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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라진 '10·29 참사'… 책임 부재 속 '선제적·실제적 조치' 눈길 끈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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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라진 '10·29 참사'… 책임 부재 속 '선제적·실제적 조치' 눈길 끈 경기도

적극적인 사고 수습·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 ‘실사구시’ 정신 엿보여

157명의 꽃다운 생명들이 우리의 곁은 떠난 ‘10·29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보름의 시간이 지났다.

메르스와 세월호 참사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이번 참사의 피해자 대부분은 ‘노는 즐거움’을 박탈당한 채 자란 세대였고, 심지어 그 중에는 성인이 된 뒤에도 캠퍼스의 낭만을 느끼지 못한 채 집 안에 갇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어야만 했던 학생들도 있었다.

그랬던 그들이 조금이나마 ‘유희의 자유’를 얻게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나이에 꼭 경험해 봐야 할 ‘노는 즐거움’을 깨닫기 위해 세상으로 나왔다가 한순간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충분히 예상됐었던 2022년 10월 29일의 서울 이태원이었다.

그러나 10·29 참사는 발생 이전과 이후 어느 곳에서도 국가는 찾아볼 수 없었고, 정치권에서는 연일 이번 참사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정작 국민들은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번 참사가 왜 벌어졌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물음과 달리, 오히려 곳곳에서 진상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만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그 가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자며 ‘국가애도기간’도 운영됐지만, 진정성 있는 ‘애도’였는지 의심되는 일부 공직자들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경기도는 이 같은 ‘책임의 부재’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위안을 전해줬다.

사실상 지방정부로서 이번 참사의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음에도 불구, ‘사고수습에 지방과 중앙이 따로 없다’는 시각으로 참사 직후부터 선제적이고 실제적인 대응을 펼친 경기도다.

참사 발생 이틀째인 지난 달 31일 ‘도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경기도의 모든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겠다. 사고 수습이 끝날 때까지 유가족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힌 김동연 경기지사의 발언은 경기도가 이번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이를 계기로 향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경기도의 행보는 김 지사가 6·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다산(茶山) 정약용 생가를 방문한 자리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 정신’, 민생 위주의 ‘실사구시 정신’을 경기도정에 담겠다"고 했던 다짐의 실체화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은 ‘10·29 참사’를 대하는 경기도의 자세를 들여다 본다. <편집자 주>

▲경기도청 전경. ⓒ경기도

□ 반성과 각오

‘10·29 참사’가 발생한 이후 경기도가 보여준 대응은 ‘반성’과 ‘각오’였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참사 직후부터 희생자들의 장례와 부상자 치료 등 사고 수습을 적극적으로 지시하는 한편, 진심을 담아 매일 희생자들을 조문하며 공직자로서의 반성을 거듭했다.

11월 10일에는 사고 재발방지와 도민 안전 확보를 위한 안전예방핫라인 등 실질적인 안전대책을 선도적으로 발표했다.

이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정책으로 보여 준 것이다.

실제 참사 당일 밤부터 수원역 로데오거리와 안양 범계역 등 핼러윈(Halloween·매년 10월 31일)을 즐기려는 인파들이 밀집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내 8개 지역을 대상으로 중점적인 순찰활동을 실시했던 경기도는 10·29 참사가 발생한 직후 새벽부터 소방인력(인력 98명, 차량 49대)을 참사 현장으로 급파해 현장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부상자 70명을 인근 병원 등지로 이송했다.

또 참사 발생 이튿날 오전 ‘이태원 압사 참사 경기도 긴급대책 회의’를 열고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한 모든 노력을 쏟을 것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김동연 지사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깊은 애도를 표시한 뒤 △경기도민 여부를 구분하지 말고 부상자 회복과 희생자 안치 등 지원 △중앙대책본부와의 긴밀한 협력 △사고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 도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축제에 대한 철저한 사전 예방 활동 등 세 가지 사고 수습 원칙을 주문하는 한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경기도에 조기를 게양하고 검은 리본 착용을 지시했다.

이후 도는 사고수습을 위해 즉각 행정1부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이태원 참사 관련 경기도 긴급대응 지원단’을 긴급 구성해 운영에 나섰고, 도민 실종자 파악을 위한 신고전화도 가동했다.

