱더 주목해야 할 바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놓치고 있는 민주주의의 어떤 핵심 지점은 아닐까.

▲ 20대 대선 TV 토론의 한 장면. 한국방송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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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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