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이태원 참사 이틀만에 시민단체 반응과 여론 동향 등을 조사한 뒤, 이를 내부 문건으로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등 상급기관 보고용 문건으로 추정되나 이태원 참사로 계속해서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 정보 수집을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게 중론이다.
SBS가 1일 공개한 '정책 참고 자료'라는 경찰청 내부 문건을 보면 경찰은 우선 빠른 사고수습을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대형 참사 이후 단골 비난 소재인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 처신'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문건에서 경찰은 "세월호 당시, 경기도지사의 추모 자작시 게재, 교육부 장관 과잉 의전, 라면 취식, 세종시장 폭탄주 회식, 새누리당 모 의원의 교통사고 발언, 행안부 국장급 기념사진 촬영 등이 이슈화되면서 비난에 직면했다"며 "정부 등 관계자가 원칙적 언급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민단체 동향과 내부회의 내용도 문건에 담아
경찰은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자세히 설명했다. 경찰은 "각 진보, 보수단체들은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고, 아직 수습단계인 만큼, 우선 '추모, 애도'에 초점을 두고 관망하는 분위기"라는 정보를 전하며 "그럼에도 일부 진보성향 단체들은 '세월호 이후 최대 참사로서 정부 책임론이 확대될 경우, 정권 퇴진운동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을 만큼 대형 이슈라며, 내부적으로 긴급회의 개최 등 대응 계획을 논의 중"이라고 보고했다.
경찰 관계자가 진보단체 관계자를 직접 만나 내부 정보를 파악한 뒤 이 문건을 작성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경찰은 "진보성향 단체들은 세월호 사건 당시 정부의 대응 미비점을 상기시키거나, 지난 정부의 핼러윈 대비 조치와 올해를 비교하는 카페글, 카톡 지라시 등을 공유하며 정부 성토 여론 형성에 주력"한다면서 '촛불전환행동'을 지목해 "이번 참사를 현 정권의 대표적 실정으로 내세워 향후 촛불집회의 동력으로 삼겠다며 여론 추이를 예의주시 중"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전국민중행동, 세월호가족협의회, 생명안전시민넷 등 시민단체들의 참사 이후 내부논의나 논평 내용 등도 상세히 문건으로 작성했다.
특히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경우 "성명을 통해 '사망자 중 여성이 97명, 남성이 54명으로 알려진다며 여성 피해가 많았던 점을 거론"했다면서 "당장은 '여성안전' 문제를 본격 꺼내들긴 어렵지만, 추후 여가부 폐지 등 정부의 반여성정책 비판에 활용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함"이라고 보고했다.
보상금 문제 등 추후 사태 수습 위한 조언도 담겨
경찰은 문건에서 향후 정부의 안전관리 미흡, 즉 '정부 책임론'이 부각될 조짐이라며 "이태원 사고에서 '정부 책임' 관련 보도량이 10월 30일 밤12시~새벽 3시에는 8건이었으나, (31일) 오후 1시~8시에는 108건으로 대폭 증가했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대체로 사고 발생 2~4일 '정부 대처, 사고 원인' 등에 관심이 고조되다, 정부의 중간수사결과 또는 재발방지대책 발표 등을 계기로 보도가 감소된다"며 "대구지하철 화재의 경우, 사고 초기 '현장훼손' 등 미흡한 대응이 노출되고 해명도 지연되며 비난이 가중됐기에, 초기 수습과정에서의 유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경찰은 참사가 빠르게 수습되기 위해서는 '장례비와 치료비 및 보상금 관련 갈등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문건에서 경찰은 "정부가 신속히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구호금 지원을 발표했지만, 통상 대형참사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해 향후 보상 문제가 지속적으로 이슈화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지자체 실무자들은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더라도 정부 예산에 한계가 있는 만큼, 국민 애도 분위기 속 성금 모금을 검토하고 정부도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문건 표지에는 '특별취급'이라는 제목과 함께 '대외 공개, 수신처에서 타 기관으로의 재전파, 복사 등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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