▲지난달 31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기도

이와 함께 희생자가 안치돼 있는 병원을 관할하는 시에는 시설별로 시설보호와 장례 안내 공무원을 파견하도록 했다.

참사 발생 3일차인 10월 31일에는 △희생자 및 부상자 가족을 도와 시군 공무원 함께 1대1로 지정해서 빈틈없이 지원 △경기도민 뿐만 아니라 경기도 관내 병원에 안치 또는 입원 중인 타 시도 주민도 전적으로 지원 △모든 의료지원체계를 동원해 부상자의 치료와 심리 회복 및 트라우마 치료에 만전 △도내에서 열리는 행사 취소 또는 연기 △희생자 추모를 위한 합동분향소 설치 등을 재차 약속했다.

이어 수원 경기도청 1층 로비와 의정부 북부청사 1층 로비에 각각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는 한편, 직접 합동분향소를 방문하지 못하는 도민을 위해 도 홈페이지 내에 ‘온라인 추모의 글’ 게시판을 만들어 추모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의 모든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겠다. 사고 수습이 끝날 때까지 유가족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힌 뒤 성남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20대 부상자 2명에게 직접 손으로 쓴 쾌유 기원 카드를 전달하며 위로했다.

경기도가 이처럼 신속하고 즉각 반영이 가능한 실제적 조치에 나선 것은 참사 직후 집계된 도민 피해자(10월 31일 오전 6시 기준)가 전체 303명의 사상자 가운데 46명(15%)에 달한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사고 수습에는 지방과 중앙이 따로 없다’는 김 지사의 평소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7월 1일 취임 당시에도 당초 각계각층 인사와 도민 등 500여 명을 초청한 가운데 도민 대담(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취임식(맞손 신고식)을 열 계획이었던 김 지사는 도내 31개 시·군 전역에 호우특보가 내려지는 등 집중호우로 인해 도로침수 등의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자 즉각 취임식을 취소한 뒤 도청 재난안전상황실을 방문해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호우피해 현장을 방문하는 등 재난 대응을 우선했던 그다.

지난 8월에도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는 암과 난치병 등으로 투병 중이던 60대 어머니 A씨와 40대인 두 딸 B씨 및 C씨가 숨진 채 발견된 일명 ‘수원 세모녀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도 김 지사는 임시 핫라인을 비롯해 120 콜센터와 연계한 ‘긴급복지 전용 콜센터’ 운영에 나서기도 했다.

도는 이번에도 참사 관련 긴급돌봄이 필요한 ‘긴급위기가족’에 대해 가사·양육·노인·병원돌봄 등을 지원하고, 사고 목격자와 일반 도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청소년을 대상으로 ‘1388 심리지원 특별상담실’을 각각 운영 중이다.

이처럼 진정한 치유와 수습을 위해서는 솔직하게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동안 우리가 간과했거나 놓쳤던 부분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경기도의 모습은 ‘10·29 참사’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사고에 대한 국가의 미온적인 태도 및 책임회피식 자세와 달리, 해당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에 중점을 두고 대안을 마련할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 도민의 시각에서… 실사구시의 실천

‘10·29 참사’ 발생 이후 경기도가 보여준 행보들은 기존의 ‘관(官)’ 입장에서의 단순한 사고 수습이 아닌, 당사자의 입장에서 ‘공감’을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태원 참사’로 불리던 기존의 명칭을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최초로 ‘10·29 참사’로 명명해 공식 사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도는 가족의 죽음을 그저 많은 인명피해가 난 대형사고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에 대한 유가족 등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헤아리는 한편,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지역의 명칭이 참사에 사용됨으로 인해 이태원을 찾는 방문객들과 해당 지역에서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상인들 모두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참사 명칭을 ‘10·29 참사’로 명명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부인 정우영 여사가 수원 경기도청사 1층에 차려진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경기도

도청 로비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 희생자의 영정을 안치한 것 역시 유가족에 대한 ‘공감’의 결과였다.

지난 7일 성남시에 거주 중인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가 ‘120경기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장례기간이 하루 뿐이었는데, 주변에 딸을 조문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며 합동분향소에 세상을 떠난 20대 딸의 영정 사진을 놓을 수 있는지를 문의했고, 도는 즉각 요청을 받아들였다.

