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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만세!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부산 민간인학살 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대한민국 만세! 

인민군 총알 한 방 날아오지 않은 부산

그 국토 최후방에 국군의 총성이 요란했던 적 있었다

누굴 향해 쐈을까

1950년 7월 하순에서 9월 하순

부산 구평동 동매산 8부 능선

수십 명씩 철사에 묶인 채 실려 왔다

미리 커다란 구덩이를 파놓고

두 사람씩 나무 위에 걸터앉게 한 다음

뒤에서 총을 쏘았다

앞사람이 굴러 떨어지면 뒷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민간인

사형수도 포로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

총을 겨눈 이는 소련군도 중공군도 북한군도 아닌

대한민국 국군

어떤 날은 나무 말뚝을 먼저 세우더니

여남은 사람 끌고와 나무에 손 묶고 목을 쳤다

무슨 죄를 지었길래

해방 조국에서 일본 칼에 죽임을 당하는가

또 다른 날에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하라 했다

어떤 이는 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쳤고

어떤 사람은 반장이 도장 찍어라 해서 찍은 것뿐이라며 울먹였다

또 어떤 남자는 체념한 듯 시체구덩이로 뛰어 들었고

어떤 여자는 빨리 죽이라며 대거리를 하다가 벌집이 됐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히죽 웃은 젊은이도 있었다

대충 덮은 시신은 산짐승들이 파헤쳤다

물고 찢고, 뼈가 온 산에 뒹굴었다

삼복 시체 썩는 냄새가 감천 앞바다로 흘러들었다

학살된 사람은 부산 형무소 재소자들

전국의 보도연맹원, 제주 4.3과 여순 관련자, 좌익혐의자들이었다

기결수도 있었고 재판 중인 사람도 있었지만

영문도 모르고 불려온 사람이 더 많았다

그들은 아무런 절차나 기록 없이 그저

국가로부터 사라졌다

인민군 세상이 되면 함께 봉기할 것이라는,

여순 때 부역자 색출로 악명 떨친

일본군 출신 군인의 한 마디에

후퇴를 거듭하던 못난 국가는 자국민부터 학살했다

동매산뿐 아니라

광안리, 다대포, 해운대 달맞이 고개, 오륙도와 암남동 바다, 영도 동삼동, 장산 골짜기, 회동수원지, 반송동, 구포동, 복천동, 영주동 등

부산의 산과 계곡에 붉은 강이 흘렀고

앞바다 여기저기 한 맺힌 수장터가 되었다

호곡도 없는 칠십여 년

이름도 없이 떠도는 1,500여 참담한 죽음들

오, 나라여 답을 하지 않을 텐가

이름이든 뼈든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총구를 남으로 돌린

대한민국

만세! 부끄럽지 않은가

※시의 내용은 부산일보에 연재되었던「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김기진 저, 역사비평사)과「한국전쟁과 집단학살」(김기진 저, 푸른사상) 등을 참고하였다.

▲ 부산형무소 재소자들이 어디론가 가기 위해 트럭 위에 빼곡히 실려 있다. 이 사진은 영국의 보도사진 작가 버트 하디가 1950년 9월1일 촬영한 것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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