합동분향소 운영의 마지막 날이던 9일 오전에도 또 다른 20대 여성 희생자의 영정사진이 추가로 안치됐다.

부천시에 거주 중인 아버지의 "아버지를 위해 골수이식을 해 준 대견한 딸이 단 하루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길 바란다"는 애끓는 부정(父情)을 이해한 조치였다.

"사랑하는 딸과의 이별 시간이 고작 하루였던 게 너무 아쉬워 영정사진을 분향소에 두고 싶었던 그 어머니…. 스무 해 넘게 울고 웃었던 소중한 기억들을 그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보실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한 김 지사는 "그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부끄러움, 안타까움, 책임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럽다"고 심정을 전했다.

이어 "희생자 156명의 분향소는 ‘추상’이지만, 한 분 한 분의 사연과 영정 및 위패는 ‘추상’이 아닌 ‘현실’로,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처럼 느끼는 생생한 아픔"이라며 "영정을 모신, 또 영정을 모시지 못한 모든 참사 희생자분들을 결코 잊지 않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기도부터 그 도리를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같은 공감의 마음은 지난 10일 발표된 ‘도민 안전대책’에서 잘 드러난다.

경기도의 도민 안전대책은 △안전예방핫라인 △도민안전혁신단 △사회재난 합동훈련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스마트 안전관리 강화 △국민안전자문회의 설치 제안 등 5개 대책으로 구성됐다.

▲지난 10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도민 안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경기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지사는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희생자와 부상자를 비롯해 가족분들과 도민에 대한 우리의 의무라 생각한다"고 도민안전 대책 마련의 배경을 전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혹시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실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시스템과 매뉴얼은 있지만 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여전히 공급자 중심인 경우가 많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경기도가 먼저 시작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대통령 직속의 ‘국민안전자문회의’ 설치를 중앙정부에 제안하면서 "‘국민안전’은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라며 "현행 헌법상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은 ‘국민경제·과학기술·평화통일’ 세 분야로, 국민안전도 이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헌법 개정 이전이라도 ‘국민안전자문회의’를 구성하고, 앞으로 그 위상을 높인다면 국가정책에서 안전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상징적이고 가시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거듭 중앙정부에 호소했다.

최근 경기도가 편성한 ‘2023년도 예산안’을 통해서도 도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경기도의 다짐을 엿볼 수 있다.

도는 33조7790억 원 규모로 편성된 내년도 예산안을 ‘민생’, ‘기회’, ‘안전’ 세 가지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 3일 경기도의회 제365회 정례회 시정연설에 나선 김 지사는 "민생위기, 기회위기, 안전위기의 복합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도민이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경기도의 의지를 예산안에 담았다"며 "중앙정부는 ‘건전재정’을 목표로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업예산을 축소했지만, 위기의 시대에는 평시와 다른 대응이 필요한 만큼, 재정이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부분은 ‘민생’, ‘기회’, ‘안전’ 가운데 ‘안전분야’ 예산이다.

총 1조1966억 원으로 편성된 안전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19.6% 증액된 규모로, 안전한 일터와 일상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재난 대응 관련 사업장, 시설물, 도로교통 재난 예산 1734억 원 △자연 재난 대응 관련 풍수해, 산사태, 지진 예산 840억 원 △소방재난 예방 및 대응 관련 소방장비 보강 예산 874억 원 △재난안전 종합대책 관련 안전교육 및 안전취약계층 지원 예산 1074억 원 등이 편성됐다.

이 밖에도 △노동이 존중받고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 1643억 원 △취약계층 및 청년·여성·노인 등 사회복지 14조3390억 원 △미세먼지 저감 등 깨끗한 환경 1조6623억 원도 포함됐다.

이처럼 ‘사실을 얻는 것을 힘쓰고 항상 참 옳음을 구한다’는 뜻을 지닌 다산 정약용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취임 전부터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는 김동연 지사의 다짐은 경기도정 곳곳에 묻어 있다.

다만, 경기도는 지금까지 보여준 ‘10·29 참사’를 대하는 자세가 자칫 보여주기식으로 마무리될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다짐대로 진정성과 현실적인 대안 등을 통해 현장에서 즉시 펼쳐질 수 있는 정책으로서 도민들과의 약속을 실천해 나가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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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표

경기인천취재본부 전승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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